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가 예술가인 이유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 감상 후기

by 희량

정말 오랜만에 전시를 보고 와서 기록한다. 바로 피카소전! 파리의 국립피카소박물관에서 국내로 작품을 직접 들여온 전시라서 그런지 유명한 듯했다.



나는 입체주의와 추상주의를 좋아한다. 재작년에 입체주의 전시 <피카소와 큐비즘>을 관람하고 취향이 확고해졌다. 그리고 이번에 피카소전을 다녀오니 그 취향이 더욱 구체화되었다. 예쁘고 좋은데, 이게 왜 예쁘고 좋은 건지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입체주의는 예술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듬뿍 담고 있는 사조였다. 이런 취향의 발전 과정을 거쳐보니, 전시와 공연 등 문화예술을 관람하는 의의 중 하나가 자신의 취향을 구축하고 개발할 수 있다는 점이라는 게 실감난다. 래서 금부터 입체주의에 대한 덕질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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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매력적인 건 입체주의의 시각이다. 다양한 관점을 한 면에 담아냈다는 것. 우리가 물리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정해져 있는데, 그 한계를 초월한 거다. 우리는 자아 바깥의 시각으로는 절대 볼 수 없고, 두 개의 눈으로 한 방향에서만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하얀 도화지는 무궁무진한 표현이 가능하고 인간의 상상력도 그러하다. 우리의 제한적인 관점을 고수하며 그림을 그릴 필요는 없지! 시각의 한계를 극복하고, 관점의 다양성을 일깨워준다. 이쪽저쪽에서 본 시점을 한 면에 담아서 나오는 그림은 우리가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얼마나 자유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지 알려주는 듯하다.


잠자리는 수만 개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고 했다. 마치 CCTV 상황실처럼 세상을 보는 거다. 어쩌면 잠자리의 시각이 이럴 수도 있지 않을까? 만돌린을 든 남자를 잠자리가 보면 이렇게 보일지도 모른다.

피카소, <만돌린을 든 남자>


보다보면 코도 보이고, 입도 보이고, 악기도 보인다. 이걸 뜯어보는 것도 재미있고, 기하학적인 모형이 쏟아지고 조화로운 색감을 내뿜는 것도 보기 좋다. 특수한 예술 렌즈로 세상을 보면 이런 느낌일까! 피카소는 예술가의 역할이 진부한 생각과 정의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생각과 정의를 창조해내는 것이라고 했다. 입체주의는 고정된 정의로부터 벗어나 끊임없이 새로운 시각을 고민했기에 탄생할 수 있었다.


The world doesn't make sense,
so why should I paint pictures that do?
세상이 말도 안 되는데
왜 말이 되는 그림을 그려야 해?
- Pablo Picasso



2

특유의 투박한 표현이 좋다. 단순한 선과 도형으로 표현하는 것이 시크하면서도 귀엽다. 화려하게 꾸며내지도, 예쁘게 그리기 위해 정교하게 그려내지도 않는다. 솔직하고 담백하게 표현한다.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은 단순함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피카소는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데 평생이 걸렸다"고 말했단다.


피카소, pipe and glass (출처: Pablo-Ruiz-Picasso.net)


이번 전시에서 처음 알았는데, 입체주의는 아프리카 원시조각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조각과 콜라주, 이런 요소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구성이 단순한 듯하다. 하지만 단순하면서도, 다양하고 불규칙적이어서 오히려 역동적이다.


입체주의의 유래를 재조명하기 위해서일까, 이번 전시에는 도자기나 조각 작품이 많았던 점도 인상 깊었다. 피카소는 조각도 하고, 도자기에 그림도 그렸더라. 왜인지 모르겠으나 도자기엔 올빼미 그림이 많았다.


조소작품이든 회화작품이든 너나할것 없이 투박한 손길이 느껴졌다. 디테일이 조금 완벽하지 않은 것 정도는 코웃음 치고 넘어가는 듯한 투박함이다. <망사를 두른 여인의 두상> 이런거 보면 막 흙이 벌어져잇고, 물감도 슥슥 그려낸 터치가 느껴진다. 정교한 그림이나, 특별히 아름다운 그림이 아닌데도 이 단순한 선과 색이 시선을 끌고, 감상의 재미를 준다. 아래 사진 꽃병에 그린 얼굴을 보면 슥슥 그린 듯한 눈코입의 붓 터치가 순간의 웃음을 자아낼 정도로 시크하다.

