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B-SEM
어떤 것이든 그 겉모습은 주위 환경에 지나치게 영향을 많이 받는다. 아주 잠깐 동안만 노출되더라도 반응하여 다른 상을 만들고, 조금만 부주의하게 다루어도 깨지고 갈라져 그 흔적이 남는다. 그러한 것들은 본연의 모습이 아니다.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하고, 결과를 관찰하고, 결론을 내리기에 적합하지 않다. 내가 보았던 것들을 다른 사람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그러기에 내가 살펴보려고 하는 것들은 그런 것들이 아니다.
어떤 것을 다른 것과 진정으로 다르게 만드는 것은,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부분들 사이의 경계면이다. 특별한 한 가지 것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세상에 그렇게 많지 않다. 대부분의 것들은 주변의 커다란 것들로부터 조금씩 떼어온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경계가 끊어져 있는지, 이어져 있는지, 통해 지나가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무언가 다른 것이 한가운데에 만들어져 그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지, 이 모든 것들이 물성을 결정짓는다. 그것들은 모두 표면 아래에 숨겨져 있다.
장소를 택하는 데에 있어 최대한 편견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아래로 파고들 아주 작은 부분을 고른다. 때리고 부수고 깎아내어 상처를 낸다. 절단면을 노출시키고 그것을 살펴볼 수 있도록 쐐기모양으로 그 앞을 깎아낸다. 지저분한 작업이다. 더욱 천천히, 조심스럽게 부서뜨린다면 손상을 최소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접근하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더 에너지를 높인다. 수백 시간을 들일 일을 십 분에 끝낸다. 작고 연약한 것들이 부서져 사라지고, 제거하려고 했던 것들이 다시 단면에 들러붙는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야만 하겠다는 절박함과 이것보다 더 나은 방식을 찾아낼 수 없었다는 스스로에 대한 조소가 나를 몰아붙인다.
쐐기모양 상처를 만든 후 절단면 주변만을 시간이 허락하는 한 가장 작은 에너지를 담아서 깎아낸다. 앞서 상처를 낼 때 뭉쳐져서 엉겨 붙은 것들 사이의 틈을 드러내고, 작고 사소한 것들을 커다란 것들로부터 분리시킨다. 케이크를 포크로 깎아내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한 겹 한 겹을 걷어낸다. 모양이 뭉개져서는 안 된다. 아주 천천히, 아주 집요하게, 조바심을 가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경계면을 깎아낸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를 납득시켰을 때, 전자 빔을 켜서 경계면의 모습을 살핀다. 경계면이 더욱 선명하고 날카롭게 보이도록 초점을 맞추고, 다이얼을 돌려 가로세로 방향으로 왜곡되어 늘어진 상을 작게 돌려놓는다. 더 이상 깊이 생각할 시간은 없다. 더 오래 지켜볼수록 절단면의 형태가 원래의 모습으로부터 멀어진다. 내가 보고 싶은 것들이든,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이든, 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이든 그 모든 것들을 그대로 저장해야 한다. 보이는 것들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하면서 택할 이미지를 고른다면 객관성을 잃기 쉽다. 열심히 일했고 악의가 없었음에도 잘못된 결론을 내릴 우려가 있다. 그러기에 인간으로서 느끼는 불편함에 신경을 써서는 안 된다.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선명한 이미지만을 얻는 데에 집중한다.
실험을 끝내는 것은 대체로 나의 의지가 아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 기기를 사용하는데 드는 돈,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가 실험 시간을 결정한다. 버튼을 눌러 진공을 깨뜨린다. 이 샘플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 끝이다. 그 사실은 인간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는 것이기에 오히려 편안한 마음이 든다. 돌아가서 면밀히 살펴보아야 할 이미지 수십 장들만이 남는다. 한 장에 20 메가바이트인 이미지들을 실험실에서 공유하는 클라우드 스토리지에 업로드한다. 실험은 끝났다. 이제 떠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