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 카페, 1987
스치는 찬 바람에 몇 발자국만 걸어도 양 볼이 금세 차가워지는 가을이다. 풀어헤치던 단추를 꽁꽁 여미며 열려있던 마음마저 함께 단단하게 어는 시기기도 하다. 왠지 모르게, 재미있게 들리던 주변 소리도 웅성거리는 잡음으로 들리기 마련. 낮은 채도의 잎사귀를 보며 사색에 잠기거나 괜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면, ‘외로움’을 즐길 준비가 됐다.
바그다드 카페(1987). 외로움을 즐기며(?) 조용히 혼자 이어폰을 끼고 볼 영화를 찾는 여성에게 추천하는 영화다. 독일에서 온 여인 야스민과 미국 라스베이거스 근처 모하비 사막 도로변에 바그다드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여사장 브렌다의 이야기다. 두 여성이 우정을 쌓는 페미니즘 영화라고 하지만, 나는 단순 우정 이야기라곤 말하고 싶지 않다. 고독을 받아들이는 용기와 보답 없는 사랑을 행하는 본능과 그 이유 등의 다양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장면 1.
야스민과 브렌다가 만났다. 도로변에서 남편과 다툰 후, 혼자가 된 야스민과 일을 미루는 남편을 내보내고 홀로 카페를 지키는 브렌다다. 하지만 홀로 남은 두 사람은 온전히 외로움과 슬픔을 느끼기에 힘들어 보인다.
충분하게 울고 털어버리기엔 부족한 현실이다. 장소는 사막 한가운데인 데다 브렌다에겐 매일 돌봐야 할 어린 손자부터 자식까지, 자신의 감정에 오롯이 집중하기엔 너무 바쁘다. 비단 사막 위 두 여성만의 모습은 아닐 터. 매일 숨 막히는 출∙퇴근길을 반복하는 우리 내 모습도 마 친가 지일 테다.
슬픈 일이 닥쳐도 외로움이 사무쳐도 이를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없다. 이 모든 감정을 받아들이고 투정 부리기엔 우리 삶도 ‘사막’과 같이 느껴진다. 솔직한 감정을 내비치는 순간 모두가 무너질까, 두렵기까지 할 정도니까.
이 때문일까. 야스민과 브렌다의 만남은 인물들의 만남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관객과의 삼자대면과 같이 친근감 있게 다가온다.
장면 2.
그렇다면 허전한 마음을 어떻게 채울까. 야스민의 손길은 브렌다의 딸과 아들, 그리고 손자에게 향한다. 어린아이에게 마음이 가는 건 여성의 본능이었을까. 본능보다 더 큰 이유는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순수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의 마음에 대한 끌림도 있었을 거다. 그저 밝은 웃음과 따뜻한 스킨십이 큰 위로가 된다.
이유 없는 친절과 보답을 바라지 않는 희생은 어른들 사이에서 간혹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물론 실제 이유 있는 친절과 보답을 절실히 바라는 희생이었을 수도 있다. 이 같은 친절과 희생으로 상처받은 기억이 있다면 더욱이 아이의 해맑은 웃음과 작은 손짓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대사.
“여긴 이제 너무 화합(harmony)적이야!”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넘쳐나는 바그다드 카페와 모텔에 적응하지 못하고 떠나는 여인 데비의 대사다. 모텔에 묵으며 타투를 해주던 데비는 스스로 고립되는 것을 선택한다.
외롭다고 외치며 사람을 찾는 이가 있는가 반면, 정말 외롭기 때문에 혼자되기를 바라는 이가 있기도 하다. 어느 누구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다. 또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더욱 서글픔이 몰려올 때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의아한 건 그 선택을 한 여인이 데비라는 점이다. 영화 속 데비는 누구보다 타투 손님을 만나며 즐거워 보였기 때문. 화면에서 잠시 눈을 돌려 주변을 둘러보자. 데비처럼 웃지만 속으론 홀로 방으로 들어가 고독을 씹고 있는 이가 있을 수 있다. 물론 거울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 나른한 주말, 혼자 볼 영화를 찾는다면
+ 보고 나면 아른한 영상,
맴도는 OST.‘Calling You-Jevetta Seele’
+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에 답답할 때
raye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