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만 찍는 사람들
“뒷모습을 본다는 것은 그의 시선을 따라가는 것이며 그의 시간 속에 들어 가는 일이다.” 프랑스 인문학 저술가인 크리스찬 두메(65)가 뒷모습 촬영을 두고 한 말이다. 그의 말대로 뒤태 사진은 피사체가 카메라 렌즈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인물 사진과 반대되는 시선을 보여준다. 뒷모습을 남기고 싶은 사람들은 사진 찍고 싶은 배경 앞에 서서 몸을 돌린 후 외친다. “뒤통수 김치~!”
# “자~얘들아, 거기서 멈추고 이제 카메라 봐봐~” “아 니에요, 선생님! 저희들 이렇게 뒤돌아 서서 찍을 거예요~!” 지난달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고등학생들의 기념촬영 모습이다. 여러 학생이 카메라를 등지고 나란히 서서 모두 오른손으로 V자를 그리며 팔을 쭉 뻗는다.
# 한 손엔 스마트폰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아이의 손을 잡는다. 꽃을 배경으로 아이의 뒷모습과 함께 잡은 손이 살짝 보이도록 사진을 찍는다. 지난 2월에 방영된 KBS 예능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축구선수 이동국이 아들 시안이와 이색 포즈로 사진을 찍어 시청자의 눈길을 끌었다.
이처럼 뒷모습을 찍는 사람이 늘고 있다. 예전에는 뒤통수가 찍힌 사진을 보면 ‘잘못됐다’며 삭제 버튼을 거침없이 누르기도 했다. 이제는 의도적으로 촬영한 뒷모습 컷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 비스(SNS)에 올리는 시대다. 실제로 카카오톡 이나 페이스북에서 뒷모습 사진을 프로필에 올리는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 서는 뒷모습만 올리는 해시태그 ‘#뒷모습그 램’이 새롭게 등장했다. 이 검색어로 올라온 뒤태 사진만 2만여 장이 넘는다. 해외에서는 ‘#Backshot’으로 11만여 장이 올라 있다.
뒷모습 사진의 유형도 다양해진다. 다른 사람의 자연스러운 뒷모습을 찍거나 자신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연출해 타인이 찍어주거나 거울을 활용해 뒷모습 ‘셀 카’를 촬영하기도 한다. 반려동물의 뒷모습만 찍는 ‘#강아지뒤태’ ‘#고양이뒤 통수’ 등도 볼 수 있다.
만들어진 표정 없이 진실 보여줘
뒤돌아선 사람만 찍는 전문 사진작가도 있다. 러시아 출신 사진작가 무라드 오스만은 2011년부터 여자친구 뒤태를 자신의 SNS 계정에 올려 큰 인기를 끌었다. 요즘엔 팔로어 (구독자)가 약 450만 명에 이른다. 그의 사진 에는 모두 한 여성이 누군가의 손을 잡고 이끄는 듯한 모습이 담겼다. 러시아 모스크바와 캄차카, 영국 런던, 미국 뉴욕, 인도네시아 발리 등세계 주요 도시를 배경으로 촬영됐다. 그는 모든 사진에 ‘나를 따라와’라는 의미의 해시태그 ‘#Followmeto’를 적어 사진을 보는 사람이 함께 여행을 떠나는 듯한 환상을 갖게 한다. 지난해 사진 속 여자친구와 결혼한 그는 웨딩 사진까지 이같은 형태로 촬영했다.
요즘의 뒤태 사진은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SNS를 통해 많은 사람과 공유하지만 2002년에는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의 사진 에세이 『뒷모습』이다. 사진가 에두아르 부바가 세계 곳곳에서 촬영한 뒷모습 사진 53컷을 활용했다. 투르니에는 이 책에서 뒤태 촬영 사진에 대해 “남자든 여자든 자신의 얼굴로 표정을 짓고 손짓한 다”며 “그렇다면 그 이면은? 등은? 등쪽이 진실이다”고 적었다. 그는 얼굴이 아닌 뒤태의 표정이 오히려 가식 없이 진실된 모습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실과 상상이 공존하는 사진
그렇다면 현대인은 뒤태 사진에 어떤 매력을 느낄까. 전문가들은 등 돌린 인물 사진이 전에 없던 새로운 형태로 젊은 세대에게 지루하지 않은 ‘신선한 콘텐트’라고 말한 다. 특히 매일 쏟아지는 SNS의 규격에 맞춘 비슷한 형태와 모습의 인물 사진에 식상한 사람들에게 ‘반전’의 묘미를 선사한다는 것이다.
신빛 동덕여대 회화과 겸임교수이자 사진작가는 “봄이 되면 캠퍼스를 배경으로 촬영하는 야외 수업을 하는데 예전에는 렌즈를 바라보고 서서 하트나 V자를 만들어 사진을 찍는 학생이 많았다면 요즘은 10명 중 7명이 뒤돌아 서서 찍는다”며 “학문적으로 인물 사진이라고 하면 사람의 표정이 잘 드러나야 좋은 작품이었는데 이제는 그 기준이 깨지고 있다. 얼굴 중심이 아닌 풍경과 몸이 잘 어우 러지는 ‘뉴 인물 촬영’ 유형이 생긴 것 같다”고 설명했다.
자극적이고 직접적인 표현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가는 온라인 세계에 피로감을 느낀 사람들에게 뒷모습 사진은 한 박자 쉬어가는 ‘완곡한 어법’이기도 하다. 표정이 아닌 뒤태로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표현한다.
박성희 한국트렌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현대인에게 SNS는 일상이 됐지만 매일 극단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앞모습 셀카는 때론 강압적이고 피곤한 콘텐트로 여겨질 수 있다”며 “사람들과 소통은 하되 자신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사람들이 뒷모습 사진을 선호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뒷모습 사진이 상상을 불러일으킨다는 점도 시선을 끈다. 배경은 한눈에 보이지만 인물의 표정은 보이지 않아 현실과 상상이 공존하는 사진이 되기 때문이다. 세계 여행을 하며 각양각색의 뒷모습을 촬영한 최갑수 여행작가 이자 사진작가는 “호주 멜버른의 거리를 지나가다 결혼식 피로연에 참석한 여성의 뒷모습을 찍었는데 참 쓸쓸해 보였다. 앞에서 촬영했으면 분명 웃고 있었을 텐데 사진 속 뒤태에서는 어딘가 슬퍼 보이고 질투심도 상상할수 있었다”며 “앞모습은 단편적인 장면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지만 뒷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이야기를 만들수 있어 더욱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글=라예진 기자 rayejin@joongang.co.kr
사진=각 사례자 제공
http://mnews.joins.com/article/226015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