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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건축가 Nov 05. 2024

마감준비

그 여름의 공모전 #11


이제 2주 뒤면 최종 마감이다. 학생들의 계획안은 거의 다 마무리되어가고 있고, 이제는 그것들을 정리하고 프리젠테이션 할 준비를 하고 있다.      


오늘은 패널 레이아웃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날이다. 예린이 창민의 안을 봐주고 있다.     

”레이아웃은 이 정도면 될 것 같은데.. 소스(패널 등에 들어갈 재료들을 말함)도 너무 많이 만들어 가지고.. 뭘 넣어야 될지 고민해야 될 정도네.“

”네, 저는 원래 넣어야 할 것들보다 1.5배에서 2배 정도 더 만드는 편이거든요.“

”그래.. 내 생각에는 이거랑 이걸 넣는 게 더 나아 보인다. 아무튼 고생했어. 이제 모형 잘 만들면 될 것 같은데.“

”네, 3d 프린터 좀 쓰면 그렇게 어렵지 않게 만들 것 같아요.“     


요새 학생들은 워낙 기술이 발전되어서 렌더링이나 3d 프린팅 같은 것들을 어렵지 않게 활용한다. 때문에 예린이 학생이던 시절보다 그래픽이나 모형의 양이나 수준이 훨씬 높아졌다.  


    

‘기술이 좋아지니 애들의 퍼포먼스는 확실히 좋아졌는데.. 그만큼 깊이있게 건축을 생각하고 있는지는 의문이긴 하네..’     


지수의 차례가 되었다. 지수는 초반에 진도가 늦은 것을 메꾸기 위해 막판에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 한주 한주 달라지는 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에 예린도 지수를 지도할 맛이 난다. 그래서 지수의 차례를 은근히 기다릴 정도였다.     


”와, 패널도 정말 많이 채워왔네. 그동안 헤맨 게 거짓말 같이 느껴질 정도야.“

”정말요? 교수님 감사합니다..“

”그래, 지수가 원래 열심히 하니까, 방향이 잡히니 진도가 빨리 빨리 나가는 것 같아. 여기 다이어그램은 생각해놓은 방향이 있어? 레퍼런스(다른 건축가들이 해놓은 작업을 참고로 하는 것)를 좀 찾아봐야 될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미나의 차례다. 이제 마감이 다 다음주인데, 미나는 설계안이 아직도 완성되지 못했다. 아니, 갈 길이 아직 멀었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언제 패널이며 모형을 만들어 낼지 걱정이 되는 수준이다.     

”미나야, 입면도 아직 방향이 안 정해졌고.. 계획안이 아직 완성이 안 되었는데. 다른 친구들은 패널 구성하고 있는데, 음.. 일단 계획안은 이 정도로 어떻게든 정리해서 마무리하고. 빨리 패널 시작하자. 시간이 너무 없으니까..“

”네, 교수님. 좀 늦긴 했지만 방향은 정해졌으니까. 이제부터 잘 마무리 하면 될 것 같아요.“

”입면 재료는 뭘로 하려고 그러니? 알루미늄? 석재? 학생 수준에서 재료를 생각하는 게 아주 대단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뭘로 할진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

”재료요? 그냥 하얗게 가면 되는 거 아닌가.. 지금 이 정도면 되는 거 아닌가요?“  


   

미나의 대답을 듣는 예린은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얘는 해 놓은 것도 거의 없으면서 뻔뻔한 건 참 대단한 것 같다.. 이렇게 마감해서 다른 반 교수님들에게 무슨 얘길 들으려고.. 얜 아무리 푸쉬해도 뭐가 더 나올 애가 아니네. 그냥 학점 낮게 주고 끝낼 수 밖에..’     

그렇게 학생들의 크리틱을 끝낸 예린이 모두를 불러모았다.     



”이제 2주 뒤면 마감인데요. 여러분 한 학기동안 작업 열심히 해오셨는데, 그걸 어떻게 마무리해서 보여줄지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계획안이 조금 덜 마무리되고 아쉬운 부분이 있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패널과 모형에서 표현할지를 생각하고 그 작업을 시작하시는 게 좋아요. 여러분이 생각하고 고민한 것들이 충분히 드러날 수 있도록, 다이어그램이나 CG, 모형의 표현 사례들을 많이 찾아보고 내 설계안에 적용해 보도록 하세요. 그리고 패널과 모형 제작에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들어갑니다. 여러분이 생각한 것보다 1.5배에서 2배 정도의 시간이 들어간다고 생각하셔야 되요. 그렇게 생각하시고, 마감 시점에서 역으로 시간을 배정해서 마감 계획을 짜시고 작업을 하시기 바랍니다.“     



크리틱을 마치고 창민이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는데 핸드폰 카톡이 울렸다. 

