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앤 하이드: 월드투어 2017
‘쇼 스탑퍼(ShowStopper)’, ‘프리즈 모먼트(Freeze Moment)’. 관객은 열렬히 손뼉을 치고 배우는 얼어붙은 듯 박수 소리를 듣는다. 말 그대로 감동적인 노래와 장면에서 청중이 박수를 보내고, 쏟아지는 박수 때문에 공연이 잠시 멈추는 경우를 말한다.
전설적인 공연에서 종종 볼 수 있다는 광경이다. 유튜브 영상에서나 나올법한 장면을 직접 눈앞에서 보게 한 유일한 뮤지컬이 있다. 바로 ‘지킬앤 하이드’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를 원작으로 인간의 잔혹한 이중성을 그린 작품이다. 지난 10여 년간 조승우, 홍광호, 박은태, 류정한 등 내놓으라는 국내 대표 뮤지컬 배우들이 출연하며 꾸준한 인기를 얻었다.
넘버 ‘지금 이 순간’은 ‘노래 좀 한다’는 뭇 남성들의 축가로 사랑받기도 했다. 올해도 지킬 박사가 돌아왔다. 이번엔 브로드웨이 배우(카일 딘 매시·루시 다이에나 디가모·린지 블리븐)들로 출연진을 꾸려서 말이다. 제작진은 국내 팀이 참여했다.
올해도 감동을 줄까? 대답은 나도 모르게 손바닥이 벌게질 정도로 치고있는 박수 소리가 대신했다. 역시나 명작이다. 영국 빅토리아시대가 배경인 만큼 익숙지 않은 영국식 영어가 곳곳에서 들렸고 무대 양옆에선 이를 번역해 보여주는 대형 스크린이 보였다.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대사들을 들으며 극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까? 우려도잠시, 스크린의 글귀들과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는 하나가 돼 새로운 감각을 깨우는 역할을 했다.
“삶에 대한 그 놈의 집착!!”
– 지킬이 하이드를 표현한 대사
“나를 찾아야 해 나를 믿어야 해, 무언가 잘못돼 모든걸 잃는다 할지라도”
_지킬
“새 인생, 다시 태어날 것처럼, 나에게도사랑이 찾아올지도 몰라”
_떠날 준비를 하는 루시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닌, 스크린을 통해 대사와 가사를 한번 더 보면서 감동은 배가 됐다. 100여분의 공연을 모두 본 후엔 살아 움직이는 책 한 권을 읽은 기분이 들 정도다.
강렬한 조명도 공연의 생동감을 더했다. 빨∙주∙노∙초 등 화려한 색상 조명은 여느 무대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강한 조명을 흔치않다.
위, 아래 또는 뒤에서 앞으로, 얇고 선명한 조명이 지킬의 단호한 의지를 표현한다. 때론 하이드의잔인함도 보여준다. 또 잔인하게 죽음을 당한 이들이 다시금 유령으로 나올 땐 흐릿한 조명으로 극명한대비를 보여준다. 생동감 넘치는 날카로운 강한 조명과 힘은 빠졌지만 어딘가 편안해 보이는 희미한 조명이 보는 내내 다른 두 세계를 동시에 보는 듯한 ‘세련된 몽롱함’을선사한다.
무대 위에 설치된 ‘거울’도 눈에 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다른 사람이 아니다. 한 인물 안에 두 인격이 존재한다. ‘거울’은 이처럼 ‘인간의 숨은 이중성을 깨달으라’는 메시지처럼 느껴진다. 실제 거울에비추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언제든 ‘하이드’가 나올 수 있는 존재임을 거울을 통해 비추고 있는 듯하다.
공연은 보는 이에게 ‘내 안에도 하이드와 같은 이중성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섬뜩하고 소름 끼치는 상상이다. 지킬과 하이드는 서로를 기억하지 못한다. 둘은 완전히 다른 사람인마냥 지킬은 하이드 행동을 알지 못하고, 하이드는 지킬을 찾는 물음에 ‘그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라고 말한다.
이중성을 끄집어 냈지만 두 존재를 동시에 인지하진 못한 셈이다. ‘거울’을 보고 다른 모습을 보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계속 물음을 갖고무언의 ‘하이드’를 경계하려 한다면 지킬이 겪은 결론과는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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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할 수 없는 인간의 이중성
새로운 삶에 대한 처절한 바람
날 것의 감정들이 휘감는 뮤지컬이다.
raye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