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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화위복 Mar 24. 2021

[직장생활] '야근문화'가 문제인 이유


대한민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야근은 매우 친숙한 존재입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었지만, 야근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닙니다. 주 8시간씩 5일을 근무해도 12시간이 남기 때문에, 만약 52시간을 오롯이 채운다고 가정하면, 최소 3일은 야근을 해야합니다. 즉, 52시간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닙니다.


'야근' 자체가 나쁜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야근을 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정말 일손이 부족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엔 두말할 것 없이 회사에서 빠르게 사람을 충원해야 합니다. 혹은 '자신의 업무 역량 향상' 혹은 '업무의 높은 완성도'를 위해, 개인의 선택으로 야근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에이,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있어?'라고 반문하시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없는 케이스도 아닙니다. 일의 성취감으로 본인의 자아 정체성을 찾는 사람들 혹은 빠른 승진을 원하는 사람들도 직장인의 여러 유형들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야근을 하는 것에 대해선 나쁘게 볼 필요가 없습니다. 회사의 입장에서도 생산하는 제품의 완성도가 상승해서 좋고, 그 회사의 제품을 이용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더욱 질 좋은 제품을 이용할 수 있으니까요.


또한 상황에 따라 야근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모든 부서가 사전에 합의한 일정 내에 납기를 준수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추가 근무를 해야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엔 당장 납기가 코 앞인데, 근무시간이 초과했다고 무책임하게 퇴근 하는 것을 옳다고 보기는 매우 힘들죠. 유연근무제를 활용하여 납기 전에는 초과 근무를 하여 일정을 준수한 후, 납기 후엔 빠른 퇴근을 하는 것도 방법일 것입니다.


따라서 위와 같은 상황들처럼 바람직한 야근도 존재하기 때문에, '야근' 자체를 무조건적으로 죄악시하면, 대한민국의 직장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야근의 부작용에 대해 정확히 진단할 수 없습니다. '야근' 자체보다는, 나는 일이 다 끝나서 집에 가려고 하는데 아무도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는, 그렇게 퇴근하려고 하니 꽤나 눈치가 보여서 다시 자리에 앉게 되는,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야근시간으로 순위를 매겨 누가 일을 열심히 했는지는 판단하는, '야근문화'가 생각보다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직장 생활을 8년 정도 하다보니, 당해의 회사 정책에 따라 야근을 아예 하지 않은 시절도 있었고, 권장 야근 시간을 채워가며 하는 시절도 있었습니다. 후자의 '야근문화'를 겪고 나니, 개인적인 차원은 물론 회사의 입장에서도 정말 비효율적이며 꽤나 심각한 악역향을 미친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따라서 저의 경험을 토대로 '야근문화'가 개인과 회사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1. 천천히 해~



'야근문화'로 인해 하루에 기본 1~2시간, 많게는 3시간 정도의 야근이 당연한 환경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직원에게 업무가 주어지면, 그 직원은 집중해서 일을 빠르게 처리해야 할 이유가 '절대' 없습니다. 내가 열심히 하든지, 쉴거 다 쉬어가면서 천천히 하든지 어쨌든 집에 늦게 갑니다. 그나마 오늘은 기분이 좋아서 빨리 일을 처리하면, 괜히 다른 일만 더 주어질 뿐입니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한참 야근시간을 채워야 했던 시절에 저는 '각재기'의 달인이 되었습니다. 이 일은 몇 시까지 마치고, 저 일은 몇 시까지 마치면 언제쯤 퇴근하겠구나, 괜히 이 일을 빨리 했다간, 저 일이 더 주어져 집에 더 늦게가는 사태가 벌어진다, 식의 '각을 재는' 행동 말이죠. 그 날의 일을 다 마치면 언제라도 집에 빨리 갈 수 있는 상황이었더라면, 동료들과의 티타임이나 메신저도 차단한 채 눈에 불을켜고 업무에 몰입해서 빠르게 끝냈을 일도, 그렇게 늘어지게 처리하고는 했습니다.



2. 기술혁신? 그게 뭔가요?



일을 늘어지게 처리하는데 익숙해지다 보니, 비효율 업무 혁신의 필요성에 대해 무감각해 집니다. 회사 업무를 하다보면, 정말 비효율적인 업무들이 많습니다. 정말 중요한 일이 별거 아닌 형식적인 프로세스에 막혀서 지연되는가 하면, 엑셀 매크로 등으로 간소화 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한 단순 작업도 아직도 몇 년 전 방식 그대로 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처럼 세상을 뒤집을 혁신도 중요하지만, 일반 직원들에겐 이런 불합리한 업무의 개선이 하나하나 쌓여 곧 회사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야근문화' 내에선 이런 불합리를 개선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늦은 시간까지 시간을 떼우려면 효율성에는 큰 관심이 안생기죠. 열심히 머리를 써서 업무 혁신으로 효율성을 향상시켜 일을 빨리 마쳐놨더니, 다시 또 다른 일이 주어지거나, 그렇게 아낀 시간에 일 안하고 논다는 소리만 듣기 쉽상입니다. 정시퇴근이 보장되면, 불이나케 달려들어 손 쉽게 개선될만한 작업들이 그렇게 비효율적으로 몇 년간 방치되고 후배들에게 전수되는 경우가 다반사 입니다.



3. 그래서 누가 일을 열심히 하는데?


