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로 나가 버리고.
2010년, 전역을 하고 서울 살이를 시작했다. 서울 논현역 근처 마케팅 회사에서 잠깐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나는 매일 봉천역에서 출발해 강남을 오고 갔고, 그렇게 몇 개월이 흘러버린다. 그 출구는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이 난다. 논현역 8번 출구.
계단으로 오르기 직전 만났던 한 청년의 여행 사진전 앞에 내다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리곤 그 시간은 그대로 멈춰버리고 말았다. "아, 나도 여행 가야지.", 나의 여행은 그 발화점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떠나는 전 언제나 설레고 두근거리는 그 심장으로 말이다. 하지만 여행 길이 항상 즐거울 순 없었다. 우리는 한 껏 로망을 꿈꾸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 지구, 은하계는 그 행복한 시간을 그리 오랫동안 주지 않는다.
어디론가 떠난다고 해서 나의 고민이 해결되지 않으며, 일어날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도 없었다. 여행은 잠깐의 탈출이며, 해방인 경우가 많았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면 난 같은 고민을 반복하고 머리를 쥐어짜고 있었다. 아마도 우리나라 청년의 비슷한 그런 고민일 테다.
여행 길이 항상 즐거울 순 없다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눈을 뜬다. 제주도에 온 지 십 하고도 이일 째 되는 날이다. 일반적인 알람 소리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아침잠을 깨우는데 활용하고 있다. 감미롭다. 그리고 황홀하다. 한 달 동안 살아야 하는 이 집이 많이 익숙해졌다. 도시에 살던 것과 비슷한 고민이 시작될 시간. 아침을 차리는 것부터 수아를 깨우고 옷 입히고, 함께 모여서 또 식사를 하는 것은 일상적인 것이지만 꽤나 큰 용기가 필요한 행동들이었다. 때문에 나는 아내와 자주 다투곤 했는데, 오늘이 바로 그 날이었다.
말로, 치고 박는다. 그러다가 이내 아내는 눈물을 흘리고 그런 아내와 모습이 난 보기 싫어한다. 사소한 것으로 다투는 우리 모습은 어디선가 많이 봐 왔던 것과 비슷하다. 엄마, 아빠가 늘 싸우듯이 / 연인들이 다투듯이. 그런 것들이다. 여행이라는 낭만적인 단어로 포장했지만, 사실 우리는 여러 갈등을 해결하고자 제주를 찾았다. 오늘은 그 갈등을 어찌 풀어야 할까 …
아침부터 좋지 않은 기분을 이끌고 용기를 내 아내에게 먼저 말했다. 우리 나가자고. 출렁이는 바다를 보면 왠지 기분이 풀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제주도는 그런 곳이다. 아주 세심하고 잘 빚어진 공간을 만나면 순간 기분이 풀리는. 딸아이도 한몫한다. 우리 부부를 이어주는 가장 강력한 줄이다. 나의 반 그리고 아내의 반이 존재하는 곳이 바로 수아니 깐.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부부는 여행을 갈 때마다 다퉜던 것 같다. 세상에 사랑한다고 싸우지 않는 연인, 부부가 있을까? 절대 없을 것이다. 나와 내가 만나지 않는 이상 서로 다른 존재에 대해서 우리는 의심을 하고, 경계를 한다. 그 사이가 아무리 부부일지라도 … 그래서 신(信)은 언어를 만들었고, 대화라는 소통창구를 탄생시켰나 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그 도구를 아주 잘 이용한다.
서로 상한 감정은 어느 순간에 풀리게 된다. 같은 감정을 느낄 때. 평대리를 걷다가 오래된 구멍가게를 발견했고, 그 속에서 나오는 어릴 적 향기를 맡았다. 어? 이 냄새... 막걸리었다. 자연스럽게 그 주제로 넘어간다. 그러면서 대화가 이어지고 서로 말동무가 된다. 공감이라는 또 다른 능력이다.
내가 좀 더 넓은 생각으로 왜 아내를 이해하지 못했을까? 글 하나를 써 내려가면서 나의 이기심을 느껴버렸다. 오늘을 아내에게 잘 보이는 날도 만들어봐야겠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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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구멍가게에서
"추억의 과자가 정말 많다! 좀 살까?"
"응. 그럴까?"
"쫀드기도 있네!"
왜 우리는 그 사소함에 서로 다퉜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