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게 아니라, 잘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으로 종무식은 시원하게 쨌다. 외장 SSD에 그간 촬영했던 영상들을 정리했다. 작년 뉴욕여행에서부터 밀려있던 영상들을 외장하드에 옮겨 담았다. 드디어 편집할 결심이 섰달까.
회사생활이 고민되는 건, 그간 회사생활을 잘했던 탓이다. 잘하고 싶었기 때문에 잘했다. 실적 만들기, 성과 포장하기, 은근하게 갑질하기 등등 지금은 의미 없어 보이는 일인데 한때는 누구보다 순수하게 열심히 했다. 그게 이곳에서 잘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잘해야 하는 것이다. 아니 근데, 회사에서 잘한다 라는 평가의 기준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는데 나에게서 잘하고 싶은 마음이 몽땅 사라졌다.
일이 싫다거나 어렵다거나 하는 문제라면 차라리 쉬울 것이다. 내 안에서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진공상태가 되었다. 윗사람에게 잘 보이고 회사에서 하라는 일이면 무엇이든 하고, 어쩌면 조금은 지저분한 일들도 눈감으며 회사생활이라고 불리는 당연하던 일들이 하나도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대표이사가 왔다가 우르르 뛰어다니거나 행사 동선을 짜서 1분 단위로 종종거리는 걸 보는데 흑백요리사보다 생동감이 없었다. 극장의 가장 뒷자리에서 무대를 바라보는 것처럼 무심해졌다. 주의를 기울이면 이 상황에서 ‘잘한다 ‘고 일컬어지는 행위를 할 수 있는 사인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조금도 하고 싶지 않다.
싫은 게 아니라 더 이상 조금도 잘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상태다. 못하는 일도 금방 그만 두지만, 잘하고 싶지 않은 것은 결코 지속할 수 없다. 잘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위해 하루 종일 자리를 지키며 속이 비릿해졌던 것이다.
잘하는 게 아니라, 잘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