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스마트폰을 두 손에 쥔 채, 아직 <쓰레기>까지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을 품고.
쓰레기 1. 비로 쓸어 낸 먼지나 티끌, 또는 못 쓰게 되어 내다 버릴 물건이나 내다 버린 물건을 통틀어 이르는 말. 2. 도덕적, 사상적으로 타락하거나 부패하여 쓰지 못할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 차별 또는 비하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므로 이용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 표준국어대사전 -
모호하다. 기능적으로 고장이 났을지언정 아주 못 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게다가 평생을 타락이나 부패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나다. 기운이 있어야 타락도 하지.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데만 하루를 쓰는데 타락에 투자할 기력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나는 어쩌면 쓰레기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고려한국어대사전이 출동하면 어떨까?
쓰레기 1. 쓸모없게 되어 버려야 될 것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 2. 하찮은 인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고려한국어대사전 -
조심스럽게 쌓아올린 수비탑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다. 현재 이보다 하찮을 수 없는, 나는 쓰레기다.
<차별 또는 비하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므로 이용에 주의가 필요합니다>라는 문구 앞에서 잠깐 멈칫했지만, 내가 나를 쓰레기라 부르는 것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대상은 '쓰레기'밖에 없음을 깨닫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쓰레기 친구들이 소를 제기할 수 없는 무생물이라 정말 다행이다. 지금 이 순간부터 나는 나를 쓰레기라 칭하는 일을 서슴치 않겠다.
반 평 남짓한 내 책상 위에 어지러이 널려있는 잡동사니들은 총 세 부류로 나뉜다.
1. 쓸모를 지닌 것 = 물건
2. 그렇지 못한 것 = 쓰레기
3. 1도 아니고 2도 아닌 것 = ?
책상을 치울 때 가장 시간을 잡아먹는 부류는 단연 3이다. 물건은 제자리를 찾아 정리하고, 쓰레기는 가차없이 쓰레기통에 버리면 그만인데, 3은 답도 없이 거슬리기만 한다. 굳이 3에 이름을 붙이자면 언젠가 쓰일지도 모르는 쓰레기, 중간자적 쓰레기, 유예중인 쓰레기 정도 되겠다. 결국, 쓰레기라는 소리다.
운좋게 책상 한 켠에 자리잡는다 해도 3이 쓰이는 일은 거의 없으며, 그대로 잊혀져 방치되기 일쑤다. 시간이 흘러 발견되었을 땐 2로 분류될 확률이 좀 더 높아진다. 책상을 치우며 생각한다. 이 세상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있다면, 내게도 유예기간을 둔 채 지켜보고 있을지 모를 일이라고. 나는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책상에서, 아니 이 세상에서 언제쯤 치워질까.
정체성을 확실히 해야겠다. 1도 아니고 2도 아닌 상태는 싫다. 그렇다고 2가 되어 치워질 수는 없으니, 1을 목표로 삼고 나아가 보기로 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자기계발'의 범주에 들어갈 수 없다. 자기계발이 '한 인간이 좀 더 나은 인간이 되려는 노력과 그 과정'을 일컫는다면,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것은 쓰레기가 인간이 되기 위한 몸부림이기 때문이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감히 하루 아침에 인간이 되기를 꿈꾸지 않는다. 하다못해 재활용 쓰레기가 되려는 것도 욕심이다 이 말이다. 왜냐면 난 지금 핵폐기물이니까. 하루하루 좀 더, 환경친화적인 쓰레기가 되길. 그조차 욕심이라고 밝혀져, 비극적인 에필로그를 쓰는 일은 부디 없길.
* 공교롭게도 10회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 발표날 자학으로 가득찬 글을 발행하게 되었습니다만, 브런치북 낙방과 저의 심리상태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음을 밝힙니다. 단어가 주는 무거움은 잠시 내려놓고, 한없이 가벼운 의지력으로 고군분투하는 저의 일상을 지켜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