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활력이 넘치고 기쁠 때가 있었던가.
그 어느 때보다 삶이 즐겁다. 내가 살아 있음이 느껴지는 하루하루다.
살아날 것 같지 않았던 시들해진 화초가 다시금 물을 머금고 햇빛을 받아 생기 있게 활짝 핀 것만 같다.
계절은 겨울이 다가오지만 내 삶에는 봄의 기운이 느껴진다.
바다 거북이 육지를 걸어가듯 50을 향해 터덜터덜 걸으가며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무엇인가를 시작하기엔 이미 늦은 나이라고 자포자기하며 살았다.
<김미경의 마흔 수업>을 읽고 내가 그렇게 늦은 나이가 아님을, 무언가 시작하기에 충분한 나이임을 깨달았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시작한단 말인가.
그런 나에게 한줄기 빛으로 다가온 것이 바로 <글쓰기>이다. 나는 아마도 글쓰기에 목이 말라 있었나 보다.
글쓰기를 시작하고 계속 무언가를 쓰고 싶다. 누가 내 글을 읽지 않는다 해도, 나만의 일기장이 된다 해도 계속해서 쓰고 싶어졌다. 글을 쓰면서 나를 돌아보고 나와 대화하고 다시 나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나 글쓰기 좋아하는구나. 글이 쓰고 싶었구나.
글쓰기가 즐겁고, 함께 하는 친구들이 있어 더없이 행복한 요즘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처럼 지금 내 삶이 딱 그렇다.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꿈을 안은 풍선이 너무 크게 부풀었을까. 어딘지 모르게 딱 바늘구멍 만한 크기로 '피이~'소리를 내며 바람이 빠지고 있다. 행복의 이면에 공허함이라는 어두움이 살짝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나도 여기 있어"라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는 것만 같다.
"하나님, 저 작가가 되었어요"
"그래, 알고 있단다. 네가 행복해 보여서 나는 너무 기쁘단다"
"제가..... 너무 게을렀었죠? 늘 기다리고 계신데 자꾸 모른 척해서 죄송해요"
"이렇게 왔잖니. 그거면 충분하단다. 나와 다시 기도하고 말씀 읽어볼까?"
뒤 돌아보니 언제나 그렇듯 그분이 인자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고 계신다.
출퇴근길에 스마트폰으로 대충 보고 넘기던 <생명의 삶>을 오랜만에 서점에 들러 책으로 구매했다. 줄을 치며 말씀을 곱씹으니 지나가는 은혜도 내 것이 된다.
출근해서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말씀을 읽으니 마음에 평안이 찾아온다. 터질 것만 같이 크게 부풀었던 풍선도 적당한 크기로 가라앉고 바람이 세는 바늘구멍도 막힌듯하다. 이제야 제자리를 찾았다. 안정감이 느껴지고 편안하다.
그분 없이는 내 삶을 설명할 수도 없고, 설명이 되지 않는 인생을 살고 있다. 내가 살아온 어느 순간에도 그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나를 쓰기로 이끄신 그분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기도와 말씀의 삶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나의 본질을 찾을 때 그제야 제대로 된 글쓰기를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써야겠다.
기도하고 말씀 읽는 나집사의 삶도 이제 기록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