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2017년 베를린.
드레스덴 미술대학교로 떠나기 전 매일 한장씩 빈 엽서에 그리던 그림은 예뻤다.
그 양 또한 기내용 트렁크를 가득 채울 양이었다.
학교에서 그리는 그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달라지고 싶다, 아니 독자적인 그림을 찾고 싶다는 열망에 가슴이 답답하고 미칠 것만 같았다.
2018년 여름방학.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는 독일의 뜨거운 여름 방학.
텅 빈 작업실엔 늘 혼자였고, 땀에 온몸이 젖고 머리가 몽롱해져 버틸 수 없을 때까지 더위에 맞서 그렸던 30*60 오일 파스텔 드로잉 20점. (중 9점 원화를 전시합니다)
예쁘게 그리는 습관을 버리고 싶어서
디테일하게 파고들 때마다 손을 멈추었다.
지루한 싸움. 한 달 동안 매일매일 계속 되었다.
나의 습관적인 선이 아닌,
멋져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닌,
오롯이 내가 그어 낼 수 있는 선을 찾으려 부단히 애쓰는 마음가짐은 흡사 투혼과 같았다.
차라리 처음 그리는 사람의 손을 원해 왼손을 쓰기도 했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난 미련한 구석이 있다. 더위를 먹고 정신을 잃어 큰일 나겠다 싶을 때까지 열중했다.
보이지 않는 희미한 단서를 붙들고 놓치지 않았다. 오히려 더위로 몽롱해져서 그릴 수 있었던 그림일지 모른다.
“더위와 나의 습” 과 격렬한 전투를 벌인 외딴 작업실. Pfotenhauerstr. 81/83 in Dresden.
매 순간이 뜨겁고 고독했고 가장 치열했던 순간은
뿌듯함과 그림을 남겼다.
이 연작은 더이상 더위로 작업실을 갈 수 없게 될 무렵에 이르러, 어쩔 수 없이 3년 만에 Adobe를 켜고,
디지털 작업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