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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화위복 Mar 18. 2021

[슬램덩크] 강백호의 점프슛 이야기


전국대회 본선 직전 팀원들이 연습경기를 치르러 떠난 사이, 강백호는 안 감독님과 체육관에 남아 홀로 '점프슛 2만개' 연습을 시작합니다.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아마 작가는 이 시기즈음에 얼마 남지 않은 완결을 예견한 듯 보입니다. 완결편의 클러치 타임을 주인공이 장식하기 위해, 강백호는 오픈 찬스에서 미들레인지 점프슛정도는 장착할 필요가 있었지요. 극적인 완결을 연출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가 뻔히(?) 보이는 전설의 '점프슛 특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러나 강백호의 점프슛은 완결편 버저비터의 역할 외에 또다른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것은 이 점프슛 특훈이 산왕전 강백호의 각성의 기본적인 토대가 된 것이지요. 점프슛 특훈은 강백호가 불량소년 풋내기에서 비로소 어엿한 북산의 농구선수로 성장하는 계기가 됩니다. 어떻게 스토리가 그렇게 진행되었는지 점프슛 특훈부터 산왕전까지의 흐름을 한 번 살펴 보겠습니다.


점프슛 특훈 바로 전 경기인 능남전만 하더라도 강백호는 철저한 풋내기였습니다. 빅맨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스킬들(레이업, 골밑슛, 리바운드)을 몸에 익히는 데 성공했지만, 여전히 팀과 따로 노는 경우가 많았지요. 경기 초반 황태산에게 탈탈 털린 강백호는 이후 완벽하게 멘탈이 붕괴되어, 팀내 존재감을 상실하게 됩니다. 능남전의 후반 초중반은 강백호가 북산 농구부에 데뷔한 이후로 가장 존재감이 없던 시간이었을 겁니다. 그렇게 되자 경기에 대한 집중력은 점점 떨어지고 전국대회 진출이 달린 중요한 경기 중에도 이상한 망상을 하기에 바쁘죠.


전국대회 진출이 걸린 중요한 경기 중에도 망상...


물론 클러치 타임이 되어서 특유의 본능이 되살아나 황태산과 윤대협, 변덕규를 연거푸 막았지만, 이것은 유명호 감독이 말했듯이 그저 '동물적인 본능'이 발현된 것이었습니다. 클러치 타임에 매우 위험한 수비방법인 자신의 수비 위치를 버리고 공만 따라간 것이 운 좋게 득이된 케이스이지요. 이런 점들 때문에 유명호 감독이 강백호를 시한폭탄과 같은 북산의 '불안요소'로 괜히 꼽은 것이 아닐 겁니다.



점프슛 특훈을 마친 후 강백호가 처음으로 맞이한 공식전인 풍전전. 강백호는 빨리 특훈의 성과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무리한 슛을 던지다가 이달재와 교체되어 벤치에 앉게 됩니다. 북산의 스타팅 멤버가 된 이후 오랜만에 벤치에서 동료들의 플레이를 지켜 본 강백호의 태도는 이전과 사뭇 달랐습니다. 바로 서태웅의 플레이가 진심으로 '대단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지요.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요. 그 전까지만 해도 소연이와의 관계에 대한 질투에 눈이 멀어 그다지 눈여겨 보지도 않던 서태웅의 간결하면서도 정확한 플레이가, 본인이 고생해서 점프슛 연습을 하고 나서야 얼마나 대단한 플레이인지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신은 이제서야 겨우 오픈상황에서 캐치앤슛을 해서 성공시킬까 말까한 점프슛을, 서태웅은 페이크를 동반한 자유자재의 드리블 돌파 후 풀업으로 던지는 것을 보니 그간 실감하지 못했던 서태웅과의 격차가 이제서야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이 풍전전 전에도 강백호가 서태웅에게 1 on 1을 신청했다가 무참하게 깨진 적이 있는데, 그 때까지만 해도 강백호는 '내가 농구를 조금만 더 빨리했다면 이겼을 것이다' 정도로만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점프슛 특훈을 하고나자 서태웅 정도의 완성도는 단순히 1~2년의 차이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비로소 받아들이게 됩니다.


다행인 점은 그러한 깨달음이 강백호가 좌절이 아닌 농구인으로서의 '진정한 시작'으로 느끼게 되는 서막이 된 점입니다. 점프슛 연습을 통해 강백호는 비로소 자신의 실력이 어느정도의 위치인지를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편안함을 느낍니다. 소연이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이것, 저것 되도 않는 플레이를 해보려는 망상에서 한결 자유로워졌습니다. 예전 같으면 윤대협에게 그랬듯이 산왕전에서 쓸데없이 정우성에게 라이벌 의식을 보이며, 경기에 집중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인이 그 정도의 레벨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 반대급부로 팀에 기여할 수 있는 본인의 특기는 따로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가공할 운동능력과 말체력을 활용한 리바운드와 허슬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모두가 산왕의 위력에 정신이 나간 사이에 강백호 혼자 산왕을 무찌른다고 호언장담합니다. 동료들은 이것을 풋내기이기 때문에 두려움의 감정도 모르는 것으로 치부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산왕의 압박에 막혀 코트 위에서 도무지 무엇을 해야할 지 몰랐던 동료들에 비해, 강백호만이 승리를 위해선 자신이 해야만 하는 최선의 플레이(공격 리바운드)를 명확하게 알고 있었기에 나온 자신감이었겠지요. 그거 하나 만큼은 코트 위 열 명중에서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으니까요.


실제 농구에서도 이러한 비슷한 사례가 있는데, 바로 現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센터 자베일 맥기를 들 수 있습니다. 축복받은 신체와 폭발적인 신체능력을 가졌지만, 본헤드 플레이로 일관하며 NBA 커리어가 거의 끝나가던 그를 의외로 당시 최강팀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에서 계약을 제안합니다. 쟁쟁한 동료들 덕분에 워리어스에서는 맥기에게 딱 두 가지의 역할만을 맡깁니다. 약 15분간 뛰면서 높이를 활용한 앨리웁과 림 프로텍팅. 결과적으로 이 구간에서 맥기는 리그 최강의 효율을 자랑했고, 커리어의 끝을 보던 선수에서 우승팀의 게임 체인저로 변신하는데 성공하지요. 물론 그 다음 이적한 LA 레이커스에서 선발 센터로 역할을 조금 더 주자, 역시나 효율도 급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요. 그만큼 팀의 플레이 효율의 관점에서, 선수가 자신의 역할에 집중하며 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만약 슬램덩크에서 위와 같은 강백호의 심리적인 흐름의 묘사가 없었다면, 산왕전의 강백호의 대활약은 그저 초고교급 선수 '빅3'가 있는 사기팀을 이기기 위해 작가가 울며 겨자먹기로 설정한 '주인공 버프' 정도에 그쳤을 것입니다. 같은 MOM급 활약을 한 정대만과는 다른 느낌입니다. 정대만이야 공백기로 인한 체력, 감각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지 이미 기량은 완성되어 있던 선수이고, 슈터가 이전 경기에선 슛을 다 놓쳤다가도 그 다음 경기에선 다 꽂아 넣는 것이 뜸한 일은 아니니까요. 산왕전의 승리를 위해선 정대만 외에 강백호의 활약이 반드시 필요했고, 이를 위해 작가가 꽤나 치밀하게 강백호의 심리흐름을 묘사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흐름을 따라가면서 강백호 각성하는 과정을 즐기는 것도 산왕전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또 하나의 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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