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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달걀 Nov 11. 2024

한꾸옥? 쭝꾸옥?

베트남에서 한국인 호소한 이야기




하노이에서 밤 10시쯤 출발한 오리엔탈 야간 침대기차가 라오까이역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이미 환하게 뜬 새벽 6시였다. 여름 나라의 한여름 새벽 6시는 너무나도 밝고 더워서 한국의 오전 10시 정도를 방불케 했다. 기차에서 내려서 짐을 들고 역 안으로 걸어갔을 뿐인데 땀범벅이 되어버렸다. 찝찝함을 참을 수 없던 우리는 무작정 근처 호텔로 가서 샤워만 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다행히도 100,000동(약 5천원)에 2시간 샤워를 할 수 있었다. 


샤워를 마친 후 느긋하게 아침밥을 먹고 라오까이 역으로 다시 돌아왔다. 여기에서 사파까지 1시간 버스를 타고 가야 했기 때문이다. 좀 전에 기차에서 내렸던 수많은 인파들로 북적였던 라오까이역 광장은 어느새 고요함만이 남아있다. 우릴 포함한 4,5명의 관광객만이 배차가 1시간 정도 남아있는 다음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까 기차에서 내려서 바로 기다리고 있던 버스를 탔었더라면 지금쯤에는 사파에 도착했을 텐데, 우리는 한국인답지 않게 이것저것 하다가 결국 1시간이나 버스를 기다려야 된다니....

'이건 도저히 기다릴 수 없다!!' 

갑작스럽게 한국인스런 마인드가 샘솟으며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바로 출발하는 현지인들이 타는 버스가 있었다. 그 버스는 관광객들만 태우고 가는 사파행 직통 버스보다 2~30분은 더 걸렸지만, 역에서 지루하게 1시간을 기다리느니 버스 타고 2~30분 드라이브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탑승을 하였다.






탑승한 버스는 15인승 정도 되는 유치원 버스만 한 크기로, 현지인들이 애용하는 버스라 매 승강장마다 멈춰 서며 지역 주민들을 실어 날랐다.(사실 승강장이랄 것도 없이 승객이 원하는 곳에 세운다.) 주민들은 희한하게도 그냥 빈손으로 타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고 토끼를 싣는 사람, 닭장채로 닭을 싣는 사람, 엄청난 양의 채소인지 풀인지 모를 식물을 싣는 사람 등등 읍내에서 장을 보고 산골로 돌아가는 사람들 같아 보였다. 


엄청난 양의 오토바이와 빌딩들이 즐비했던 하노이에서 불과 7,8시간 왔을 뿐인데 흡사 세계테마기행 다큐와 같은 모습들이 펼쳐졌다. 다낭과 하노이의 화려한 도시를 관광하면서 세계의 생산공장으로 부상한 베트남의 경제성장과 생기를 느꼈다면, 라오까이의 시골의 풍경을 보고 나니 떠오르는 신성이 명성에 비해 왜 아직 1인당 GDP가 4천 불에 머물러 있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현지 주민들은 버스에 탑승하는 사람들마다 나와 내 친구를 보고 흠칫 놀라는 듯했다.

'쟤네...쟤 외국인들이 왜 여기에 타있지??'

이런 눈빛으로 말이다. 사파가 관광지로 유명해도 관광객만 가는 동선이 따로 있어서 리얼 현지주민과 접촉이 있기 쉽지 않았나 보다.










그리고 그중에 한 명이 나에게 베트남어로 말을 걸어왔다.

"한꾸옥?"

베트남어를 몰랐지만 대충 '한국인이니?'라는 의미를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발음이 중국어랑 비슷하게 느껴졌다.


나는 유일하게 아는 중국어로 답했다.

"한궈~"

질문을 했던 베트남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 사이에 오가는 베트남어는 하나도 없었지만 신기하게도 소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몇 정거장 지나자 탑승한 지 얼마 안 된 또 다른 베트남인이 이번에는 친구를 보며 말을 걸었다.

"쭝꾸옥?"

이번에는 중국인이냐고 묻는 듯했다. 친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한궈~"

베트남인이 못 알아듣고 다시 되묻는다.

"쭝꾸옥??"

친구가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한궈~~~"

중국어로 대답해서인지 잘 못 알아들은 베트남인이 또 되묻는다.

"쭝꾸옥!!???"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베트남 아줌마가 속이 터진다는 듯이

"한꾸옥!!!!!!!!!!!!!!!!!!!!!!"

이라고 대신 답해줬다.

순식간에 상황이 정리되었다.

계속 묻던 아저씨는 뒤돌아 묻다가 머쓱하게 앞으로 몸을 돌린다.


친구는 

"내가 중국인 같이 생겼나 봐...."

라며 시무룩해졌다. 

가수 김범수를 닮은 친구는(친구는 남자사람임) 하노이 고려식당을 갈 때에도 북한사람으로 오해받지 않을까 걱정을 했었는데 이젠 중국인이라니. 싸우쓰꼬레아 출신임을 어필하지 못한 것에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그리고 .......

친구와 같이 여행한 3박 4일 동안 중국인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친구와 헤어지고 홀로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다. 말하지 않아도 단번에 나를 한국인으로 알아본다는 사실을. 


 그 이후로 나는 한 번도 중국인이냐는 질문을 받지 않았다... 








* 중국인 비하 아님

* 친구 외모 비하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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