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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May 04. 2016

바에 혼자 가는 법 2

바에 혼자 간 사람을 위한 술꾼의 조언 

(위 글에서 이어집니다 ^^)


아마도 첫 잔은 가볍고 시원한 것을 주문했을 게다. 바에 혼자 간 것이 처음이지, 바 자체를 처음 간 것은 아니므로 주문하는데 별로 어렵지 않았다. 둘째 잔은 사이드카를 시켰고 셋째 잔은 맨해튼이었다. 나름 주문은 잘했다. 그러나 주문만 잘했다. 


정작 문제는 이거였다. 나는 바에서 혼자 술 마시는 법을 몰랐다. 술이야 시키면 되고 시킨 술을 그냥 마시면 되지만 누군가와 함께 마시는 것과 혼자 마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자리를 잡고 앉았지만 어쩐지 남의 집에 온 것 같았다. 좌불안석이다 보니 술을 마시는 것도 급했다. 칵테일은 나오는 족족 목으로 넘어갔고 손은 쉴 새 없이 휴대폰을 만져 댔다. 바쁜 바텐더에게 말 붙일 틈을 찾기도 어려웠고 바텐더가 말을 걸 땐 단답으로 대답하기 일쑤였다. 바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못했고 숨을 쉬기도 버거웠다. 급기야 삼십분 만에 마지막 잔을 급하게 들이켠 후 잘 마셨어요, 하면서 일어서고 말았다. 그동안 내 옆에서 나와 같이 술을 마셔 준 사람들의 아우라가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뼈저리게 아니 속 쓰리게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 바에 혼자 가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혼자 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혼자서 마시는 것이다. 운이 좋다면 처음부터 호흡이 잘 맞는 바텐더를 만나 즐겁고 편안하게 마실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색하고 불편한 자리에서 어쩔 줄을 모르며 휴대폰이나 만지다가 나오는 경우가 더 많을 테니까. 


술꾼의 조언은 이렇다. 


서두르지 마라. 천천히 메뉴를 보고 천천히 골라라. 이도 저도 모르겠으면 바텐더에게 물어라. 바텐더를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 어쩌면 바텐더가 당신을 더 무서워할 지도 모르므로. 


“사실 바텐더도 처음 찾아주신 손님이 긴장되고 무섭긴 마찬가지거든요.”

- 아라키 조 / 바텐더 20권 참는 여자, 중에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말고 다른 사람을 구경하지도 마라. 바는 앞을 보는 곳이지 옆을 보는 곳이 아니다. 

바텐더가 놀아주지 않는다고 칭얼대거나 삐지지 마라. 바는 술을 마시는 곳이지, 바텐더랑 노는 곳이 아니다. 바텐더랑 놀고 싶으면, 노는 바텐더(라고 부를 수도 없는)가 있는 바(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은)를 가라. 


술에 집중해라. 바는 술을 마시는 곳이다. 술을 보고 술의 향기를 맡고 술의 맛을 보고 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술에게 말을 걸어라. 술을 기억하고 즐기고 모험하라. 잔을 잡는 손이 흔들리면 그때 일어서라. 

술과 대화를 하라니, 당신이 지금 제정신이오? ^^ 

마지막으로 휴대폰은 치워라. 바에서 휴대폰에 몰입하면 스스로 비참해진다. 


아, 좋은데, 그럼 주문은 어떻게 하라는 말이야,라고 묻는다면 앞에서 언급한 만화 바텐더의 한 구절을 다시 인용하겠다. 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첫 주문을 위한 조언으로 꽤 괜찮다고 생각하니까. 물론 조금 클래식하기는 하다.


“술이 익숙한 분이라면 쌉쌀한 맛의 진토닉, 과일 계열의 솔티독, 스크루 드라이버, 코스모폴리탄. 좀 더 가볍게 리큐르를 베이스로 한 카시스 소다나 캄파리 오렌지, 스푸모니도 마시기 쉽죠.”

- 아라키 조 / 바텐더 20권 참는 여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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