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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ymundus Nov 03. 2022

근황

무엇이 되어 가고 있나



10월의 근황.

새로운 곳에서 시간을 보낸 지 벌써 1년이 지났고, 10월이 되니 새로운 1년이 다시 시작되었다. 작년 여름 대학원 공부를 마치고 처음 지나 보낸 1년은 적응한다는 핑계로, 탐색기라는 핑계로 설렁설렁 게으르게 보낸 것 같다. 반성. 새로운 1년은 좀 더 야심차고 의욕적이어야 하겠다. 작년 이맘때 처음 출근하기 시작할 무렵 이제 막 단풍 드는 캠퍼스가 정말 예뻤더랬는데, 다시 마주할 날도 머지않았다.

대학원에 있을 동안엔 유럽, 난민에만 관심을 두었었는데, 지난 1년 동안엔 지금 몸 담은 기관의 특성에 맞추어 이주, 돌봄 분야를 접하며 관심 영역을 조금 넓히기도, 새로운 분야를 들여다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무엇 하나 진득하고 진지하게 들여다보진 못하고 대충 훑어 넘기며 가벼운 시간을 보냈다. 어느샌가 살아지는 대로 사는 것에 맛 들이게 되고 스스로에게 너무도 관대해진 듯한데, 당분간은 쉬운 삶의 달콤함을 경계하는 버릇을 길러야겠다.

본의 아니게 영어를 사용할 일이 많아졌다. 지난 학기부터 이곳 대학원 석사과정생 분들이 참여하는 이주 라운드테이블을 운영하고 모더레이팅 하느라 되지도 않는 영어를 꾸역꾸역 써가며 이런저런 말을 뱉어내고 있는데.. 다들 알아들으시긴 하는 건지, 사람이 이렇게나 가벼워질 일인 건지 모르겠다. 영어만큼은 가능한 한 피하고 보자 하며 미뤄두고 지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마주해둘걸 그랬다. 앞으로 영어로 소통할 일이 많아질 텐데.. 그런 상황에 던져져 있을 미래의 나를 응원한다.

오늘은 현재 참여 중인 연구의 일환으로 질적 연구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다른 연구원 분들께서 면담하실 때 옆에서 보조로 참여한 적은 있어도 혼자 인터뷰어가 되어 진행하는 것은 처음이다. 준비하면서도 진행하면서도 걱정이 많았는데, 질문하고 이야기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어찌저찌 인터뷰는 마무리되었고.. 돌봄도 면담도 나에겐 생소한 것들이라, 내가 해도 되는 건가,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모든 시작은 다 그런 거니까? 편하게 마음먹기로 했다.


교수님의카톡×아멘×환승연애의 조합

그렇게 지내는 와중, 얼마 전엔 환승연애를 보고 있는데 대학원 시절 교수님에게서 뜬금없이 카톡 한 통이 왔다. 환승연애 보다가 받을 카톡은 아닌 것 같아 잠시 자세를 고쳐 앉고 알림창을 켜보니, 교수님께서는 1년이나 지난 나의 '졸논'을 잘못 기억하고 계시는지,, 미리 연락도 드리지 않은 못난 제자에겐 과분하고 따뜻한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셨다. 너무도 은혜로운 말씀에 감명받은 마음을 아는 것인지 AI는 "네, 아멘" 이라고 자동완성 답변을 미리 준비해주었다. 환상의 조합,,

어찌저찌 지내다 보니 시간은 점점 빨리 흐르고, 시간이 가든 말든 그저 살아지는 대로, 주어지는 것들을 해치워 나가며 지내게 되는 듯하다. 썩 마음에 들거나 개운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썩 나쁘게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니 감사하고 위안으로 삼으련다. 그간 나는 무엇이 되었는지, 이 과정의 끝에는 무엇이 되어 어디에 닿아 있을는지? 대학생 때엔 언젠가 끝이 있을 물음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평생 안고 살아갈 물음이란 생각이 든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내일의 내가 또 어찌저찌 꾸역꾸역 잘해나갈 거라 믿는다.



윤병무 「꽃버선」  (『당신은 나의 옛날을 살고 나는 당신의 훗날을 살고』, 문학과 지성사, 2019)

덧. 윤병무 시인의 "꽃버선" 중. 논문 쓰다 보면 흠칫 놀랄 시를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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