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보았다. 어머님의 얼굴이 프로필 사진으로 되어 있고, 배경 사진이 나의 사진으로 되어 있다. 지난봄에 구룡포에 어머님 아버님 모시고 놀러 갔을 때, 유채꽃 사이에서 찍은 사진이다. 웬일인지 그 사진을 보는 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머님께는 내가 자랑스러우신가 보다. 어머님께 당신의 막내며느리인 나는 어떤 의미이기에 나의 사진을 당신의 프로필 배경 사진으로 저장해 두셨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는데, 자꾸 눈물이 났다.
더 잘 된 친구나 선배와 나 자신을 비교하면서, ‘난 아무것도 아닌데 뭘’ 하는 생각을 해 왔던 것 같다. 그런데, 어머님의 프로필 사진을 보고서야, 내가 얼마나 근사한 삶을 살고 있는지 알 것 같다. 그리고 어머님의 지원 덕분에 세 아이를 낳고도 그럭저럭 내가 하고픈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었음에 어머님에 대한 고마운 마음에 눈물이 났던 것 같다.
어머님과 나 사이에 기껏해야 한 세대 차이인데, 참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어머님께서는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하셨다. 어릴 때부터 베를 짜고 집안 살림을 하셨다고 한다. 한글을 깨치신 것도 얼마 되지 않는다.
반면에 나는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학에서 강의를 했으며, 박사학위 논문 외에도 몇 편의 학술지 논문을 출판했다. 물론 세 아이를 돌보면서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어쨌든 해 냈다. 나는 어쨌든 내 이름 석 자로 세상에서 살아냈다. 대단한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내 통장으로 들어오는 월급을 받아보았다.
그런데 한편 생각해 보면 어머님과 나 사이에 공통점도 있는 것 같다. 최근에 정년퇴직을 한 남편은 여전히 스스로 점심이나 저녁을 준비해서 혼자서 식사하는 일을 하지 못한다. 꼭 나에게 식사를 차려 달라고 요구하지는 않더라도, 내가 차려 주지 않으면 식사를 거른다.
아버님 역시 식사만큼은 어머님의 도움을 원하시는 것 같다. 얼마 전에 오랜만에 시부모님과 여행을 다녔다. 풍기 인삼 도매시장에 들러서 인삼을 사서 근처 식당에 가서 고기와 인삼을 구워서 맛있게 먹었다. 어머님과 아버님은 차 뒷좌석에 앉으셔서 자주 실랑이를 하셨다. 아버님과 좀 떨어져 있게 되었을 때 어머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버님의 식사를 준비하는 일이 이제 힘에 부치다고.
최근에는 간혹 아버님이 요리를 하신다. 아버님의 요리는 창의적이어서, 된장찌개에 말린 대추가 들어가 있기도 하고, 갈비찜인데 가격이 비싼 갈비보다는 가격이 저렴한 사태살이 더 많이 들어가 있기도 하다.
박사학위를 받은 지 십 년이 넘었다. 그동안에 늘 마음이 바빴다. 연구팀에서 일했으므로 써야 할 논문이 있었고, 해야 할 강의가 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세 아이의 대학 입시를 치렀다. 잠이 부족한 것은 물론이고, 늘 해도 해도 나의 일과 집안일은 밀리고 있었다. 그래서 아마도 내가 늘 인상을 쓰고 다니지 않았을까 싶다. 아마 어머님께도 그다지 상냥하고 좋은 며느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어머님께서는 늘 나를 지지해 주셨다. 어머님께서 나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주셨고, 반찬을 수시로 해다 주셨다. 최근에는 반찬을 해 주시지는 않지만, 늘 마음을 써 주신다.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받기 위해서, 내가 서울에서 몇 개월 머무는 동안 아이들을 돌봐 주셨는데, 그때 아이들에게 음식을 너무나 잘해 먹이셔서, 세 아이의 키가 훌쩍 컸었다. 둘째는 당시에 아침에 밥을 너무 많이 먹어서 학교에 가다가 토하기도 했다고 한다. 어머님께 고마운 일을 생각하면 도무지 다 셀 수가 없다. 그런데, 나는 어머님께 아무것도 해 드린 게 없다. 어머님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도 눈물이 났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