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전달자와 감상자 사이의 관계

by 희량

학창 시절, 테일러 스위프트와 샤이니와 빅뱅의 음악을 사랑했다. 20대 후반을 바라보는 시점에 그들의 곡을 다시 되돌아보니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어 적어본다. 음악을 전달하는 아티스트와 이를 감상하는 팬들 사이의 관계가 참 묘하다 싶어서.




1. 전달자와 감상자 사이의 유대감


2021년, 테일러 스위프트는 ‘Fearless(Taylor’s Version)’라는 재녹음 앨범을 발매했다. 옛날 곡들을 지금의 목소리로 다시 부른 것이다. 사실 이 앨범은 음반사와의 소유권 문제*로 발매한 것이라, 새롭게 편곡하지 않고 원곡과 아주 비슷하게 녹음되었다. 하지만 팬들의 입장에서는, 지금의 테일러의 목소리로 옛곡을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인 것이다. 누군가 그러더라. "이미 지나간 세월 말고 바꿀 게 뭐가 더 필요해?"


단순히 옛날 음원을 듣는 것과 지금의 목소리로 옛날 곡을 듣는 것의 차이는 분명하다. 전자는 단순히 그때의 곡을 감상하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후자는 원곡과는 다른 아티스트의 목소리에서 세월의 흐름을 체감함과 동시에 우리가 같은 추억을 지니고 있다는 동질감까지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는 함께 많은 시간을 거쳐왔다는 걸 깨닫고, 그때 그 시절로 같이 공유했던 추억을 함께 되새기는 순간이다. 일종의 격세지감을 느끼는 순간이랄까.


JTBC 프로그램 <싱어게인>에서 가수 김종진과 작사가 김이나가 러브홀릭의 보컬 지선이 ‘러브홀릭’을 부른 것을 듣고 한 말이 인상 깊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연륜도 쌓여 훨씬 성숙하게 부를 수도 있었지만, 그때의 스타일을 살려서 원곡을 재현한 것이 특히 좋았다고. 당시의 추억을 지켜준 느낌이었다.


아티스트와 팬은 서로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음악으로 연결되는 사이다. 음악이 바로 이 관계의 매개가 되기 때문에, 음악을 통해 함께 세월의 흐름도 느낄 수 있고, 그때 그 시절의 추억도 되새길 수 있는 유대감이 분명히 존재한다. 서로 잘은 모르지만, 멀리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음악으로 연결된 친구 같은 느낌. 음악으로 함께 많은 걸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친구.



2. 전달자의 책임


그런 의미에서 강조하고 싶은 아티스트의 책임이 있다. 음악 산업에서 아티스트에게 윤리적 책임은, 사회적 규범을 준수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가치를 지키는 것이다. 특히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명한 가수라면,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깃든 노래에 방해가 될 만한 요소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 팬들의 감상에 책임을 져야 한다. 나는 여전히 빅뱅 노래가 좋은데, 실컷 즐기지 못하는 것에 대해 빅뱅을 참 탓하고 싶은 것이다. 한때 빅뱅의 노래를 정말 사랑했던 사람으로서, 다시는 빅뱅 노래를 온전하게 감상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그때의 추억과 감성에 주목하기엔 불편한 사실들이 따라온다는 것이 생각보다 크게 방해가 되었다. 노래를 지키지 못한 아티스트가 원망스러웠다.


한편, 테일러 스위프트에는 참 고맙다. 나는 중학생 시절,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를 달고 살았다. ‘Speak Now’ 앨범을 특히 좋아했는데, 뉴질랜드에서 사온 앨범을 듣고 또 들어서 가사지가 너덜너덜했다. 하도 노래를 반복해서 듣다보니, 오랜만에 그 노래를 들었을 때 촉발되는 그때 그 감정은 특히 선명하다. 노래를 듣는 그 순간만큼은 어렸던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그때의 감정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얼마 전엔 ‘Speak Now’ 앨범에서 내가 제일 자주 들었던 ‘Sparks fly’를 듣는데, 목이 메어 차마 따라부르지를 못했다. 입도 벙긋하지 못할 정도로 목구멍에 탁 메이던 그 복잡하면서도 먹먹한 감정에 젖어있는데, 새삼스럽게 테일러한테 고마웠다. 물론, 이런 좋은 곡을 불러준 것도 고맙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오롯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고맙더라. 비록 연애사는 화려했어도, 그것이 감상에 방해는 되지 않으니. 테일러의 곡을 들었을 때 나는 먹먹히 다가오는 감정에 마음 놓고 푹 잠길 수 있어서 다행스럽다.



3. 감상자의 책임


난 샤이니 노래도 참 좋아했고, 빅뱅 노래도 참 좋아했고, 아이유 노래도 참 좋아했지만, 열정적인 팬은 아니었다. 소위 ‘덕질’을 할 만큼 부지런한 성격도 못 돼서, 아티스트보다는 아티스트의 음악을 사랑한 편이었다. 그래서 팬미팅 같은 이벤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아티스트와 대면적인 만남을 쌓아가는 관계에 대한 이해도는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티스트의 음악을 오랫동안 무사히 듣고 싶은 마음만큼은 뚜렷하기 때문에, 확실히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우리가 음악으로만 연결된 사이라는 걸 기억하는 것이다. 물론, 참 매력적으로 표현되는 한국 연예인들의 특성상 소유욕이 자극되기 쉽다. 나도 한때 친구들 사이에서는 ‘기범이는 내거다’ 외치고 다녔다. 하지만 어차피 그들의 사생활은 알지도 못하고, 알기도 어렵다. 아티스트가 두번째 본문에서 말한 책임만 잘 지키면 참견할 일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그 이상으로 궁금해하지만 않으면 된다.


언젠가 댄서 아이키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은 멀리서 조용히 좋아한다고 그랬다. 아티스트와 팬은 그런 사이가 아닐까. 굳이 나를 알아달라고 표현하지 않아도, 어디선가 조용히 아티스트의 음악을 즐기고 있다는 걸 아는 사이. 그리고 서로 같은 시간을 살고 같은 음악을 감상한다는 교집합에 함께 웃음지을 수 있는 사이. 딱 그 정도 거리에서, 그 정도만 함께 공유하는 사이다. 거기서 더 가까워질 것도, 멀어질 것도 없다.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는 영상을 하나 봤다. 어떤 아저씨가 키아누 리브스를 만나는 장면이었는데, 세상 쿨하게 악수하고 나서는 뒤돌아서 생난리를 치더라. 나도 언젠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면, 이렇게 오랜 친구를 만나듯 반갑게 악수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적 주접은 간신히 참아야 하더라도.






난 음악을 듣는 방식이 한 곡만 조지는(?) 스타일이라, 하나의 노래가 특정한 감상을 촉발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더 행복하게 곡을 감상할 수 있음에 고맙고, 그러지 못하는 사실에 원망스러운 점이 도드라지는 것 같다. 앞으로도 많은 아티스트와 팬이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며 오랫동안 함께 울고 웃을 수 있길 바란다.






[참고]

"Taylor Swift의 정규앨범은 왜 재녹음되고 있을까”, 멜론매거진

커버이미지: Nainoa Shizu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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