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 계획이 현실로
사주를 보니 내 인생이 60부터 편해지고 좋아질것이라고 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도심번화가에 위치하고 있다. 걸어서 몇 분 거리에 대형서점, 영화관, 필라테스 교습소, 카페, 대형마트, 백화점이 위치해 있어 정말 편리하다. 평생 시골에만 살아서 퇴직 후 동경했던 삶은 바로 이런 것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총량의 법칙이 있다면 결핍된 도시생활을 누릴 타이밍은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탁 트인 창문 너머로 도시 전체의 빌딩과 드넓은 하늘 그 밑 어스름한 초록빛의 나무들이 멀리 보인다. 오래전 뉴욕 맨해튼의 마천루 숲을 보던 느낌이 든다. 하루종일 태양빛이 들어와 집은 늘 밝아서 좋다. 일어나자마자 CNN뉴스를 켜고는 거실 내부에 있는 미니카페로 가서 에스프레소를 내린 후 냉장고에서 꺼낸 차가운 우유를 섞은 후 창가에 있는 리클라이너 의자에 앉는다. 이렇게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며 있는 게 습관이 된 지 오래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갈 때도 있지만 나이가 들면 그냥 스치듯 과거 어느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 생각에 길게 빠져있으면 득이 될 게 하나도 없다. 그때 옆에서 남편이 말한다.
" 오늘은 주말농장 가는 날이야. 가서 토마토와 오이를 따서 아이들에게 좀 보내야겠소..." 맞다. 한두 달에 한번 우리가 수확한 채소들을 아이들에게 보내기 위해서는 이번주 농장으로 가야 했다. 과거 늘 그런 것도 우리 부부의 로망이었다.
"그럼 아침을 얼른 먹고 바로 출발하게요..."
서둘러 세수를 하고 선크림만 바른 채 6층에 위치한 아파트 내 푸드코트로 내려갔다. 퇴직하니 두 부부만 살면서 밥 해 먹는 것도 귀찮기도 하고 한식반찬 만드는 과정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반찬가게에서 사 먹는 것도 입맛에 맞지 않아 그동안 간단히 아침에 과일과 계란, 두유, 호밀빵등으로 간단히 해결하곤 했다. 오늘은 모처럼 주말농장에 가는 날이니 밥을 든든히 챙겨 먹어야 한다. 최근에 지어진 아파트라 식당도 상당히 깔끔하고 꼭 필요한 음식만 있어서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 필요할 때 먹는다. 토요일 아침이라 평소보다 사람이 조금 많아 보인다. 안 먹어도 기본적으로 내는 비용이 있어서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은 먹어야 한다.
아파트에서 나와 차를 몰고 한 시간쯤 걸려 도착한 곳은 약 300평 규모의 작은 텃밭이다. 그곳엔 또 작은 집이 있다. 일명 컨테이너로 만든 소규모 주택으로 우리에겐 세컨드하우스다. 얼핏 외관이나 내부가 작은 카페 같다. 처음부터 남편은 이런 주택에 관심이 많았다. 나 또한 도심의 아파트보다는 전원주택을 멋지게 설계해 살고 싶었지만 늘 나의 삶은 미니멀리즘을 지향했기에 그냥 컨테이너 하우스로 정착했다. 처음에 남편은 변두리에서 그냥 소규모 전원주택에 거주하자고 했지만 매일매일을 낙엽 쓸고 잡초제거하고 살기엔 내가 그렇게 부지런한 사람은 아니다. 도심에 아파트도 남편과의 투쟁에서 승리한 결과다. 방울토마토, 오이, 감자, 가지, 상추를 한가득 차에 싣고 돌아오면서 늦은 점심을 근처 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나이가 드니 젊었을 때 먹었던 것들 초밥, 돈가스, 스파게티, 김밥은 당기지 않고 뭘 먹어도 맛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한식이 먹고 싶지만 가성비 있는 한식은 이천쌀밥집인데 근처에 없기도 해서 대충 순두부찌개를 먹었지만 이맛도 저 맛도 아니었다. 맛있는 음식 찾기가 힘들다.
