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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May 16. 2017

블루문, 있을 수 없는 일

술꾼은 지금 있을 수 없는 블루문을 바라보는 중이다 

세상에는 있을 것 같은데 없는 것들이 가끔 있다. 그 가운데 한 가지가 블루문이다. 원래 블루문은 같은 달에 두 번째로 뜨는 보름달을 가리키는데 보름달을 불길하게 여기는 서양에서 두 번째 나타난 달을 배신자의 달(betrayer moon)이라고 불렀고 그것이 발음하기 쉬운 블루문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파란색 달은 영화나 만화에서나 등장할 뿐 현실에는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 블루문의 이름을 딴 칵테일 ‘블루문’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의미가 들어 있다. 예컨대 바에서 어떤 여성에게 고백을 했는데 그 이가 블루문을 주문하면, 너와 나의 사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니 꿈 깨라는 뜻으로 알아 들어야 한다(아라키 조, 바텐더 13, 실패의 배려 후편 참조). 그러니 블루문은 행복하거나 즐거운 칵테일이 아니라 이름처럼 블루한 칵테일일지도 모른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정말로 일어나지 않는다면. 


하지만, 이 세상엔 있을 수 없는 일이 종종 일어나기도 한다. 


“요즘 세상에 정말로 있을 수 없는 것이 뭔지 압니까? 부하를 위해 알몸 춤을 추는 상사, 견습생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바텐더… “ (아라키 조, 바텐더 13, 실패의 배려 후편)


그리고 2017년 5월의 대한민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당선이 확실해지자 세월호 유가족의 손을 잡고 위로한 후보자

민원을 외치는 국민의 손을 잡고 식사를 대접한 퍼스트레이디 

당연히 남아 있어도 되지만 할 일을 다했다며 떠나가는 비서관 

사인을 받으려고 종이를 찾는 어린아이 앞에 무릎을 구부리고 기다리는 대통령…”


“우리는 지금 있을 수 없는 달, 블루문의 빛을 받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라키 조, 바텐더 13, 실패의 배려 후편)

사진으로는 도저히 바이올렛 컬러를 살리지 못해 그저 눈물만 흘린다   

2017년 5월, 나는 처음으로 바에서 블루문을 주문했다. 익숙하지 않은 주문이었을 텐데 몰트바 배럴의 마스터는 기분 좋은 맛을 만들어 냈다. 바이올렛 리큐르의 화려함 속에 숨은 드라이진의 짜릿함이 흥분에 들뜬 마음을 각성시키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어 주었다. 섞어 마신 전작의 술로 지친 혀에 남은 시트러스는 상큼하게 침샘을 자극해 다음 잔을 주문할 기운을 일으켰다. 


있을 수 없는 달, 블루문이 기적처럼 떴다. 나는 그것으로 감사하며 앞으로도 블루문을 주문할 것이다. 블루문이 사라지지 않도록 지킬 것이다. 이토록 소중한 블루문을 다시는 잃지 않을 것이다. / Soolk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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