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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군 Apr 11. 2022

코로나, 그리고 신생아

#04 산후조리원은 병원이 아니다.

코로나가 극성인 시점에 아이를 가지기로 결정한 우리는 그때만 해도 아이가 태어날 때쯤이면 어느 정도 코로나라는 위협요소에서 벗어난 환경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와 달리 출산 시점에도 여전히 코로나는 우리 삶을 불편하게 만들고 긴장하게 만드는 가장 경계해야 하는 질병의 첫 번째 주자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었고, 우리는 불안감을 안고 예정된 출산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출산 이전에 병원은 꽤 여러 번의 코로나 검사를 요구했다. 먼저 출산 예정일 2주 전에 코로나 음성 확인이 필요했으며, 출산 48시간 이내의 코로나 음성 확인을 재차 요구했다. 덕분에 갑작스러운 PCR 검사를 반복했는데 모든 검사는 보건소 및 선별 검사소를 피해 병원의 유료 검사로 대체했다. 만삭인 아내와 함께 확진자를 만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검사소를 방문하는 것이 다소 불안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고, 두 번째로 왔다 갔다 할 만한 시간을 내기도 어려웠다. 


어쨌든 무사히 출산 후 복잡한 수속과 기본적인 회복기간을 마친 우리는 병원부설 조리원으로 이동했다. 

조리원은 임신 5주 차에 예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리가 없어 병원(무려 VIP)의 입원 기간을 하루 더 연장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이런 일은 꽤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사실 그나마도 조리원에서 사흘 정도의 지연을 예상했는데, 1명이 입소 취소가 되면서 운 좋게 일정이 나온 것이라고 한다. 처음 아이를 가진 입장에서 이런 모든 일은 생소하기만 했다. 


조리원의 시스템은 굉장히 체계적이다. 각 층마다 상주 간호사 1명과 신생아를 돌봐줄 수 있는 도우미 4인이 1 팀으로 구성되어 운영되고 3교대로 24시간 아이를 케어한다. 

산모를 위한 식단도 체계적으로 3끼가 제공되고 하루 두 번의 간식을 제공한다. 아내는 약 2주간 조리원에 있으면서 평생 먹을 만큼의 미역국을 먹었는데, 정확히 1끼를 제외한 모든 식사가 미역국이었다. 

지금도 아내는 미역은 쳐다도 보지 않는다. 


조리원의 시간은 꽤나 단조롭게 흘러갔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하는 나와, 수면을 취하는 아내. 출근한 동안에 모자동실 시간을 가지고, 내가 퇴근할 때 즈음에 다시 한번 모자동실.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TV를 켜 두면 어느새 잠들 시간이 도래한다. 단조롭기만 한 이런 일상에서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아이가 열이 좀 있는 것 같은데, 한번 볼래?"

손으로 만져봤을 때는 크게 열이 있다고 느껴지진 않았으나, 혹시 몰라 모자동실을 마친 후 조리원 도우미 및 간호사에게 아이의 열에 대해서 이야기 해준 후 혹시 문제가 있다면 연락을 달라 부탁했다.


아내는 패닉 상태에 돌입했다.

그날 밤 갑작스럽게 야간조에 배정된 조리원 간호사가 방을 찾아오더니 아이의 열이 내리지 않는다며 현재 체온 38도를 통보했다. 부산스러워진 우리에게 간호사는 절차상 119를 불러야 한다고 고지했으며 몇 분 뒤 119 구급대원이 조리원에 들이닥쳤다. 


3명의 구급대원은 뉴스에서나 볼 법한 복장으로 구급차에 아이를 태우는 것이 되려 위험할 수 있으니 먼저 객실에서 아이 확인을 먼저 해야 한다 설명했는데, 워낙 코로나로 인한 응급상황이나 신고가 많아서 혹시 모를 코로나 감염 위험도를 낮추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실제로 구급대원 및 구급차에서는 신생아를 조치할 방법이 전무한 것도 한몫을 했다. 


"일단 받아주는 응급실이 있는지를 확인할게요"

구급대원 중 한 분이 설명했고, 나머지 구급대원은 아이를 침대에 눕힌 후 체온을 확인하고 기본적인 진단을 내려준다.

"귀에 꼽는 방식의 체온계는 실제 체온보다 높게 측정되는 경향이 있어요."

"보다 정확한 체온 확인은 겨드랑이에 두고 확인해야 할 것 같은데, 혹시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조리원에는 단 한 가지의 체온계만 구비되어 있어서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들어섰다. 

일단 어떻게든 응급실로 갈 것인가, 아니면 조금 더 조리원에서 상태를 지켜볼 것인가. 


선택의 고민도 할 틈도 없이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던 구급대원 한 분이 말했다.

"인근 모든 응급실에서 신생아는 받기 어렵다고 합니다. 코로나로 인한 응급실 내원이 많아 신생아가 너무 위험해질 환경이라고 하네요."

이어서 설명해줬다. 

"강남 세브란스에서 내일 오전에 진료가 가능하다고 하고, 나머지 병원은 좀 어렵겠습니다."


분당에서 수배를 했는데, 분당 제생병원은 물론 삼성의료원, 서울대학교 병원 등 경기권 외에 아산병원 등의 서울권 병원까지 확인해도 어느 한 곳 신생아를 받을 수 없다는 답변.

이유는 모두 같았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신생아의 감염을 막을 수 있는 준비가 충분하지 않고, 소아병동의 상당수가 코로나19 응급 환자를 위해 사용된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내는 주저앉았다. 


우리 부부가 처음으로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에 대해서 피부 깊숙이 인지하게 된 계기였는데, 이때 이 바이러스에 대해서 가장 분노하지 않았나 싶다. 


반쯤은 외부요인으로 우리 가족은 일단 오늘 밤 기다려보기로 결정했고, 거의 뜬 눈으로 아침까지 아이의 상태를 계속해서 확인했다. 신생아실에서는 15분 단위로 체온을 재면서 모니터링을 했고 이른 아침 다행히도 아이는 한참 동안 방귀를 뀌고 난 후에 정상 범위로 체온이 돌아왔다. 


1년 같은 하룻밤을 보낸 후 아내는 그제야 겨우 잠이 들었고, 깨어난 후 말했다.

"난 모성애가 없는 줄 알았어. 근데 그게 아니었나 봐. 점점 모성애가 강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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