농장 근처의 작은 커피숍의 새로운 메뉴가 "꼬수운 카레라테"인데 가격도 5천 원에 아주 고소한 맛이 나서 늘 마시던 것이다. 아마 고소한 성분의 외국산 우유를 쓰는 듯했다. 서둘러 테이크 아웃해 와서 집으로 돌아왔다. 갑자기 해야 할 일이 생각난 것이다. 얼마 전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오래된 도시 지로나를 다녀온 여행후기와 그곳 풍경을 드로잉 한 것을 출판사로 빨리 마무리 작업해서 넘겨야 했다. 퇴직 후에는 한가할 것 같았는데 취미생활 및 작품활동으로 더 분주하다. 집 근처 스벅에 시니어 크루로 지원해 볼까 생각도 했지만 요즘은 당최 시간이 나지 않는다. 게다가 "누가 나이 든 사람을 써주겠냐고"주변의 핀잔과 우려가 더욱 날 움츠려 들게 했다. 하지만 언젠가 한 번은 경험해 볼 생각이다. 남편과 주말에만 주말농장을 가는 것 빼고는 아침에 늦게까지 원하는 데로 잠을 자고 적어도 8시에는 일어나서 가벼운 브런치를 먹고 집에서 필사를 하고, 영어뉴스를 보다가 오후에는 근처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수채화 수업을 듣는다. 언젠가는 미술대전에 응모해 봐야지 하지만 그때가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매주 2번은 퇴직 전부터 해오던 필라테스를 간다. 지속적인 근육운동은 특히 여성에게 중요하고 필라테스를 하면서 목도 길어지고 옷테도 나는 것 같아 필라테스는 절대 포기를 못하고 있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은 수영장도 가보려고 하나 그건 여전히 귀찮은 일이다. 접영을 막 배우려고 할 즈음 수영장 공사로 중단하게 된 후 다시 시작하기가 어렵다. 45평 집에는 방이 4개 있는데 안방과 나의 서재, 그리고 결혼한 딸들이 식구들 데리고 들렀을 때 자고 갈 수 있는 방이다. 나의 서재는 늘 나의 로망이었든 한쪽 벽은 책으로 가득 차있고 넓은 책상과 노트북, 그리고 정면의 통창으로 보이는 도시전경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지난 39년간의 직장생활을 이어오면서 앞만 보고 달려온 나에게 제공된 지금의 삶의 휴식공간에 만족한다. 의도치 않게 남들보다 일찍 시작되었고 길게 마무리된 나의 밥벌이는 늘 좌충우돌이었지만 중단 없이 정년퇴직한 나의 불굴의 의지에 대해 칭찬을 해주고 싶었다. 어찌 되었던 나는 길고 지루한 바펄이의 전쟁터에서 살아남았다.
퇴직 후의 삶은 건강이 관건이라 매일 규칙적인 수면과 기상, 식사, 영양, 운동 이 모든 게 단 하루도 어긋남이 없이 유지되어야 한다. 육체의 건강 못지않게 정신적인 건강 또한 중요하기에 너무 감정이 동요되지 않도록 평온한 바다의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나이 들면 인생의 희로애락도 그냥 그런 것처럼 감정이 무뎌지게 마련이다. 아주 젊은 날 황당한 일 앞에서도 분노하지 못했던 게 일부러 감정을 느끼지 않도록 최대한 충격받지 않도록 자신을 컨트롤하던 방어기제였나 할 정도로 무던한 과거의 모습을 지금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사소한 부분에서는 분노했었다. 이젠 젊은 시절의 부질없던 감정들은 날아가고 무던한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삶의 일부가 되었다. 그래도 정신을 늘 센서티브 하게 유지해야 이성적으로 상황판단은 잘할 수 있다. 과거에는 순간의 판단과 이성적인 대처 못하고 어영부영하다가 감정표출도 못하고 무감각한 대처로 후회만 낳은 경우가 많았다. 나이 들어서는 그것과 다르게 몸도 굼뜨고 느려지듯 정신도 굼뜨고 느려지면서 감정에 있어서도 그냥 그러려니 해지는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런 것들이 우리가 이 세상을 자연스럽게 떠날 수 있도록 신(God)이 인간을 그렇게 만든 것 같다. 어찌 되었건 연금을 길게 받기 위해 나는 최대한 아프지 않고 오래 살아야 한다.
