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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Aug 25. 2024

여행가방을 꾸리며

26살 나의 첫 유럽여행.

국 심사대 칸막이 너머로 여권에 도장을 찰칵 찍으며 "진짜 먼 곳에서 오셨네요"라고

나이 든 남자가 이야기했다. 내가 살던 지역을 아는 사람이거나 그곳이 고향이었을까. 대한민국 남해안 끝의 섬에 살던 내가 유럽 7개국을 여행할 수 있다니 약간의 우쭐함과 함께 나의 첫 유럽여행은 그렇게 26세에 시작되었다.


 시절에는 인터넷이 없었다. 연보라 백팩만 달랑 들고 2주간의 유럽여행길에 올랐다. 캐리어 없이 떠난 나의 젊은 날의 유럽 비즈니스 트립은 되돌아보면 한없이 처량했다. 여행가방을 쌀 때면 그 시절의 서투른 내가 생각난다.


다가온 여행이 설레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날짜가 다가올수록 초조해지고 짐을 꾸리거나 준비해야 하는 번거로움으로 그땐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불가능한 상상을 하곤 했다. '그냥 여행 가지 말까' 정말 못 가게 된다면 그보다 안타까운 일이 없겠지만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을걸 알았기에 가능한 상상이었다.

 

그래도 50 중반이 넘은 지금까지 이렇게 여행가방을 꾸릴 수 있는 현실에 감사한다. 그때만큼은 샘솟는 열정은 아니지만 약간의 설렘도 감사한 일이다. 설렘도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퇴색될까 두렵다.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찬 공항 면세점 앞 향수냄새는 나의 20대 막연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의 하나였다. 이젠 공항의 향도 몽블랑 매장도 더 이상 설레지 않지만 여행은 무조건 즐거운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평생에 걸쳐 이십 대 그 시절 공항의 정취와 비행기 안에서의 기억 그리고 착륙 전 도시의 풍경들은 여행을 지속하게 해주는 원동력이자 영원히 내 기억 속의 즐거움이다.


초라한 여행가방에 대한 안타까운 기억으로 여행물품에 대한 이상한 선호가 생겼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래서 그런거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첫 번째는 캐리어다. 캐리어가 크면 이동하기 불편했고 작으면 많이 들어가지 않았다. 최소한 챙긴다 해도 늘 캐리어는 무거웠다. 크기가 적당하고 밀고 다니기에 잘 굴러가면서 내가 필요한 만큼의 과 물건을 넣어도 그리 무겁지고 않는 게 좋다. 샘소나이트 뿌까 28인치짜리를 그냥 들고 가려고 했더니 많이 들어가지도 않는 데다 조금만 넣어도 돌덩이를 넣은 것처럼 엄청나게 무겁게 느껴졌다. 런던 지하철역에서 그 캐리어를 앞에 두고 계단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쉬고 있을 때 갑자기 흑기사 남성이 나타나서 흔쾌히 그걸 들고 올라가 주었기 망정이지 정말 아찔한 기억이었다.

이 많이 들어가는 크고 가벼운 요술캐리어는 없을까.



이번 혼자 가는 스위스 여행 시에는 코인로커에 잘 들어가고 잘 밀고 다닐 수 있는 튼튼한 것으로 사야 했다. 주일을 기다린 끝에 새 캐리어가 도착했다. 겉으로 보기엔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고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필요한 짐들 몇 개를 넣어보니 금방 꽉 차버렸다. 이번 캐리어도 100프로 만족이 아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힙색이다. 공항 검색 내 통과해야 하고 비행기 내에서도 풀지 않고 몸에 차야하는데 편리하고 현지서 다닐 때 배낭에는 간식과 물, 지도등을 넣고 여권과 현금 카드를 담아가지고 다닐 수 있는 크로스백 같은 게 필요했다. 물론 집에는 룰루레몬에서 산 검정 허리색이 있었지만 조금 작은듯해서 또 노스페이스 매장에서 마네킹에 걸쳐져 있는 연한 카키색의 힙색을 또 구입했다.



하지만 올해 초 옷 속에 걸 수 있는 여권하나와 지폐만 넣을 수 있는 목걸이형 지갑(2번)구입했던걸 잊었다. 매번 옷 속에서 꺼내서 보여주고 다시 넣어야 한다.

걸 속에 걸치고 겉에는 물병과 핸드폰과 배터리를 담을 수 있는 힙색을 걸쳐야 하는데 검은색(1번)과 밝은 카키(2번) 중의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쓸데없이 어두운 카키의 힙색을 구입한 것 같았다. 은 물건을 사용하면서 오는 만족감도 중요한데 좋은 물건 픽하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구입만 하고 있는 꼴이다. 스위스가 서도 혹해서 이것저것 쓸데없이 많이 살 것 같은 걱정이 든다. 아무리 미니멀한다고 해도 내적욕심이 그득한 자는 진정한 미니멀라이프를 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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