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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May 22. 2020

신을 만들고 떠나보내다

훈련소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었던

논산에서 훈련을 받던 때, 나는 예측 가능한 미래를 간절히 원했다. 아침의 행운이 저녁의 행복 정도로 이어지는 정도면 충분했다. 하지만 나는 훈련장에서도 생활관에서도 그러한 개연성을 찾을 수 없었다.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훈련병들 하나하나가 발끝에 끌고 다니는 우연에 더럽혀져 그 어떤 것도 알아볼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쌓인 우연은 대체로 취침 전의 불행으로 이어졌다. 훈련병들은 모두 그 앞에서 무력했다. 그곳에서 확실한 것이라고는 아무리 청소를 하더라도 흙먼지는 날릴 것이라는 점과 퇴소할 때까지 기침이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것 정도였다. 


세상에 인과관계가 없으니 해결책을 찾을 수도 없었다. 해결책이 없어도 시간은 가고 퇴소일은 다가올 테니 생각할 이유 또한 없었다. 나는 훈련소 안에서 끓어 넘치는 불확실성에 떠밀려 절대 가볼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곳으로 흘러갔다. 나는 일요일마다 성당에 가서 신을 찾았다. 


고백하건대 나의 신은 성경 속에는 없었다. 나의 신은 차근차근히 계획된 대로 이어져나가는 절차들 속에 있었다. 성당 안은 늘 차분하고 정적이었으며, 그럴 것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었으므로 나는 안식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안에는 우연한 행복도 불행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인간이 처음 생각해냈을 가장 원시적인 신을 믿게 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 자연의 변덕에 시달리며 무언가 확실히 믿을 수 있을 것을 원했을 이들처럼 나는 찬송가를 불렀다. 


자대 배치를 받고 군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하루 이틀 정도의 미래는 예측할 수 있게 되었을 무렵부터 나는 더 이상 성당을 찾지 않았다. 일요일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지 않더라도 세상에는 여전히 규칙이 있음을 믿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마음속에 만들어두었던 제단을 비웠다.


그렇게 나는 나의 신을 떠나보냈다. 아마 군에서 느꼈던 만큼의 무력감을 다시 느끼지 않는 한 앞으로 성당을 찾을 일은 없을 것이다. 간혹 밤이 지나치게 고요하게 느껴질 때면 제단에 무언가를 올려두었을 때 느꼈던 평온함이 그리워지기는 한다. 하지만 그 불안은 잠에 들고 아침이 되면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다지 두렵지는 않다.


이 이야기는 이렇게 끝내고 싶다. 거창한 결론 없이 이야기를 마칠 수 있기를 바란다. 모든 이야기가 카타르시스를 주는 결말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문장 몇 개로 현실을 쥐어짜 그 안의 부조리를 논하고 그 끝에서 신을 찾을 수는 있겠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다. 일상을 뒤틀어 벽을 세우고 스스로를 막다른 곳에 몰리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경험은 군 안에서 겪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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