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건넌다고 안전한 길이 아니다.
정년이 보장된 직장, 곧 승진을 앞둔 11년 차 직장인인 내가 한 시간째 사무실 화장실에서 숨을 가쁘게 내쉬고 있었다. 눈앞의 은색 걸쇠를 열고 화장실 칸막이 밖으로 나갈 힘이 없었다. 밖에 나가면 죽을 것 같고 견딜 수 없이 위험한 일이 생길 것 같았다. 불안할 때 먹는 약, 이라고 적힌 약을 물도 없이 삼킨 다음 온몸에 힘을 주고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하루, 이틀, 결국 일주일 내내 스스로를 가두게 되었다.
숨을 쉴 때마다 찌그러지는 페트병이 된 기분으로 두 달간의 병가를 냈다. 진단서에는 적응 장애,라고 적혀있었다. 두 달만 버티면 승진도 부서이동도 가능했지만 단 일 분도 더 버틸 수 없었다. 표창을 받고 우수고과를 받던 나는 어디에 갔을까?
같은 환경에서도 남들은 다 잘 버티는데 나만 나약하고 유난인 걸까?
나는 힘든 것에서 금방 도망치고 마는 걸까? 앞으로 또 힘든 부서에서 일하면 어떡하지?
불도 켜지 않고 이불속에 웅크리고 앉은 머릿속에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남들은 오고 싶어서 난리인 직장인데, 남들은 잘 다니는데, 회사생활은 다 이렇다는데…’
왜 계속 생각의 주어가 남들일까? 나는 나에게 남이 아닌데. 나는 나인데. 내가 힘들고 아픈 게 나에게 진실인데, 마음속에서 ‘남들은 위원회’를 열어 나를 심판하고 있었다. 남들이 안정적이라고 해서, 남들이 좋은 직장이라고 해서 남들을 따라 여기까지 왔다. 위계가 엄격하고 결정권이 나에게 없고, 의미도 재미도 없는 조직생활을 하는 게 안 맞는 사람인데도. 남들이 다 그렇게 하길래 그게 정답이고 안전한 줄 알았다.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해 봤다. 지금 내 모습이 어떤지. 시부야 스크램블 같이 복잡한 도로를 많은 사람들과 무단횡단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다들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야 한다며 다 같이 무단횡단을 한다. 나도 얼레벌레 그 행렬에 달려든다. 차들은 사방에서 달려든다. 그냥 작은 사고만 나라, 부디 트럭에 치이지는 말자, 나는 안 치이겠지?라고 생각하며 이쪽저쪽으로 무단횡단을 한다.
애초에 그렇게 건너는 재주가 없으면서 남들 따라 무단횡단을 하다 보니, 매번 차에 치이거나 도로 한복판에서 넘어졌다. 일방적인 지시에 의문을 제기하고 일에서 자꾸 의미를 찾았다. 현상유지가 목표인 조직에서 계속 더 나은 무언가를 좇았다. 그런 아수라장인 도로를 무단횡단 하는 내가 떠올랐다.
사고가 안 날 수 없잖아. 많은 사람들이 무단횡단하고 있다고 해서 안전한 게 아니잖아.
그걸 알게 된 순간, 나를 속일 수 없게 되었다. 남들처럼 사는 게 안전하다고 스스로에게 우길 수 없었다.
근데 그러면 나는 대체 어디로 어떻게 건너야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