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 Nov 17. 2024

24~25 시즌 나의 최애 리베로

고감독님 우리 노란 선생 좀 잘 챙겨주시오

배구를 쓰기 싫을 때는 언제일까. 물으나 마나 답은 뻔하다. 최애 팀이 계속 질 때다. 24~25 시즌 나의 최애 팀인 정관장이 3연패에 빠졌다. 시즌 초반에만 해도 이번 리그 상위권은 따놓은 것 같더니 지금은 중위권 지키기도 어렵다고들 난리다. 안다. 이제 2라운드 1경기를 치렀을 뿐인데 벌써 순위권을 이야기하는 건 좀 이르다는 걸. 하지만 그저 배구가 좋아 글을 쓰는 팬일 뿐인 나도 알아챌 수 있을 만큼 정관장의 약점이 명확했다. 이 약점을 해결하지 않으면 정관장은 중위권 지키기도 힘들 것이다. 정관장의 약점은, 특정 선수에게 몹시 미안하지만(그리고 그 선수를 흉보기 위해 글을 쓰는 것도 아니다) 리베로다. 


리베로는 혼자만 다른 색 유니폼을 입고 (관객이 보기엔) 아무 때나 경기장에 들어오는 (대부분은 다른 선수에 비해) 키가 작은 배구 선수다. 수비 전문 선수로 리시브와 디그를 해결한다. 키는 작아도 빠르고 날렵한 선수들이 공을 받아내는 모습을 보노라면 정말 기가 찰 정도다. 특히 현대건설의 김연견은 정말 슈퍼 디거다. 공이 빈 곳에 떨어질 것 같은데 어느새 날아와서 공을 받아낸다. (아니 지금 내가 남의 팀 선수를 칭찬할 때가 아니지…)


정관장의 메인 리베로는 원래 오지영이었으나 이소영이 정관장으로 올 때 보상선수로 GS칼텍스의 차상현이 데려갔다. 솔직히 한다혜, 한수진 같은 리베로가 있는 팀에서 굳이 오지영을 데려갈 필요가 뭐 있나. 내 생각엔 이소영을 빼앗겼으니 엿이나 먹어라, 하고 오지영을 데려간 것 같다. 당연히 오지영은 GS칼텍스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고 페퍼로 옮겼다. 페퍼로 옮길 때도 GS칼텍스 전에는 출장하지 못하게 하는 옵션을 차상현이 걸었다 하니, 정말 치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오지영은 페퍼를 떠났다(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정관장은 노란이 메인 리베로가 됐다. 


노란은 우려 따위는 날려 먹고 금세 정관장의 리베로 에이스가 됐다.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던 듯 날아다니며 리시브하고 디그를 받아냈다. 21~22 시즌 28 경기에 출전해 39.9% 리시브 효율을 기록했고 22~23 시즌엔 19 경기에 출전해 48.46%를, 23~24 시즌은 35 경기에 출전해 37.37%를 기록했다. 사실 다른 스포츠도 마찬가지지만 단순히 기록만으로는 그 선수의 활약상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똑같은 리시브 정확이라도 얼마나 더 정확하게 갔는지, 똑같은 디그라도 얼마나 멋진 디그였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여튼 노란은 멋진 리베로였고 국가대표도 됐다. 


그런데 이번 시즌, 노란이 흔들리고 있다. 7 경기를 치른 11월 17일 현재 리시브 효율은 27.4%로 꼴찌다. 디그는 4.83개로 중간 수준을 유지하고 범실이 하나도 없지만 상위권을 넘보는 팀의 메인 리베로가 30%도 안되는 리시브 효율을 기록한다는 건 좋은 현상이 아니다. 같은 날 기준으로 김연견은 30.15%, 신연경은 32.06%, 김채원은 37%(요즘 내가 주목하고 있는 리베로다. 아주 환상이거든), 임명옥은 38.71%, 한다혜는 42.11%다. 


리베로는 서브를 받고 이단으로 연결하는 중요한 자리다. 상대방의 예상치 못한 페인트도, 공을 받자마자 뒤로 나뒹굴어야 하는 강력한 스파이크도 받아 올려 세터에게 보내야 하는 자리다. 겉으로는 표가 나지 않는 자리지만 실제로는 엄청 중요한 자리다. 리베로가 든든하게 수비를 받쳐주어야 연결이 잘 되고 좋은 공격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리베로가 흔들리면 선수들의 포지션도 흔들리고 우왕좌왕하게 된다. 정관장 선수들이 오늘 왜 자리를 못 잡고 저럴까, 생각하다 보면 노란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물론 배구는 리베로 포함 7명의 선수가 동시에 코트 위를 누비면서 공격과 수비를 해야 하는 게임이다. 누구 혼자 잘해서 이기고 누가 잘못했다고 지는 건 아니다. 정관장의 3연패가 노란 때문은 아니라는 거다. 다른 선수들이야 어쨌든 혼자 미쳐서 날뛰는 외국인 선수가 게임을 이기거나 지게 할 수도 있고 외국인 선수 혼자 잘 해도 국내 공격수들이 받쳐주지 못해서 지는 경우도 있다. 


이번 시즌, 정확히 어떤 게임인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2세트에 노란이 제 기량을 회복하면서 세트를 따 낸 게임이 있다. 그 때 노란의 모습은 번개불이 쫓아다니는 형상이랄까, 하여튼 환상적이었다. 나는 노란이 그런 능력이 있는 선수라는 걸 안다. 그리고 지금 잠시 주춤하다는 것도 안다. 왜 그런지 나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24~25 시즌 나의 최애 리베로는 노란이니까 코트에서 더 힘찬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다. 힘내라, 노란.  


< 이미지의 모델은 노란. 미드저니 작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