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도 골프 할 수 있어

마법의 주문 하나둘셋

by 상하



골프는 나 스스로를 향한 집중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나는 ADHD 환자다.

이 문장의 문제점을 찾으시오. (3점)






내가 생각하기에, 골프에서 중요한 건 딱 두 가지다. 첫째는 기본, 둘째는 나. 잘 치고 못 치고를 떠나서 일단 공을 때리기 위해 필요한 건 저 두 개라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골프의 '기본'이란 7번 아이언으로 배운 모든 것이다. 공 치는 법, 그립 쥐는 법, 서는 자세 모두 익힌 다음에야 다른 채를 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라는 건 정확히 말해서, 나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내 자세가 어떤지 느끼고, 공과 나의 거리가 적당한지 재고, 공을 어떻게 쳐야할지 생각하고, 치고 나서도 내 자세를 돌아보는 일 그 모두를 포함한다.


그런데 나는 5년 전, 성인 ADHD 진단을 받은 사람이다. 그 말인 즉 필연적으로 주의집중력의 문제를 안고 살아왔다는 사람이란 뜻이다.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아도 사실 뚜껑을 열어보면 생각이 풍선처럼 둥실둥실 어디론가 날아가버리는 건 일상다반사. 그런데 집중하는 게 중요한 골프를 친다고? 아무리 열심히 약 먹고 상담치료 하면서 살아왔다지만 이건 뭐 창과 방패가 아닌가 싶을 정도의 기가 막힌 오차관계가 아닐까? 그래도 다행히, 골프! 친다! 에 집중하는 건 의외로 쉬운 일이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에는 빠른 속도로 깊이 빠져들 수 있는 과몰입의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또 쉽게 빠져나올 가능성도 있지만 그건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그 과몰입 덕에 나는 몇 주 만에 똑딱이*를 탈출하고 풀스윙 학습단계에 진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실 내게는 깨닫지 못한 복병이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속도였다. 골프님께서는 공을 잘 치기 위하여 집중도 집중인데, 적당한 속도 또한 필요로 하신다. 그러나 나는 골프! 친다! 에 내 주의집중력을 몰빵해버린 나머지 내가 뭐 어떻게 어떤 속도로 치고 있는지는 자주 뒷전이 되어버리곤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당시 내가 제일 많이 들은 말은 천천히 치라는 말이었다. 나는 너무 빠르게 채를 휘두르는 편이었는데, 그렇게 휘두르고 나면 언제나 헛스윙을 하거나 공의 머리를 후려갈기는 결과를 낳았다. 정말 억울한 건, 나는 나름 천천히 하는 것 같은데 남들이 보기엔 여전히 빠르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나의 세상이 남들과는 속도가 좀 다르다는 게 명백한 것 같아서 괜히 열이 받았다. 안 그래도 사회생활 하면서 나 혼자 자꾸 통통 튀어나가는 일이 잦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골프에서까지 이러기야? 나만 또 남들 같이 못 하지? 내가 속으로 그렇게나 꿍얼거려도 약빨은 늘 아침부터 퇴근 전까지만 돌았고, 나는 골프를 언제나 저녁에 갔으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선생님은 모르긴 몰라도 매번 1시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천천히 쳐'만 아마 10번 넘게 말했을 것이다.


나는 선생님을 존경했지만, 같은 말을 반복해서 듣는 일은 지겹고 짜증이 났다. 그래서 뿔이 난 상태로 입을 삐죽거리며 투정을 부렸다. "더 천천히요? 여기서 어떻게 더 천천히 쳐요?" 세상이 이렇게 빨리 돌아가는데 도대체 어떻게 치란 말이야. 선생님은 그 때마다 내 속도 모르고 "할 수 있어." 라고만 했다.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나는 나름 천천히 치고 있었는데도 천천히 치라고 하니까 천천히탈트붕괴에 올 지경이었다.


내가 너무 열받아 하자 선생님은 하나, 둘, 셋. 을 가르쳐주었다. 하나둘에 올라가고 셋에 내려오라는 거였다. 시키는 대로 하나둘에 팔을 올렸다가, 셋에 맞춰 공을 후려보았다. 처음엔 나름 잘 됐는데 하다보니 또 안 되었다. 그래서 공 치는 걸 잠깐 멈추고 나를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점점 하나둘셋을 내 마음대로 외기 시작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나름 또 머리를 굴려 좋아하는 노래 하나를 머릿속에 틀었다. 충분히 느려서, 박자에 맞춰 공을 치기 딱 좋을 것 같은 노래였다.


나는 노래에 맞춰 올라가고, 잠시 멈추었다가, 마지막 박자에 공을 때릴 수 있게 채를 내렸다. 그러자 챱! 하고 공을 잘 후려친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포물선을 그리며 그물을 향해 날아간 공을 보고 내가 탄성을 터뜨리자 선생님이 흐뭇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 잘 했어. 지금처럼만 하면 돼." 나는 그제야 웃을 수 있었다. 잘 쳐서도 잘 쳐서였는데, 속이 후련해서였다. 아, 이게 남들의 속도구나. 뭐야, 나도 진짜 할 수 있네.


지금도 공은 자주 안 쳐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머릿속에서 노래를 틀고 하나둘셋을 센다. 가끔은 파이브씩스, 세븐에잇~ 원! 이지만 어쨌든 기본은 하나, 둘, 셋! 이다. 일을 하다가 마음이 조급해지는 걸 깨달을 때에도 이 날을 떠올리며 하나둘셋을 센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약간이나마 가라앉고, 나도 할 수 있다는 기억이 나를 응원해준다.








* 똑딱이 - 골프를 처음 배울 때 하는 기본 샷 연습. 똑딱 소리가 나서 똑딱이다.


(커버 사진 -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골프 그 까짓 거 하면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