가끔 생각해 보면 인생이란 게 참 희한하다. 한 인간이 성인으로 살아올 때까지 30년이라는 시간이 참 길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퇴직하고도 향후 30년을 더 대비해야 한다고 한다. 퇴직 후 30년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것인가. 유아기, 청소년기, 청년기를 거치며 30년을 채운 우리가 60세에 퇴직을 하고 앞으로 30년만 살다가 그즈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이 세상을 뜨게 된다. 문득 나는 이 생의 삶에 어떤 경험을 했는가 하는 질문이 다가왔다. 그래서 남은 인생 그동안 제대로 하지 못했던 마음속에만 간직했던 "여행"을 지속적으로 해보기로 했다. 늘 부러웠던 게 무라카미 하루키가 글을 쓰기 위해 아내와 함께 그리스의 한 도시에서 몇 년간 살다가, 미국에서 교수로 몇 년을 살면서 글도 쓰고 자기가 좋아하던 마라톤도 하며 청춘을 보냈던 게 부럽다. 그는 젊은 시절 열정이 넘치고 몸과 마음이 젊을 때 그런 시도를 했지만 난 이제 너무 나이가 들어버렸다. 60이 넘은 나이에 세계여행을 꿈꾸다니 참 시작이 어렵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 남은 건 나에게 시간뿐이고 시간이 내편이 되었기에 도서관에서 가고 싶은 도시에 대한 책을 빌려와서 이론으로 공부하다 보면 어느 정도 윤곽이 보인다. 해외 도시에 한 달 살기는 조금 부담이고 적어도 2주 정도 한도시에 머무르는 게 적당하다. 서유럽, 북유럽은 점만 찍은 적 있지만 동유럽은 한 번도 가보지 않아서 동유럽부터 다시 찍어볼 계획이다. 나치의 유대인수용소도 한번 가보고 싶다. 체코, 헝가리는 그냥 며칠만 해도 충분하지만 서유럽이나 북유럽의 나라에서 어떤 도시는 2주 정도 살아야 할 것 같다. 도시의 특성에 맞춰 체류기간을 정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스위스는 한 달을 살아도 마방 할 듯싶었다. 20대 중반에 한번 간 적 있는 오스트리아는 그 후로도 여러 번 간 것처럼 늦가을 스산한 분위기와 함께 나의 마음속에 남아있다. 일단 오스트리아, 독일부터 해서 동유럽. 서유럽, 북유럽 최종 미국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가는 티켓을 항공사 공홈을 통해 끊고 나자 시간이 마치 여행을 위해 준비된 것처럼 디데이를 향해 빠르게 흐르고 이미 나의 마음은 공항 내 카페에 앉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여행에 대한 20대 감성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나이 드니 좌석도 추가페이를 주고라도 발을 길게 뻗을 수 있고 승무원이 마주 앉아있는 좌석으로 선택했다.
"엄마, 외국 가서 길 잃어버리지 마.." 하면서 큰딸은 늘 전화로 나를 걱정한다. 내가 하는 모든 게 걱정스럽다며 '물가에 둔 아이'라는 표현을 하며 엄마가 사기당하는 거 아닌가 하고 의심을 하고 못 믿어한다. 직업은 못 속인다고 엄마도 학생취급을 하는 것 같다. 모든 걸 쉽게 믿어버리는 나의 성격과 완전 반대인 딸의 성격이 너무 대조적이라 재밌다. 둘째 딸은 그냥 엄마가 선물이나 많이 사 오면 좋지 엄마를 걱정하는 것 같지 않다. 어릴 때부터 둘의 성격은 판이하게 달랐다. 약간 세심한 큰애와 달리 둘째는 약간 터프한 스타일이다. " 엄마 이번 스위스 가는 게 세 번째인데 마터호른인가, 황금호른인가 그것 비슷한 초콜릿 있다던데 그거 사와..." 하고 몇 년 전 스위스 갔을 때도 둘째는 선물이야기만 했다. 둘째는 최근 회사에서 새로운 브랜드의 의상을 해외론칭했다며 엄청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스페인여행기를 쓰다가 여행티켓 예매하다 정신없는 틈에 어디선가 남편 목소리가 들린다.
세차게 날 흔들고 있다.
"어서 일어나.... 오늘 회사 안 가? 오늘따라 웬 늦잠이야...?" 순간 놀라서 눈을 떴더니 벌써 7시 반이다. 퇴직 후 무엇을 할 것인가, 어디에 살 것인가, 돈은 벌어야 할 것인가가 매일이 고민하느라 그런 꿈을 꾼 것인가. 어차피 인생은 일장춘몽이지만 오랜만에 꿈을 아주 선명하게 꾼 것 같다. 그럼에도 갤럭시워치로 본 수면점수는 88점이다. 꿈을 안 꾸었으면 90점을 넘겼을까.
아직도 정년퇴직까지 5년이나 남았지만 내년이면 4년이 남게 된다. 날이 갈수록 시간의 흐름이 가속도가 붙은 것 같아 좋긴 하지만 퇴직 후는 더디게 갔으면 좋겠다. 아무튼 나는 서둘러 꿈에서 깨어 사무실 나가기 위해 분주히 준비를 한 후 오늘도 터벅터벅 길을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