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파업이 남긴 것

사람과 사람은 도우며 살아간다.

by 정안

버스 파업으로 버스로 앉아서 40분 갈 출근 길을 지하철 20분, 걸어서 30분이 포함된 코스로 가게 되었다. 디지털미디어시티역은 이름 만큼이나 지하철역과 오피스지구가 멀다. 바퀴 대신 내 두 발로 걷는 거리가 늘어났다.


‘사람과 사람은 서로 도우며 살아간다.’


어제 선생님과 대화하며 발견한 세상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다. 6호선에서 내려 사무실까지 걸으며 곱씹었다. 돕는다, 도움을 받는다?


도와달라고 말하느니 이 자리에서 할복하는 게 낫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되느니 죽는 게 낫다. 라는 생각이 저절로 와르르 떠올랐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돕는다니, 아무리 말해도 생경하다. 도움, 이라는 단어가 뇌물보다 더 해로운 말같다. 서로 주지도 받지 말아야하는 것. 내 안에 이렇게 굳게 타인에 대한 불신과 아상이 뒤섞여 있었다니.


잘 도와달라고 하기, 못하는 건 못한다고 하기. 내가 정말 못하는 것들이다. 한 번도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도움을 받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사는 게 동력이었다. ‘도움’이라는 개념을 넣고 삶을 돌아보니, 돕지 못하고 도움을 받지 못하는 태도가 문제를 일으킨 순간들이 많았다.


회사에서 물론 미친 사람들 때문에 힘들 수 있다. 하지만 도움을 요청한다는 선택지가 아예 없기에 참고 참다가 극단적인 결말을 쓴다. 휴직을 하거나 당장 회사에 나가지 않거나. 일은 혼자서 무조건 끝까지 해내야한다고 믿었다. 혼자 완벽하게 해낼 수 없는 일을 만날 때는 그걸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남탓을 하거나 내 탓을 했다. 탓하지 않고 도와달라고 말하는 방법도 있다는 걸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극구 세상과 연결을 거부하던 부분이다. 할 수 있다면 모든 걸 다 혼자해내고 싶었다. 스노우볼처럼 오롯하게 완전한 세계를 만들고 싶었다. 얼마나 단조로운 세계인가. 투명하고 두꺼운 유리벽을 열고 나가면 다채로운 풍경을 마주할 수 있는데. 긴긴 시간 도움에 대한 결벽증을 앓고 있었다. 내가 못할 수도 있고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사는 세상은 대체 어떨까?


내일은 일단 완성한 정산 서류를 예산 담당자에게 보내 검토를 도와달라고 할 작정이다. 많이 질문하고 부끄러워질 작정이다. 여전히 도와달라거나 모르겠다는 말을 하는 나를 떠올리면 소름이 돋지만, 할복할 일은 아니란 걸 이제 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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