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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희 May 04. 2021

석류

아침에 석류를 먹다가 울컥했다. 아버지 생각이 나서.

몇 년 전에 시아버님께서 심어주신 석류나무에 올해 석류가 몇 개 열렸다.

껍질이 약간 벌어진 석류가 있어서 땄다. 껍질은 단단하다. 거미줄도 약간 끼어 있다. 햇볕에 시커멓게 그을었다.

툭 하고 잘랐다. 속에는 고운 석류알이 들어 있다. 먹어본다. 맛은 달다. 시댁 석류는 단석류라 석류를 먹을 때마다 행복했고 드디어 우리 집에서도 단석류를 맛보게 되었다.

석류알은 에메랄드 보석같이 곱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이렇게 고운 석류알은 저 시커멓게 변한 껍질 덕분이구나.

문득 친정아버지 생각이 난다. 아버지는 늘 남루한 옷차림이었다. 난 어린 마음에 그 점이 싫었다. 좀 부끄럽기도 했다.

이제와 돌아보면 아버지는 나를 지켜주는 껍질 같은 존재였구나. 이미 몇 년 전에 친정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딸은 친정아버지를 그리며 눈물짓는다.

그리고 우리 집 마당에 석류나무를 심어주시고, 몇 년째 마당에 고추와 가지, 오이 등의 모종을 심어주시고 여전히 우리를 돌봐주시는 시아버님을 생각해본다. 젊으신 시절에 관청에 갈 일이 생겼을 때 시장에 가서 양복을 한 벌 사 입고 가셨다는 시아버님. 우리 집에 볼일이 있어 오실 때에는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고 오시는 시아버님.

단단한 껍질 같은 두 분의 아버님과 두 분의 어머님 덕분에 나는 공부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길렀고, 일을 했다.

내가 아이들을 낳고 기르느라 일을 하느라 인생이 버겁다고 생각하느라 나를 지켜주신 껍질 같은 네 분에 대해 감사하는 데는 늘 소홀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생각해 본다. 석류가 벌어졌으니 따는 게 좋겠다고 말해준 남편 덕분에 나는 때맞추어 석류를 따고,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고 길렀구나. 남편은 아이들에게 껍질이 되어주느라 지쳐서 나에게 짜증을 부리기도 했구나.

석류를 베어 먹고는 달콤한 맛을 느끼면서 부모님들이 그러하셨듯이 나도 아이들에게 단단한 껍질이 되어 주어야지 하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아버님과 어머님의 껍질이 되어드려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해본다.

갱년기에 들어선 나에게 석류를 양보해주는 남편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석류를 먹고 힘을 내서 내게 주어진 인생을 씩씩하게 살아내야겠다.


(2020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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