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같은 성향이면 좋겠지만 우리는 완전 정반대라는 걸 시간이 갈수록 체감한다. 남편은 주말이면 집에서 먹고 자고 티브이 보며 뒹굴면서 주중의 스트레스를 푸는성향이지만 나는 밖으로 여기저기 쏘다다니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성향이다. 이문제로 애들 어릴 때는 서로 옥씬각씬한적 많았지만 남편은 푸념하면서도 대체적으로 따라주는 편이었다.
이제 애들도 커서 객지에 생활하고 부부만 남아 예전에 비해 시간이 남아도니 무료해지기 시작했다. 나도 과거처럼 여기저기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하루에도 여러 군데 쇼핑몰을 전전하던 에너지는 다 어디로 가고 소파에 기대어 핸드폰 하거나 책을 보거나 동네 헬스장 다녀오는 수준에서 주말을 보내는 것이더 편해졌다. 그러다 최근 주변 누군가 주말에 나들이 다녀왔다며 ‘퇴직하면 아파서 돌아다니지도 못해 , 그나마 돌아다닐 수 있을 때 열심히 돌아다녀야지.’ 물론 많은 사람들이 늘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말을 듣는 순간 ' 맞아, 지금 보다 더 나이들면 돌아다니기 힘들것같다' 라는 생각이 강하게 다가왔다.
남편에게 말했다. “ 우리 나이 들면 더 못 다니니 지금부터 매주말에 근처 어디라도 다녀오고 밖에서 밥도 먹고 그러면 안 될까요”
남편은 웃으며 “그러면 격주로 합시다. 매주 간다는 것은 너무 피곤한 일이요. ”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싫어하는 남편이 격주라도 다니는 것에 찬성하니 웬일인가 싶기도 하고 나름 기대를 했다.
금요일 저녁 잠들기 전에 “ 낼 아침 9시에 출발합시다”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내일 아침 9시에 출발한다는게 맞나요 ?”라고 남편은 되물었다. 확실히 기억할려고 하는것 같았다. 남편은 갱년기 때문인지 늘 새벽에 일어난다. 부인이 아침밥을 차리기 전에 일어나면 바로 입에 뭔가를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지 그 밥을 차리는 몇분의 시간을 기다리지 못한다. 그래서 앞으론 남편이 먹을 것을 저녁에 만들어놓고 자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 여전히 남편은 새벽 6시쯤 일어나 냉장고를 뒤지더니 밥통에 있는 밥을 전부 먹어치우고는다시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사이 시간은 9시가 넘어버렸다. 9시 반쯤 남편을 깨우니 비몽사몽 한 눈으로 거실로 나와 시계를 확인하더니 “10시에 출발합시다”하면서 남편은 코를 골며 자기 시작했다. 하지만 10시가 넘어도 남편은 일어날 기미가 안 보였다. 그냥 나가지 말까 하다가 겨우 10시 15분쯤 남편을 깨우니 급하게 일어나 말없이 나갈 채비를 하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나도 별말을 하지 않았다. 여기서 잔소리를 했다가는 평화로운 주말의 나들이가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고자 하는 1시간 거리의 호수가 있는 곳에서 수변길을 걷고 카페에 가서 차를 마시며 경치를 보며 멍 때리는 상상을 했다. 남편과 차를 타고 가면서 남편은 내비게이션으로 맞춰둔 목적지를 향해 의무적으로 운전해 가면서 남편은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가끔 하품만 늘어지게 할 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도 뭐 신나는 일이 있다고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았다. 속으론 ‘이게 무슨 나들이람 ‘ 아무 이야깃거리 없는 목적지를 향해 의무적인 나들이일 뿐이었다. 중간에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르자고 하니 남편은 “왜 들르냐”라고 하는 것이다. “물 좀 삽시다”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산건 물과 뻥튀기 두 종류였다. 가는 내내 나혼자 아삭아삭 하며 뻥튀기 부스러기를 옷에 떨어뜨리며 며칠 굶은것마냥 욕구불만을 해소하듯 먹었지만 남편은 끝내 먹지 않았다.
겨우 그렇게 1시간을 운전해 갔지만 우리가 간 목적지는 이상한 곳으로 가고 있었다. 분명 내비게이션 목적지인데 가고자 하는 길은 아주 좁은 초라한 동네 골목길 같은 곳이고 우리 같은 사람 때문인지 길목이 드럼통으로 막아져 있었다. 그건 바로 호수 인근 마을쯤 되는듯 했다. 주차장 쪽으로 가야 하나 싶었다. 아니면 주변 카페를 검색해서 그곳으로 맞춰놓고 가야했다. 긴 시간 운전해 와서 또다시 그곳을 찾기 너무 귀찮았다. 어쩔 수 없이 그곳은 나중에 가기로 하고 그 근처의 작은 공원을 갔다. 그 초라한 공원에는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깊은 산속 가운데에 있는 데다 주변 부대시설도 없는 곳이라 사람들이 쉽게 찾지 않는 곳이었다.
그곳을 거닐며 남편은 우리나라 정치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의 눈은 허공을 응시하며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리기 시작했다. 영혼 없이 “그러니까,,”하면서 응수를 했다. 이렇게 재미없는 나들이라니. 퇴직한 후의 나의 주말은 얼마나 더 재미가 없을까 생각했다. 내가 먹고자 하는 것에 대해 남편은 No라고 할 것이고 가자고 하는 것도 귀찮다고 할 것이다. 남편은 낚시 어떠냐고 전에도 물어봤다. 낚시가 정말 하고 싶은지 몇 년 전부터 계속 낚시 노래를 불렀지만 나의 입장에서는 영 내키지 않는다. 부부가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다면 주말이 더 풍요로울 텐데 남편이 좋아하는 탁구나 낚시 볼링 이런 것에는 도저히 흥미가 붙지 않는다. 남편은 혼자 탁구를 레슨 받고 있다. 낚시 같이 가는 거 어떠냐고 또다시 남편이 물어보길래 “지금 방생해도 모자랄 판에 불쌍한 고기를 낚는 낚시라니요..”했더니 남편은 “시끄럽소!!!”라고 했다. 내 입장에서 낚시란 긴긴 시간 동안 물고기를 잡기 위해 기다리는 위험한 갯바위나 이상한 호수를 떠올리게 하고, 잡은 물고기를 잘라서 탕을 끓이는 행위 그 자체가 너무 야만적으로 생각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말했다. “내가 다시는 자기를 데리고 오나 봐라...” 그러자 남편은 자기의 의도 데로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주말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서는 부부각자 자기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즐기기 위해 그동안 하지 않았던 것을 찾는 것도 어렵거니와 50살 넘어 관심 없는 분야에 의무적으로 동참한다는 것은 너무도 재미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 하기 싫은 것을 같이하면서 충분히 티격태격할 무수한 이유도 많이 발생하기에 나이 먹어 이제 싸울 에너지도 없는데 그런데 힘을 쏟는 것도 무리이기 때문이다. 나이 드니 하루하루의 일상도 중요하지만 주말일상도 소중하다. 직장가지 않는 주말 일상을 잘 보내야 이것이 모여 알찬 인생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그냥 쿨하게 각자 알아서 보내기로했다. 그리고 오늘 알게된 충격적인 이야기는 내가 가고자하는 호수를 검색한 지역이 그 지역이 아니었다. 지역과 지역의 경계에 있었지만 다른 지역으로 검색했으면 정확히 갔을것이다. 나 역시도 나들이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었지 세부적인 일정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댓가를 치른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