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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Mar 21. 2023

셜리 템플

그랬다. 나는 이 분위기가 그리웠다. 

술을 끊은 지 두 달이 됐다. 살도 빠지고 몸 상태는 좋은 것 같은데, 영혼은 썩 그렇지 못했다. 뭐랄까, 삶의 루틴 중에서 하나를 빼버린 느낌? 퇴근은 일러지고, 돈도 덜 쓰고, 다 좋잖아?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스스로 금주를 선택했으니 영혼은 투덜대도 불만은 없다. 다만, 그냥 좀 허전할 뿐.


나는 금주를 해도 동료까지 금주시킬 수는 없었던 날, 오랜만에 바를 찾았다. 술 끊었는데 바를 간다고? 끊을 수 있다면 유지할 수도 있는 거지, 그리고 나는 바에 믿는 구석이 있었다. 오픈 시간보다 조금 일러 문을 열었는데도 바텐더는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네, 사정이 있어서 술을 끊었어요.

그럼 뭘로 드릴까요? 

논알코올 중에서 맛있는 애 하나 주세요.


바텐더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붉은빛을 띠고 긴 얼음이 담긴 하이볼 글라스를 내놓았다. 

이건 뭐예요? 

셜리템플 베리에이션인데요, 라임과 진저에일을 썼어요.


버릇처럼 잔 입구를 손가락으로 휘휘 돌리다가(더럽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뭐 내가 마실 거니깐) 한 모금을 살짝 들이켰다. 알코올은 둘째치고 탄산조차도 참 오랜만에 마셨다. 이런 맛이었구나, 하며 두 번째는 조금 더 많이 들이켰다. 잔을 들어 바를 가볍게 두 번 치고 세 번째 모금으로 바닥을 보였다.


술을 마실까 말까 지금 엄청 고민하시는 거지요? 바텐더가 농을 건넸다. 

아니요, 술은 괜찮아요. 그랬다. 나는 이 분위기가 그리웠다. 어두운 조명, 차갑게 중심으로 파고드는 액체, 앞을 보며 말해도 아무런 실례가 되지 않는, 그런 바가 그리웠다.


칵테일 셜리 템플은 1928년에 태어나 아역 배우로 미국 전역을 흔들어 버린 셜리 템플에게 바치는 칵테일이다. 셜리 템플이 자주 가던 로열 하와이안 호텔의 바텐더가 어린아이도 마실 수 있도록 레몬 라임 소다에 석류시럽을 섞어 만들었다. 맛과 함께 아름다운 루비색을 셜리가 좋아했다고. (이런 거 위키에 다 나오지만 그래도 일부러 찾아가실 필요 없게, 서비스로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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