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고장 났지만 감사합니다.

by 라라앤글

남편의 오래된 차량 아반떼 XD가 이제는 놓아달라 합니다. 오래 달렸으니 보내달라 합니다.

네, 맞습니다. 이름도 잊혀 가는 오래된 아반떼 XD가 저희 집 차량입니다. 20년가량 된 오래된 할아버지 차가 드디어 힘을 다했다고 하네요.


워크숍으로 양평에 가 있는데 늘 엄마랑 같이 자는 귀여운 막내딸이 엄마가 보고 싶어 전화를 합니다

"엄마, 아빠랑 마트 갔다가 집에 가는데 아롱이 오빠가 힘들어했어요. 아빠가 이제 아롱이 오빠 보내줘야 한데요~ 어떡하죠?"

아롱이는 딸이 부르는 오래된 아반떼의 애칭입니다. 너 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서 아롱이 할아버지라고 해도 아롱이 오빠라고 부르는 귀여운 딸이에요.

"아이고 고생했겠네. 이제 아롱이 보내줘야겠다. 그렇지?"


사실 남편이 타고 있는 오래된 아반떼 XD는 남편이 세 번째 주인입니다.

첫 번째 주인은 형부. 형부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돼서 언니네 가족이 미국으로 이사 갈 때 친정 아빠로 주인이 변경되었지요. 아빠도 몇 년 운행하시다가 새 차를 구입하셨고 마침 남편이 몰던 세피아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남편이 아반떼의 세 번째 주인이 되었습니다.

세 번째 주인을 맞이한 아반떼지만 저희 가족과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고마운 차입니다.

가족여행할 때 먼 곳까지 저희를 데려다주었고, 매 주말 마트 가서 장 볼 때 무거운 일주일치 식량을 트렁크에 가득 실어 날라주기도 했고요. 집에서 좀 떨어져 있는 교회에 편하게 다닐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오래된 아반떼 덕분이었습니다.


토요일 밤 남편이 조심스레 묻네요

"내일 차 가지고 갈까?" 차로 30분이면 가는 거리를 지하철을 타면 한번 갈아타고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리니 귀찮을 법도 하지요.

"아니야, 지난주일에도 언덕 올라갈 때 힘들어했잖아. 아이들도 타고 있는데 위험할 거 같아. 차 놔두고 애들이랑 지하철 타고 가자"

결국 언덕을 올라갈 때 힘들어하는 차량을 놔두고 가족 모두 지하철을 타고 교회로 가기로 합니다.


주일 아침. 평상시보다 일찍 일어나야 하는 아이들은 피곤하다고 왜 이렇게 일찍 가냐고 입이 댓 발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차 상태가 좋지 못해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한다 아이들을 설득하고 저 먼저 집을 나왔습니다.

예배 반주자는 예배시간보다 일찍 교회에 도착해야 하거든요. 남편과 아이들에게도 곧 출발하라는 말을 남기고 지하철 역으로 향합니다


평일 출근시간 보다 더 일찍 집을 나섭니다. 겨울아침 공기가 참 시원하네요. 코가 뻥 뚫리고 머리까지 상쾌해요. '차가 고장 났지만 이렇게 아침부터 운동하고 좋네.' 차가 고장 나 불편하지만 아침 걷기 운동을 할 수 있어 참으로 감사합니다.


감사나 불평은 우리 주변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무엇을 찾아 내 것으로 취하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는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차는 고장이 났고 뚜벅이로 지하철을 타고 교회에 가야 한다는 사실에 변함은 없습니다. '에잇, 왜 차가 고장 나고 난리야. 왜 우리 집에는 좋은 차가 없는 거야, 왜 교회는 멀리 있는 거야.'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려면 끝이 없겠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제 주위에 놓여 있는 불평불만과 감사 중에 감사를 취하기로 했습니다. 감사의 삶이 제 인생을 윤택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둘러 집에서 출발한 덕분에 이른 시간에 지하철 역에 도착을 했습니다. 따뜻하게 아메리카노 한 잔 하려다 빈속에 속이 쓰릴까 달달한 초코도넛까지 구입을 합니다.

일요일 아침 이렇게 일찍 문을 연 도넛매장이 있는 것도 감사, 달달한 도넛과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실 수 있는 것도 감사한 아침입니다.


든든한 아침을 마치고 다시 버스를 타고 교회로 향합니다.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친절하게 인사하는 기사님을 만난 것도 감사합니다. 골골대는 차량을 타고 걱정하며 왔다면 맞이하지 못할 아침이었습니다.


평상시 지하철을 탈 일이 없는 딸아이가 뛰어오며 품에 안깁니다

"지하철 타고 와서 너무 재미있었어요."

이른 아침 지하철을 타고 와서 힘들 법도 한데 재밌었다고 말해주는 딸에게도 감사합니다.


차량이 고장 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를 취했더니 행복한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변함없는 상황. 주위에 놓인 불평과 감사. 어떤 것을 취하시겠습니까? 불평으로 미간을 찌푸려 주름을 늘릴지 감사한 마음으로 미소를 지을지는 오로지 내 선택이 달려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감사할 제목은 무엇인가요? 감사하는 삶을 권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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