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모습이 변하고 있다

[휴먼 디자인과 미래]01. 가족의 과거, 그리고 미래 ①

by 라비스망

■ 종갓집인 우리 집도 변하고 있다


설 명절이 시작됐다. 사실 난 지난 2~3년 동안 이러저러한 이유로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과 추석에 고향에 내려가지 않았다.


저마다 다양한 이유로 점차 나처럼 홀로 명절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혼자 설과 추석을 보내는 사람들을 일컫는 '혼설족' '혼추족'이라는 신조어 나올 정도다.


그러나 사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우리 가족은 지금의 '혼족' 문화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끈끈한 가족적 유대관계를 중시하는 뼛속까지 유교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곳이다. 게다가 우리 집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종갓집이다. 민족 대명절 때마다 우리 집은 큰 집으로서 집안 행사를 주관하는 주최 측이 된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우리 집도 몇 해 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모두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 변화의 조짐이 일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부터 제사상을 차리고 3대가 모여 예를 갖춰 절을 올리고 술을 따르는 의식을 치른 후 아침식사를 하고, 우르르 떼를 지어 성묘를 다녀온 후 우리 집에 다시 모두 모여 점심식사를 하고, 해가질 무렵까지 가까운 지인들을 쉴 틈 없이 맞이하며 차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었던 옛 풍경중 일부는, 이제 볼 수 없거나 대폭 간소화되거나 생략되어 가고 있다.


이제 명절이란 것은 사회적 관습이 되어 그 명맥을 어떤 식으로든 이어나가겠지만, 이전처럼 양팔을 벌려 풍성한 음식으로 모든 일가를 환대했던 옛 모습은 우리 집 조차도 서서히 그 자취가 감춰지고 있다.


최근 어느 언론사에서 실시된 설문 조사애 따르면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 '고향을 찾지 않고 여행을 가거나 집에서 보내겠다'라고 답한 이들의 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변해도 너무 변했다. 지금 사회적으로 새롭게 드러나고 있는 가족의 형태는 단순히 내 어린 시절과 비교해 봐도 상상 그 이상으로 급속도로 변화된 양상이다.

몇 대가 우글우글 우리 집에 모여 차례를 지내고 음식을 바리바리 싸서 성묘를 가야만 했던 그때는, 그것이 어찌나 못마땅했는지 기를 쓰며 불만을 터질 듯 토로했었다. 그러나 머지않은 미래에는 우리 집 성묘의 풍경을 홀로그램 영상 속에서나 되새김질할 날이 곧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새삼 옛날의 그때가 그리워지는 것은 나에게도 무척 생소한 일이다.


■ 지금 가족의 모습은 수명을 다해가며 해체되는 과정을 밟아가고 있다.

이 같은 변화된 명절 풍경은 지금의 사회 전반적 변화와 그 궤를 함께 한다.


혼자서 밥을 먹는 '혼밥족', 혼자서 술을 하는 '혼술족', 가족보다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욜로족',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비혼족', '나 혼자 산다족', '싱글족' 등의 신조어가 상징하듯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 가족을 이루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였던 과거의 생활방식과 비교하면 지금의 변화는 가히 혁명적이다.


이렇게 '가족'에서 '개인'중심으로의 현저한 이동은, 경제, 사회, 기술적 요인 및 가치관의 변화 등 너무나도 다양한 요소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거부할 수 없는 도도한 흐름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법과 제도가 변화하는 사회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을 뿐) 전통적인 가족의 모습이 점점 수명을 다해가며 해체되는 과정을 빠르게 밟아 나가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 쉬워진 이혼, 졸혼,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결혼 기피, 동거가구, 재혼 가구, 1인 가구, 비혈연 가구, 비혼. 이것은 지금 우리가 대표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인구 사회학적 현상들이다.


이 키워드를 모두 조합한 사회적 현상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부모와 자녀들로 구성되어 죽을 때까지 유지되는 한국의 전통적 가족모델의 신속한 해체다.


즉 결혼하고 애를 낳아 부모가 되는 기존의 전통적 각본이 점차 허물어지고 있는 대신, 사람들은 결혼, 가족, 아이, 평생 부부, 일부일처제 , 일대일의 배타적 연애관계와 같은 기존 규범에 반기를 들며 새로운 관계를 열어가고 있다.


■ 다양한 가족의 미래


이미 미국에서는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보다 제3의 인물에게 무게가 쏠리면서, '가족 아웃소싱'이라는 형태로 이러한 가족 붕괴 징후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에 가정이라는 울타리와 사랑이라는 감정을 벗어난 가족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로, 'Family'와 'Exit'를 합쳐서 '패멕시트(Familexit)'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우리에게 조금은 낯설지만 위선적인(?) '모노 가미(일부일처제)'나 '모노 아모리(독점적 사랑)'를 벗어나 열린 연애를 지향하는 '폴리아모리(다자간 사랑)'를 택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 사회가 절대적 당위로 받아들이는 일부일처제는 인류의 본성이 아니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서로의 동의 하에 여러 사람을 사랑하는 다자간 연예인 '폴리아모리'보다 더 충격적인 가족 형태도 있다.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인공지능과 사랑을 나누며 가족이 되는 미래, 나 홀로 노인과 로봇 반려동물이 가족이 되는 미래 등이다. 인공지능이 인간만의 전유물이라고 여겼던 감성의 영역까지도 감히 침범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결혼정보회사에서 '인공지능이 과연 사랑의 영역을 대체할 수 있을까'에 대한 설문을 20~30대 미혼남녀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남자 57%와 여자 32%가 대체 가능할 것이라고 응답했고, 인공지능과 스킨십도 가능하다는 응답도 42%나 됐다.


이미 방영된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설마 저게 우리가 맞이하게 될 미래 사회라고'라는 의아함과 동시에 섬뜩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꺼림칙한 미래가 정말 현실이 된다는 것을 상상하는 일은 아직도 꺼림칙하다.


또한 미래학자들은 앞으로 수명연장으로 인해 도저히 한 사람과 100년 이상 살 도리가 없어지면서 결혼이라는 제도는 점차 무색해지고, 2045년 이후 결혼제도는 소멸할 것이며, 결혼 대신 3명의 느슨한 파트너 즉, 생산 파트너, 사랑 파트너, 생활 파트너와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다음 글 : 가족의 과거, 그리고 미래② - 당신의 가족은 누구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