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소의 시간
글을 쓰는 일은 마치 씨를 뿌리고 추수를 하는 일과 같다. 그래서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글을 쓰지 못하고 있을 때 더 초조하고 불안해진다. 가을이 되었는데 추수할 것이 없으리라는 걸 예측하기 때문이다. 추수할 것이란 눈에 보이는, 손에 잡히는... 예를 들어 책?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몇 번의 순환을 학습했기 때문에 지금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일에 대해 더 불안해하고 더 안절부절못한다. 지금 하지 않으면 그다음에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말로는 비워라 버려라라고 외치고 다니지만 사실 나는 잘 그러지 못한다. 물건도, 글도, 마음도 욕심으로 가득 채웠다가 간신히 조금 버리는 척했다가 다시 또 가득 채웠다가를 반복한다. 그래서 버리라는 말을 많이 하고 다니는지도 모르겠다. 그 말은 나에게 외치는 말이기도 하니까.
나보다 더 빠르게 더 많이 앞서가는 작가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변하는 것도 지켜본다. 누군가가 앞서 가다 순간 그는 사라지고 또 다른 자가 앞서간다 그러다 또 새로운 누군가가 앞서가고... 지금 앞서간다고 그가 계속 앞서는 것은 아니고, 지금 뒷서 간다고 계속 뒤서는 것도 아니라는 걸 시간이 흘러가면서 알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가 더 중요한 시간이라는 것도 안다. 머릿속으로는 아는 척하지만 막상 닥치면 잘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말이다. 이런 시간에는 리셋하듯이 새롭게 시작하기 좋을 때이다. 과거의 나와 과거의 글에 매이지 않고. 나에게 지금 그런 시간이 주어진 것 같다. 쓰레기통에 가득 찬 쓰레기를 버리듯 마음속과 머릿속을 비우는 대청소의 시간이.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