‘창민아, 혹시 시간 좀 있어? 잠깐 할 얘기가 있는데.’

미나의 메시지다. 창민의 가슴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미나가 나한테 할 얘기가 있다고? 무슨 얘기지? 혹시 나를 만나고 싶다는 건가..?’      

뛰는 가슴을 억누르며 창민은 답장을 보냈다.

‘아 그래? 난 괜찮은데. 어디서 보면 되지?’

‘응, 고마워. 학생회관에 있는 카페에서 보자.’     



창민이 카페에 들어서자 저 멀리서 미나가 손을 흔들었다.

”창민아, 나와줘서 고마워. 커피는 내가 살게.“

”그, 그래.. 니가 나를 다 보자고 하고, 무슨 일이야?“

”일단 커피부터 시키고. 넌 저기 자리에 앉아 있어. 내가 들고 갈게.“  


   

어색하게 자리를 잡은 창민에게 커피를 든 미나가 다가온다.

”창민아, 이렇게 와줘서 고마워. 크리틱 끝나서 피곤할텐데.“

”아, 아니야.. 이 정도야 뭐. 괜찮아.“

”전에도 말했지만 너 설계 진짜 잘하더라. 모델링이나 CG도 그렇고, 다이어그램도 그렇고.. 그런 거 다 어디서 배운거야?“

”아, 그거야.. 평소에 관심이 많으니까. 이것 저것 찾아보고.. 인터넷도 보고 유투브도 보고 하면서 배운거지..“

”그렇구나. 아무튼 진짜 대단하다. 난 아무리 잘해보려고 해도 힘들던데..“

”미나 너도 관심 가지고 하면 금방 늘 거야.“

”그래서 그런데.. 니꺼 설계는 거의 다 한거 같던데. 내 것 좀 도와주면 안 돼? 전에 약속 했잖아.“



뭐야, 만나자는 것도 아니고, 결국 설계 도와달라는 거잖아. 창민은 속으로 크게 실망했다. 내 설계도 하기 바쁜데, 남들 도와줄 시간까지는 없는데.. 창민은 마음 속으로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도 내 설계 퀄리티를 더 높여야 하고.. 사실 조그만 공모전도 같이 준비하고 있어서. 시간이 그렇게 많이 없는데..“

”아이, 그러지 말고. 니가 잠깐만 도와줘도 나 같은 애 설계는 금방 좋아질거잖아. 쪼금만 시간 내서 도와줘. 이렇게 부탁할게.. 나 시간도 너무 없고, 이러다 잘못하면 설계 F 나올 것 같단 말이야..“

미나가 거의 울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애원을 하자, 창민은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음.. 그래. 일단 알았어.. 많은 시간을 낼 순 없지만.. 약간이라도 도와줄게. 내가 뭘 도와주면 되지?“

”진짜? 창민아, 진짜 고마워.. 이 은혜 잊지 않을께..“     

미나는 노트북을 꺼내서 켜더니 자신의 안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창민은 지나가다 슬쩍 슬쩍 미나의 안을 보았지만, 자세히 보니 정말 완성도가 떨어져서 창민의 중간 마감 수준 정도도 안 되어 보였다.     

‘얘는 이 정도로 어떻게 마감을 하려고 하지.. 대충 보긴 봤지만 정말 심각하구나. 뭘 어떻게 손봐줘야 할지 감이 안 잡힐 정도네..’

”일단 입면에서 창문 위치랑 재료 적용 같은 걸 아직 못해 가지고. 그것만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

”그건 니가 직접 설계를 해야 되는 부분인데..“

”에이.. 그러지 말고. 내가 시간이 너무 없어서 그러니까. 난 패널 구성도 아직 못했단 말야. 좀만 도와줘 창민아..“     



이건 거의 설계를 대신 해달라는 수준인데.. 이건 아닌데 싶으면서도 창민은 엉겁결에 미나의 부탁을 떠맡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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