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추구하는 건축 언어
대한민국에는 나를 비롯해서, 건축을 한다고 하는 건축가들은 정말 많다. 건축 플랫폼인 브리크 매거진이나 에이플래폼을 들어가 보아도, 등재되어 있는 건축가 팀의 숫자가 400팀을 넘는다고 한다. 건축사협회에 등록된 건축사의 숫자는 2만명이 넘는다고 하고, 법인 숫자도 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렇게 수많은 건축사, 또는 건축가들이 건축설계를 한다고 하지만, 어떠한 지향점 내지는 철학, 생각을 가지고 설계를 하고 있는지 딱 부러지게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너의 건축철학, 건축언어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정리된 언어로 대답할 수 있는 건축가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그저 트렌드에 맞는 예쁘고 깔끔한 건물, 임대나 분양이 잘 되는 건물, 멋지고 화려한 건물.. 정도로 대답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정도의 말이 한 사람의 건축언어를 대변한다고 보긴 어려울 것이다.
나는 예전에 '건축가의 습관'이라는 책을 쓰면서 편집자로부터 '당신의 건축철학, 건축언어는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블로그 어딘가에 써놓은 글 중에 비슷한 고민을 담은 것이 있어서 '단순함 속의 단단함'이라는 말로 내 생각을 정리해서 전달했다. 하지만 내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단순함 속의 단단함'이라는 말은 꽤나 모호하고, 무엇을 말하는지 분명치가 않았다. 나는 오늘 이 말, '단순함 속의 단단함'이라는 건축언어의 뜻을 좀 더 자세히 정리하는 글을 써보려고 한다.
당시에 나는 '단순함 속의 단단함'이라는 말을 정의내리기 힘들어 몇 개의 레퍼런스를 동원했다. '달항아리' '종묘' '추사체' 같은 것들이었다. 그런 선조들의 예술적 성취에서 크게 기교를 부리지 않으면서도 은근하게 배어나오는 미적 감각, 숙련된 솜씨를 느낄 수 있었고 그것이 '단순함 속의 단단함'을 나타낸다고 설명했었다. 오늘은 '단순함 속의 단단함'을 나의 글로 되도록 정확하고 자세하게 정의해보고자 한다.
우선 '단순함'에 대해서 살펴보자. '단순하다'는 것은 쓸데없는 장식이냐 기교가 없다는 뜻이다. 모양이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고 간명하며, 누가 보기에도 설계자의 의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최근에 쓴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요새의 건축은 모더니즘의 흐름을 역행해서 오히려 장식이 늘어나는 추세를 보여주는 듯 하다. 용적률 게임의 여파로 시도할 수 있는 부분이 외피에 집중되었던 점, 인테리어 설계의 유희적 요소가 외부까지 영향을 미친 점, 거대자본주의의 폐혜로 건축이 대중의 시선을 잡아끌기 위한 도구가 되었던 점 등이 건축의 장식화를 가속화시켰던 요인이었다.
단순한 건축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창을 줄이고, 영롱쌓기를 빼고, 몰딩을 빼고, 루버를 빼고, 아치창을 빼고, 노출콘크리트를 빼야 한다. 건물을 화려하고 멋지게 만들어줄 각종 요소들을 빼야 한다. 건축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우리는 시각적인 요소에 어느 정도 종속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요소를 빼다 보면 어느 순간 아무 장식 없는 박스 덩어리만 덩그러니 남게 된다. 건축가로서 이런 상태를 참아낼 수 있는가? 그런 솔직하고 순수한 메스 형태만으로 다른 건축가들에게, 일반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가?
단순한 건축을 한다는 것은 화려한 장식에 의존하지 않고, 순수한 메스의 힘, 공간의 힘만으로 좋은 건축을 만들어 내겠다는 선언이다. 쉽고 자극적인 길을 가기 보다 어렵지만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의사 표시이다.
어디까지가 '건축적'으로 장식이고 멋부림인지, 어디서부터 '건축적'으로 순수하고 본질적인 시도인지 객관적으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그 정의는 사람들마다 다를 것이며,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최소한 나는 계단 난간의 디테일을 얼마나 어렵게 할 것인지, 창호의 개구부에서 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의 지엽적인 시도에 천착하지 않으려 한다. 어느 순간 그러한 말단적인 부분의 처리를 얼마나 섬세하고 정교하게 하느냐가 그 건축의 수준을 결정하는 가늠좌가 되어 버렸다. 건축은 프라모델, 피규어가 아니다. 얼마나 디테일이 화려하고 섬세하냐, 정교하냐로 그 건축의 수준을 평가하는 것은 무언가 본말이 전도되어버린 느낌이 있다. 그러한 지엽적인 부분의 수준은 건물 전체의 메스와 공간을 서포트하는 부가적인 부분에 불과하다. 결코 본질이 될 수 없다.
다음은 '단단함'에 대해서 살펴보자. 이 '단단함'이라는 단어의 정의는 '단순함'보다 어렵다. 건물은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있으니 돌처럼 단단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단단함'은 물리적인 단단함이 아니다. 건물의 만듦새가 꽉 짜여져 있고 빈틈이 없어 완성도가 높을 때 '단단하다'는 표현을 쓸 수 있다. 건축가가 건물을 설계할 때 단 1cm, 1mm의 치수도 허투루 쓰지 않고 모든 공간을 짜임새 있게 구성해야 '단단한' 건물을 만들 수 있다. 이 '단단함' 역시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는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 때 '기량'보다 중요한 것이 '기백'이라고 생각한다. 비단 예술가 뿐만 아니라 운동선수나 일을 하는 비지니스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떤 일을 할 때 본인의 능력 이상의 퍼포먼스를 끌어내는 것이 '내가 반드시 이 작품, 작업을 성공적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 태도가 바로 '기백'이다. 어떤 분야에서건 아직 기량이 무르익지 않은 사람이 능력 이상의 성과를 내는 이유 중 하나가 '기백'이 아닐까 생각한다.
건축가가 어떤 건물을 만들 때 '단단한' 건축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러한 '기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건축가가 아무리 경험이 많고 감각과 능력이 출중하더라도, 항상 하던 방식으로 타성에 젖어 만들어내는 건축물에는 기백이 부족하게 되고, '단단한' 건축이 되기 어렵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성과 노력, 프로젝트에 대한 헌신이 축적되어야 비로서 '단단한' 건축이 완성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생각하는 '단단한' 건축은 '하자'가 없는 건축이다. 아무리 아름답고 멋지고, 건축적 개념이 훌륭한 건축이라도 비가 새고 결로가 생기며, 겨울에 추운 건축은 바람직한 건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안도 다다오의 '스미요시 주택'과 미스 반 데 로에의 '판스 워스 하우스'가 '좋은 건축'이 될 수 없는 이유이다. 예술 이전에 사람이 살기 위한 건축이 되어야지, 박물관에 전시될 미술품, 조각품과 같은 건축이 되어서는 안된다. 건축가 자신의 성취를 위해서, 건축주의 쾌적한 삶을 희생시키는 건축은 바른 건축이라 할 수 없다. '하자 없는 쾌적한 건축'을 '단단한 건축'의 개념에 반드시 포함시키고자 하는 이유이다.
짧은 글을 통해 '단순함 속의 단단함'의 정의, 뜻, 생각들을 정리해보았다. 아직은 덜 여물어지고 어설픈 글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의 이 글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차후 여러 번의 생각과 글쓰기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다듬어가야 할 생각들이다. 오늘의 글은 그 시작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