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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화위복 May 23. 2021

동양식 중앙집권체제의 명과 암

남경태의 『시사에 훤해지는 역사』를 읽고

우리는 현재 좋든 싫든 서양식 문명의 영향권 아래서 살고 있습니다. 국가 운영의 기본 시스템부터가 서양에서 태동한 의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의식주를 비롯하여 음악, 미술, 스포츠, 방송, 영화에 이르기 까지 서구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을 찾기 힘듭니다. 비단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서양 문명이 전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서양 문명이 전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른 대륙의 국가들을 압도하는 서양 국가들의 수백 년간 축적해온 부와 과학기술력 때문입니다.



서양이 동양을 능가하는 막대한 부를 축적하기 시작한 시점은 15세기 대항해시대 부터입니다. 대항해시대의 출발은 북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이 지중해를 통한 동방 무역을 장악하자, 이에 소외되어 있던 대서양의 스페인, 포르투갈 같은 국가들이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려는 의지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출발한 배들은 아프리카 남단을 거쳐 동방으로 가는 새로운 항로는 물론, 새로운 대륙(유럽인의 시점 기준)까지 발견하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타 대륙의 국가들을 정복하고 식민지화 하면서 유럽대륙에 흘러 들어온 부는 막대했습니다. 이 부를 좇아서 황금알을 낳고 싶어하는 유럽인들이 너도나도 항해에 몸을 던졌습니다. 그 당시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는 항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위험성이 큰 사업인 만큼, 현대의 스타트업과 그 성격이 비슷하였습니다. 따라서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공동 투자, 증권, 보험, 신용과 같은 근대 자본주의 시스템의 기본 개념들이 발전하였습니다. 흔히들 경제학 만큼 복잡한 학문이 없다고 합니다. 이 모든 복잡한 경제 시스템은 국가 주도의 치밀한 계획만으로 탄생할 수 없습니다. 그때마다 개인들의 필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탄생하고 숙성하면서 근대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유럽 대륙을 지배하는 강력한 중앙 정부와 황제가 없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었습니다.



반면 동양의 국가들은 언제나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지향하였습니다. 남자라면 누구나 읽어봤을 『삼국지 연의』는 한(漢) 제국 말기에 위, 촉, 오 세 개의 나라로 분리된 중국 대륙을 다시 통일하고자 하는 영웅들의 이야기 입니다. 또한 남자라면 역시나 누구라도 해봤을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게임의 최종 목표도 중국 대륙 통일입니다. 게임 내의 모든 도시를 점령하면 엔딩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게 뭐라고...이거 볼려고 밤을 지새웠습...



이처럼 진시황이 진 제국을 창건한 이후 모든 중국 왕조의 목표는 분열된 중국 대륙을 통일하여, 중앙정부의 강력한 권력으로 통치하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의 영향을 받은 통일신라 이후의 우리나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비록 먼 땅의 중국의 황제를 모시고 있었지만, 한반도의 왕은 적어도 한반도 안에선 만큼은 절대 권력자였습니다. 고려, 조선 왕조는 한반도를 각각 수 백년간 지배하였으며, 왕조가 망조에 이르면 그저 다른 왕조로 교체가 되었습니다.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라는 속박 때문에 국가의 틀을 뒤집을만한 큰 혁명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동양식 중앙집권체제 안에선 위험성이 큰 모든 사업들은 국가의 허락 없이는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대항해시대에 앞서 훨씬 더 큰 규모의 대규모 해상 원정이었던 명 제국의 '정화의 원정'도 신생국 명나라를 알리라는 중앙 정부의 의도에 의해 기획된 것이었습니다. 비록 정복과 상술이라는 못된 의도에서 시작했지만, 유럽이 대항해시대 이후 엄청난 부와 지식을 축적한 것에 비하면 그 성과가 미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중국 대륙외엔 오랑캐라는 오만한 중화사상 때문에 새로 접촉한 이방인들을 상세히 알거나 교류할 의지조차 없었던 것도 한 몫을 했겠지요.



동양식 중앙집권체제의 한계는 동서양의 과학기술력 차이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서양 과학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진리'에 대한 탐구 입니다. "세상 만물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으로 철학이 시작 되었습니다. 세상의 이치를 탐구하기 위해 여러가지 개념을 도입하다보니, 물리학, 화학, 수학 등이 서로 밀접하게 영향을 미치며 발전하게 됩니다. 반면 '천리'를 이어받은 '천자(중국 황제)'를 중심으로 오래전부터 안정적인 국가 체계를 운영하고 있는 동양에선 세상의 이치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였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기 유학은 인과 예를 탐구하기 시작했으며, 결국은 동양 철학은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발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근본을 탐구하는 과학이 기초학문이 되다 보면, 새롭게 발견된 것들은 내가 모르는 '새로운 지식'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의 천재적인 과학자들은 유럽 대륙 밖의 미지의 세계에서 흘러나오는 엄청난 양의 정보들을 치밀하게 탐구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고스란히 동서양의 과학기술력의 격차로 이어집니다.





중앙집권체제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중앙집권체제는 단일한 체제아래 안정된 사회를 구축할 수 있으며, 국가 단위의 엄청난 단합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지금은 지방자치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수백 년간 중앙집권체제에 익숙하여 그 잔재가 여러 요소에 남아있는 우리나라가 위기만 되면 엄청난 단합력을 발휘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사태에서도 서구권 국가들과는 달리 중앙 정부의 통제아래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보건적,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 한 것도 분명 그 성과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말이 있듯이, 중앙으로의 집중은 과거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도 경쟁력있는 대도시 서울을 만들어낸 원동력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엄청난 경제 대국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조업 위주의 'FastFollower'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중앙집권체제에 대한 익숙함에 따른 한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기업 경영을 예를 들어보면, 우리나라의 회사들은 이전 왕조와 마찬가지로 강력한 경영진들의 통제와 의사결정아래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고 신속하게 움직이는 형태입니다. 회사일을 하다보면 때로는 '이런 사소한 것 까지 여러 관련부서와 임원 결재를 받고 진행해야 하는구나'라고 느끼는 점들이 간혹 있습니다. 이러한 경영방식이 가장 잘 맞는 분야는 역시 실책을 최소화하여 안정적인 경영이 중요한 제조업 분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손꼽히는 제조업 강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반면 유럽은 위에서 설명했듯이 안정된 중앙권력이 부재했기 때문에 민간으로 부터 여러가지 형태의 정치제도나 경제 시스템들이 활발한 실험과정과 시행착오를 거쳐 근대화를 이루어 낼 수 있었습니다. 이를 기업 경영으로 옮겨보면, 현재 세계를 주도하는 미국의 많은 회사들이 뛰어난 직원 개개인의 능력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수평적, 자율적, 창의적 조직문화를 지향합니다. 특히나 넷플릭스 같은 경우는 검증된 뛰어난 직원들을 선발한 뒤, 모든 규칙을 없앤 것으로 매우 유명합니다. 이러한 점들이 특히나 창의력이 중요한 IT 산업을 미국이 'FirstMover'로서 주도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기관이나 기업들도 수평적 문화를 도입하려 하고 있지만, 유구한 세월동안 중앙집권체제부터 파생된 문화를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몇몇 대기업들이 주도하는 제조업 강국, 그 이상의 발전을 꾀하려면 수평적 문화의 도입이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글을 마칩니다.




뛰어난 직원들에겐 어떠한 통제, 규칙도 없는 것으로 유명한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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