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읽다 넣어둔 난민에 관한 어떤 책을 꺼내어 보니, 밑줄 혹은 옆줄 쳐둔 부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땐 그 의미도 잘 모르고선 대략 와닿은 느낌만으로 표시를 해두었던 것 같은데. 한 학기가 지나고 다시 책을 펼쳐 보니, 지난 학기 내가 새로 배운 개념과 이론들, 그것을 바탕으로 썼던 페이퍼의 줄기들, 논문 주제 탐구를 위해 읽은 연구들에서 보았던 내용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땐 몰랐고, 이젠 조금 알게 된 것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이해하지 못했던 문장, 단어들이 하나하나 깊은 의미로 다가온다.
공부란 참 묘한 듯하다. 매일 무언가를 읽으면서, 지식의 층을 한 겹 더하는 듯도, 혹은 그대로 다 흘려보내 아무것도 읽지 않은 듯 느낌이 들다가도, 묵묵히 읽어야 할 것들을 읽다 보면 어느새 저만치 멀리 와 있음을 알게 된다. 손에도 머리에도 마음에도 와닿는 논문 주제가 딱히 떠오르지 않아 답답한 요즈음인데, 그래도 조금은 배운 것이 있구나, 싶어 위안이 든다.
누가 시켜서 하는 공부라면, 시험이 목적인 공부라면 그 끝엔 시험이든 평가든 성장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척도가 있기 마련인데, 논문 준비를 위한 공부는 문제도, 답안도, 풀이과정도 온전히 나 혼자 정해야 하기 때문에 배움의 정도를 측정할 방도가 없다. 그래서 늘 불안하고, 개운하지 않고, 제자리걸음인 것만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월요일에 늦잠을 잘 수 있는 게 처음엔 좋은 일이었지만, 그것은 곧 어떤 날도 주말처럼 편히 쉴 수 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고.
그런데 오늘처럼, 예전엔 읽히지 않던, 그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문장들을 다시 읽으며, 겉에 드러난 의미, 나아가 그 속에 감춰진 저자의 의도까지 유추하는 독해가 가능한 날이 찾아오면, 비로소 배움이 조금은 나아갔음을 알 수 있게 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