#에세이. 엄마의 죽 09
팥죽
"팥죽 먹었어?"
"어, 마트에서 사다 먹었어."
동지가 되면 엄마는 어김없이 전화로 팥죽 먹는 날을 챙겨 주신다.
때로는 귀찮아 건너뛰기도 하지만, 요즘은 마트의 할인 행사에 다 만들어진 즉석 팥죽을 사들고 오곤 한다.
예전에는 무슨 날인 줄도 모르고 '오늘은 팥죽 먹는 날이야' 하시는 엄마의 말에 따라 절기 음식들을 먹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서 그 절기를 알게 되었다. 요즘 사람들이 절기 문화를 챙길까 싶지만 마트의 마케팅에는 아직 이런 절기음식들이 중요하긴 한 것 같다.
잡곡 코너에 붉은팥이 깔리고, 비비고의 죽 행사 배너가 걸리면 동지.
색색의 잡곡이 진열되고, 땅콩과 호두가 껍질채 망에 담겨 걸려있으면 정월대보름.
섣달그믐에 먹는다는 만두는 언제라도 살 수 있다.
"그래, 요즘은 파는 것도 잘 나오더라.
엄마도 귀찮아서 사다 먹으려는데 너네 아빠가 파는 건 맛이 없다고 해달라고 해서 팥죽 쒔잖아.
이번에 새알심도 예쁘고 팥도 좋아서 맛있게 잘 됐어."
한참의 수다 후 전화기를 끊고 엄마의 팥죽을 떠올려 본다.
기억 속 엄마의 팥죽은 조금 거친 질감에 팥 알갱이와 찹쌀도 씹히고 새알심도 큼직했다.
새알심은 어린 나에게 너무 커서 한입에 넣었다가는 컥컥 거리며 목이 막히기 일 수였다.
편식이 심했던 어린 시절, 곱게 갈린 달달한 팥죽을 기대하던 나에게 소금 간을 해야 어울리는 엄마의 팥죽은 그다지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었다.
그런데, 마트에서 팥죽을 사다 먹으며 엄마의 팥죽이 생각나는 건 왜 일까?
아빠도 이런 심정으로 엄마에게 팥죽을 쒀달라 하셨나 보다.
마트에서도 '동지팥죽', '통단팥죽' 구분하여 파는 것을 보니 내가 또 동지팥죽과 단팥죽을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하였다는 걸 깨닫는다.
곱게 갈 린 달달한 팥죽은 '단팥죽'
엄마의 팥죽은 '동지팥죽'
동지가 아니어도 가끔 만들어 주시던 엄마의 거친 팥죽이 새삼 먹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