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직장인 페르소나

by 희량

사회초년생, 자연스럽게 직장인 페르소나가 생겼다.

그런데 이 페르소나, 내 두려움이 만들어낸 가면이었다.



페르소나의 심리학적 정의는 "개인이 사회생활 속에서 사람들로부터 비난받지 않기 위해 겉으로 드러내는, 자신의 본성과는 다른 태도나 성격"으로, 사회에서 정해놓은 정상의 범위 안에 속하기 위해 암묵적인 규칙을 수용한 결과다. 즉, 상황에 따라 내 본성과는 다른 모습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고 난 뒤, 나와 내 페르소나 사이의 괴리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나는 방방거리는 성격이고, 친구들이 말하는 내 MBTI는 EEEE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 따위는 필요 없고 일주일에 7일 약속을 잡아도 에너지가 펄펄 넘친다. 내가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정말 좋아하고, 사람으로 힐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내 방방 지수는 높아지고, 동아리 회식이라도 했다 하면 엄청 팔딱거린다. 혹자는 나에게 날다람쥐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러던 내가, 일을 시작하고 나니 완전히 정반대의 사람이 된 것이다. 회사 사람들이 내 MBTI를 묘사한다면 아마, IIII로 묘사하지 않을까. 전혀 적극적이지도 않고, 목소리도 조용조용하고, 수직적인 위계질서를 어려워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사실 그러지 않으라면 그러지 않을 수도 있는데.) 나대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는 것도 아니고, 딱히 애쓰는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 모든 것들은 내 두려움과 내 성격에 대한 스스로의 비호감 때문이었다.

나는 타인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게 생각한다. 나에 대한 평가를 굉장히 신경 쓴다.

나는 내 성격의 단점을 정확히 알고 있다. 나는 누군가에겐 겁나 나대고, 시끄럽고, 제멋대로인 사람일 것이다.

나는 직장에서 시끄럽고 나대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던 거다.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친구도 스스로가 직장에서 너무 다르다고 얘기했는데, 로직은 비슷했다.

원래 텐션이 그리 높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편이다.

직장에서 소극적이면 주변에서 부정적으로 볼까 걱정된다.

그래서 친구가 만들어낸 페르소나는 밝고 텐션 높고 활발한 캐릭터다. 단점은, 에너지를 끌어올려서 만들어내는 거라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된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 없어서, 각자의 성격을 좋아하지 않아서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걸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런데 또 웃긴 건,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내가 변한 게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이 됐다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왜 회사에서는 친구들과 있을 때만큼 밝고 활발하게 행동하지 못하는지 고민이 됐었다. 내 본연의 모습대로 대하면 회사 사람들과 좀 더 친하게 지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아, 나는 내 성격을 그렇게 싫어하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내 나대는 성격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내가 그 모습을 잃어가는 게 아쉬웠던 것이다. 어쩌면 나를 잃어가는 것에 대한 위기감이었을 수도 있다. 너는 여전하다는 친구의 말이 어찌나 다행스럽던지. "나랑 있을 땐 여전한 너인걸~"


그렇다고 난 이 페르소나를 부수진 않을 것이다. 페르소나를 만드는 게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내가 직장에서 내숭 떠는 것이 페르소나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바뀌어가는 게 아니고, TPO에 따라서 성격을 조금씩 조절할 수 있는 유연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친구들에 따라서도 조금씩 대하는 성격이 바뀌는 걸 보면 사적인 사이에서도 세부적인 페르소나가 얕게 존재하는 것 같다. 페르소나는 당연한 거고 나는 억지로 날 바꾸고 있는 게 아니었다는 거.


다만, 타인의 평가를 두려워하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서 위축된 모습을 페르소나로 내세우는 거라면 나는 조금 개선할 필요는 있다. 친구도, 나도, 좀 더 일을 계속하다 보면 자신감도 붙으면서 적절한 직장인 페르소나를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쉽게 쓸 수 있는 딱 맞는 가면이 만들어지겠지.


어느 추운 날, 친구와 덜덜 떨면서 얘기하다 깨달은 내용이었다.






*커버이미지 Glenn Carstens-Peters,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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