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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Aug 18. 2024

섬소녀의 오래된 기억

"**야 감 먹을래??"

눈을 떴을 때 병실에서 소녀의 엄마와 동네 삼례할머니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삼례할머니가 주려는 감을 받으려고 손을 내 민 순간 상황을 희화화 하는 능력이 있는 소녀의 어머니는..." 먹을 것을 보면.. 아주...." 이런 상황에서 먹는걸 보면 사죽을 못쓴다는 투로 말했다. 그때도 바다에 빠져 병원에 실려와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지만 그 이전 기억은 나지 않는다. 눈을 뜨자 삼례할머니가 감을 건넸고 그걸 받기 위해 손을 뻗으며 소녀는 다시 생명을 얻었다. 삼례할머니는 친할머니의 친한 동네친구였다. 소녀의 기억엔 삼례할머니는 골목 모퉁이에서 혼자 오래도록 점빵을 하였고 그 곳은 네할머니들의 아지트였다. 


소녀는 섬에 대한 기억을 애써 미화하려고 했지만 죽음의 그림자는 인생의 어느 고비마다 소녀를 따라다녔다. 이번에 안 되니 다음번에 소녀를 데려가자고 죽음의 신이 작정한 듯했다. 소녀는 바다만 보면 두려웠다. 기억에도 없던 유년시절의 한편부터 중학생이 된 그 해까지 세 번씩이나 바다에 빠져 생사를 오가던 트라우마는 지우려 해도 소녀의 머릿속에 평생 깊게 각인되어 있었다.

어쩌면 조상이 도왔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중학교 졸업 이후 그곳을 떠나며 모든게 과거속에 봉인되어 버렸다. 삼례할머니가 언제 돌아가셨는지도 모른다.


섬 소녀의 기억은 국민학교 때부터 시작한다. 어린이집, 유치원도 없었던 시절은 국민학교가 유일한 공교육이다. 늦은 7월생임에도 불구하고 사촌오빠의 손에 이끌려 만 5세의 나이에 학교에 맡겨졌다. 한글도 떼지 못한 채 시작한 학교생활은 또래보다 한두 살 많은 아이들과의 사이에서 힘겨운 투쟁의 시작이었다.


유 씨 성을 가진 나이 든 아저씨 담임선생님은 늘 말이 없었던 조용한 성격이었고 늘 어두운 밤색양복을 입고 있었다. 동네 항구 근처에서 부인과 함께 어선에 필요한 도구들을 파는 선구점을 하고 있었다. 점잖은 목소리와 표정은 선생님 집 근처 교회에서 어떤 직책을 맡고 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 시대 섬지역엔 그 지역 사람 중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면사무소, 학교에 채용될 수 있었기에 아마 그분도 그렇게 채용되었을 것이다. 


그 시절 수협을 다니던 아빠가 가져온 새 어민이라는 잡지에 빠지지 않고 자주 실리는 만화는 사업을 해서 망한 이야기와 곗돈을 들고 야반도주한 계주 이야기가 자주 나왔다. 사업과 곗돈은 거부하는 단어가 되었다.


어린 시절 동네 아주머니들이 집 저 집 몰려다니며 수다 떨고 놀고 하는 걸 보고 소녀는 나중에 꼭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검정교복을 입고 다니던 시절 30분을 걸어서 겨우 피곤한 몸으로 집에 오면 소녀의 엄마를 비롯한 대여섯 아주머니들은 물곰들이 바위 위에 걸어서 쉬고 있는 것처럼 누워서 쉼 없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지금 경로당을 가보면 여자노인들이 경로당 방바닥에 누워 있는 것과 비슷했다.

들은 낮은 소리로 둘만 들을 수 있게 귀에다 대고 하는 소리를 하다가 다시 원래 목소리로 돌아오곤 했다. 아마 다른 이들의 험담을 하고 있었으리라. 때론 어른들은 집에 모여 상을 펴놓고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불렀는데 젓가락으로 상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어린 시절 소녀에게 그런 어른들의 대화나 놀이문화는 참 기이했었다.


어느 날 옆집에 사는 국민학교 선생이자 친구엄마가 한적한 오후에 소녀집에 갑자기 찾아왔다. 소녀의 부모는 모두 집을 비웠고 공교롭게 동생들도 다 놀러 나갔다. 그 선생은 소녀집 안방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다 바로 나갔는데 이 기이하고 이해할 수 없는 선생의 우리 집의 갑작스러운 방문의 이유가 수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 것도 몇십 년 후 소녀가 고등학교 졸업 후 들려온 이야기는 동료 교사들에게 돈을 빌리고 갚지 않아 사기혐의로 구속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섬에서는 몇 없는 토박이 교사이자 섬사람들의 수많은 자녀들을 가르친다고 엄청난 존경을 받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선생은 그날 남의 빈집에는 왜 들어왔을까.