'야근문화'가 정착되면 '일을 열심히 한다 = 야근시간'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 지표 중 눈에 띄기 가장 쉬운 지표이니까요. 관리자가 실무자의 바로 옆에서 세세히 관찰하지 않는 이상, 누군가의 업무 성과를 제대로 판단하기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리더의 자리가 더욱 책임감이 있고, 직원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봐야만 하는 자리이겠지요. 그러한 리더들에게 '야근시간'을 활용한 업무성과 평가는 매우 강력한 유혹입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꼼꼼한 사전 계획과 예상되는 리스크들을 미리 준비하여 빠르게 대처한 결과 별다른 이슈없이 업무를 완수한 A라는 직원과, 어쨌든 매일같이 자리에 오래 남아 늦은시간까지 무언가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어 업무를 완수한 B라는 직원이 있을 때, A직원 보다는 B직원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더 간편합니다. '야근문화' 안에선 심지어 그 리더조차 야근에 지칠때로 지쳐서, A와 B의 업무능력 및 성과를 면밀히 검토하는, 그런 번거로운 평가방법을 선택하지 않게 됩니다. 이처럼 누구나 다 야근을 하는 '야근문화' 안에선 공정한 평가는 더욱 어렵고 번잡한 일이 됩니다.



4. 늘어나는 '잡담', 부정적인 분위기의 확산


아무리 일하는 회사이지만 직원들간의 소소한 '잡담'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50분을 근무하면, 10분은 반드시 쉬어야 하는 만큼, 쉬는시간에 직원들간 가벼운 대화는 큰 휴식방법이 됩니다. 서로의 관심사를 공유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도 있고, 내가 잘 모르는 생활의 좋은 정보들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회사생활에 도움이 되는 조언들을 주고 받을수도 있구요. 이처럼 쉬는시간에만 가볍게 한다는 조건 아래선, '잡담'은 순기능을 발휘합니다.


하지만 '야근문화' 안에선 기나긴 근무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쉬는시간 외 근무시간 도중의 '잡담' 비중도 크게 늘어납니다. 잡담을 해도 근로비를 받아가는 시스템인 만큼, 어차피 일찍 집에갈 수 없다면 안 할 이유가 없게 됩니다. 휴게실에서만 권장되는 잡담이 사무실에서도 빈번하게 행해집니다. 직장인 '잡담'의 주요 주제는 재테크(주식, 부동산), 정치, 연예, 뒷담화, 골프, 낚시 등의 가십거리 위주로 정해져 있습니다. 이러한 대화들이 사무실에서 빈번히 행해지면, 대화하는 당사자들 뿐만 아니라 주변에 억지로 들어야 하는 직원들의 근무 의욕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넷플릭스의 CEO 리드 헤이스팅스가 쓴 『규칙없음』에서는, 조직 내에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직원이 단 한 명만 섞여 있어도 그 조직의 전체적인 성과가 저하된다고 이야기 하지요.



5. 야근 수당에 맞춰져 있는 가계


야근을 당연하게 하다보면, 어느새 직원들의 가계가 '추가수당'을 포함하여 맞춰지게 되기 마련입니다. 이 상태가 되면, 직원들 스스로가 야근을 오히려 자발적으로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한 번 늘어난 소비를 다시 줄이기는 대체적으로 힘이 드니까요. 야근을 해야만 생계가 유지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됩니다. 자발적인 야근러가 많아지게 되면, 나중엔 '야근문화'의 비효율성을 깨닫고 철폐하려고 해도, 그 움직임조차 힘을 잃게 됩니다.


실제로 제가 '야근문화'를 경험했을 시절, 2주에 하루씩 '패밀리 데이'를 부여하여 빠른 퇴근을 권장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이 날에 초과근무를 하려면 부서장의 결재까지 받아야 했었지요. 이렇게까지 정책을 시행해도 야근을 하는 직원이 너무 많다보니, 결국은 '패밀리 데이'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적이 있습니다. 2주에 하루도 시간을 못 낼 정도로 많은 직원들이 미친듯이 바빴느냐면, 당연히 아니었거든요.





이번 글에서는 '야근문화'의 부작용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야근문화'는 직원 개인의 삶의 질의 저하는 물론, 회사의 입장에서도 야근수당은 수당대로 나가기 때문에 생산성이 상당히 저하됩니다. 회사가 이런 폐혜와 비효율성을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면칼퇴' 혹은 주 52시간제를 넘어 주 40시간제와 같은 강력한 조치들을 취하지 못하는 것은, 줄어든 근무시간으로 인해 당장 중요한 업무들이 삐걱이는 단기적인 우려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야근문화'로 인해 직원들 대부분이 자발적으로 비효율적인 야근을 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발생했듯이, 이러한 단기적인 문제들을 극복하고, '칼퇴문화'를 장기적으로 잘 시행해 나간다면, 역으로 직원들 대부분이 자발적으로 업무를 효율적으로 하려는 선순환의 고리도 발생할 것이라 믿습니다.


'칼퇴문화'를 '잘' 정착시키기 위해선, 단순히 근무 시간이 다 되었으니 사무실의 불을 끄고 집에 보내는 등의 기계적인 조치로는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업무시간에 최대한 업무에 집중하면서, 업무를 효율적이고 긴급하게 처리하는 직원들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해주는 면밀하고 세심한 직원평가 제도가 우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칼퇴문화'가 잘 정착된다면, 직원은 직원대로 삶의 질을, 회사는 회사대로의 생산성 향상 및 비용 절감을 이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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