수백 년 된 소나무가 즐비한 해수욕장 옆에 가파른 백여 개의 계단이 있는 중학교가 있었고 바다가 보이는 운동장에서는 전교생을 학년별 반별로 세워놓고 교장선생님의 훈시가 있었다. 체력장을 하던 그 경치 좋은 운동장과 교복을 입고 왔다 갔다 했던 낡은 교실들은 모두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이젠 그곳에 청소년 수련시설이 들어선 지 오래다.


누구에게나 삶의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다. 뭔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중학교 시절 섬소녀에겐 앞으로 어떻게 해야겠다 또는 섬을 떠나야겠다는 목표가 없었다. 그냥 그곳에 살았기에 그곳이 소녀에게 전부인 세상이었다. 자연스럽게 객지에 있는 고등학교를 가거나 반에서 한두 명은 서울공장으로 가거나 나머지는 섬고등학교를 가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특별한 목표도 없었지만 소녀는 운 좋게 도시에 있는 고등학교를 가게 되었고 소녀의 아빠와 함께 간 도시번화가 제과점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맛의 수제 아이스크림을 처음 먹게 되었다. 치킨이라는 것도 처음 먹게 되었다.


소녀의 아빠는 도시에서 고등학교 다니던 섬소녀에게 매주 편지를 보냈고 휘갈긴 편지 속에는 만 원짜리 두장이 끼워져 있었다. 컴퓨터도 인터넷도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었다.


나이 든 아빠는 소녀에게 무엇을 바랐을까.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공부하란 그 허망한 소리는 자녀들의 귀에 들어오지 않고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다. 소녀의 부모가 소녀에게 열심히 공부하란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 소녀는 어른이 된 지금 그 말을 기억해 내려해도 기억할 수가 없다.  우리는 입 밖으로 꺼내면 의미가 퇴색되어 버리는 이야기를 자주 했을까. 부모로서의 기본적인 역할을 방임한다고 생각했을까.


소녀의 아빠가 나중에 돌아가셨을 때 소녀는 주변 석재공장에서 무겁고 육중한 비석을 하나 맞춰서 묘지위에 세웠다. 하지만 죽고 난 후 그런 돌비석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섬에서 왔다고 하니 고등학교 때 반 아이들이나 선생님들은 섬이 바로 집이 있고 발 하나를 뻗으면 바로 바다에 닿을 수 있는 섬으로 생각했다. 사람들이 섬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이미지로 다가오는지  알 수는 없었다. 단지 소녀는 그곳에 살았기 때문에 그냥 거주지였을 뿐이었다.


섬소녀가 20대 성인이 되어 그 섬을 다시 갔을 때 여전히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유 씨 선생님을 마주쳤지만 서로 아는 척하지 않았다. 세월이 흘렀어도 과거 모습 그대로 시간이 멈춘듯한 모습이었다. 섬사람들의 폐쇄적인 성격 때문에 쉽사리 서로 말을 건넬 수 없었기 때문일까.


섬 여자들은 생활력이 강하고 섬여자들은 결혼을 통해 섬을 탈출하려고 애쓴다는 말을 처음엔 쉽게 공감하지 못했다. 그곳에서 태어났지만 그곳에서 결혼을 하게 된다면 영원히 섬을 떠나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섬에서 살게 된다. 육지의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섬에서 태어나 섬에서 죽는 것만큼 허망한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답답한 여자들은 섬을 나가려고 하고 남자들도 섬을 벗어나 더 넓은 세계에서 살려고 할 것이다.


섬 소녀도 20대에 되돌아간 섬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었다. 소녀의 동생들도 소녀의 부모도 섬을 다 떠났다. 소녀가 다시 그 섬으로 돌아온 건 돈벌이를 해야 하는 직장이 바로 섬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직장을 그만두면 소녀의 성격상 생계를 이어나갈 다른 뭔가 없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 소녀의 직장에 새로 임용받은 직원이 신규자 교육을 마치고 돌아와 세상을 갑자기 등졌다. 바닷가에 얼마 전 다른 곳에서 실종된 대학생 시체가 밀려왔다고 한다. 행려자의 장례를 치러야 해서 직원들과 관을 들고 공동묘지를 오른 적도 있다. 이제 소녀도 언제까지 영원히 늙어 죽을 때까지 그 섬에 살 수 없었다. 


더 넓은 외부 세상으로 나가야 했다. 소녀의 운명을 결정짓는 건 바로 도시인과의 결혼이었다. 그렇게 소녀는 도시인과의 결혼에 성공했고 그 섬을 떠나게 되었다.

 

어른이 된 소녀는 지난날 섬에서 산 적이 없는 것처럼  섬을 찾아갔다. 기억 속에 섬은 이젠 다리를 통해 하루에도 여러 번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시절 평범했던 건물과 주택들은 너무도 낡고 오래된 모습으로 일부가 남아 있었다.


 많은 섬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섬소녀의 어린 시절 알았던 어른들이 얼마나 세월이 흘러 늙었는지 약간의 호기심 있었지만 지나는 얼굴들은 다 모르는 사람들이다.

한때  근무했던 사무실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다 모르는 직원들이었고 그녀가 살던 집도 그대로 있지만 주인은 바뀌었다. 이젠 그 섬은 소녀의 과거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곳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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