출처: 전시도록


그림에도 물감이 흐른 자국이 선명히 보인다. 전시 마지막 작품이었던 <보브나르그의 식탁>은 그림이 굉장히 컸는데, 좌측 하단 쪽에 물감 흐른 자국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그게 되게 솔직해보이고 그래서 그런가, 자기만의 독특한 스타일이라서 그런가, 참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의도 했든 안 했든, 눈 하나 깜짝 안 한 느낌. 크기가 큰 작품이라서 그런거일 수도 있는데 디테일에 상관없이 전체적인 분위기는 직관적으로 전달된다. 얼마 전에 친구가 지나치게 디테일에 집착하는 상사 때문에 피곤하다고 투덜거린 적이 있었는데, 그 분께 피카소 그림을 보여드려야 할 듯. 띄어쓰기와 오타 하나도 쉽게 안 넘어가는 당신,,,

피카소, <보브나르그의 식탁>


나는 그림을 그리는 걸 즐기지 않는다. 이유는 못 그려서. 예쁘지가 않다. 그런데 피카소도 예쁘게 그리는 편은 아니다. 이상하면 이상했지..

피카소, <팔짱을 끼고 앉아있는 여인>


그런데 참 특이하다. 이런 이상한 그림들이 좋다. 투박하고 단순한 터치가 좋다. 동심 잃고 사는 와중에 마음 속 깊이 남아있는 동심을 꺼내주는 듯한 순수함이 느껴져서일까? 이 천진난만한 그림과 기상천외한 표현이 사회에 찌든 나를 잠시 해방시켜주나보다.


It took me four years to paint like Rapael, but a lifetime to paint like a child.
라파엘처럼 그리기까지 4년이 걸렸지만,
어린아이처럼 그리기까지는 평생이 걸렸다.
- Pable Picasso



3

피카소 그림을 파리에서 국내로 들여와 직접 보여주는 전시인 만큼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작품이 많이 강조되었다. 품의 배경인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만큼 더욱 의미가 깊다.


피카소, <한국에서의 학살>


이념 갈등이 첨예하던 때였음에도, 그 어떤 이념적 구분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림에서 눈에 띄는 건 무장하지 않은 약자를 상대로 총을 겨누는 병사들. 전쟁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가, 전쟁이 이렇게 무섭다고 말하고 있다. 오직 인도주의적 관점에서만 전쟁을 바라보라고 유도하고 있다. 어떤 대단한 목적이 있든 결국엔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 전쟁의 결론이라고.


피카소는 <한국에서의 학살>, <게르니카>(현재 글 표지 작품) 의 작품을 통해 전쟁의 잔인함에 대해 여럿 보여주었다. 세상의 고통을 진지하게 표현했다.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할 때 이미지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지 보여주었고,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예술의 역할에 주목했다.


내가 환호해마지 않는 예술의 특성이다. 예술작품은 단순히 "하지마"라고 외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역설이나 병치, 풍자, 왜곡, 강조 등 여러가지 방식으로 충격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라면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보다 작품의 의미와 사회적 문제에 대해 고민하길 바란다. 술가가 전달하는 임팩트 있는 메시지가 일상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사람의 진부한 사고방식에 얼마나 큰 파동을 일으킬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사회에 물음표를 던지고 변화의 씨앗을 심을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나는 패션이야말로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예술 장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많은 디자이너들이 작품에 다양한 이야기를 담길 바랐고 나도 그걸 써보려고 브런치를 시작했다. 어느새 2년이 지났고, 천 명의 구독자가 내 글을 보고 있다. 여전히 세상은 각종 문제로 득시글하고, 나는 할 말이 많다. 피카소의 예술가 정신은 내가 추구하는 가치관과 일맥상통하다. 앞으로도 세상을 다르게 보기 위해,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꾸준히 고민하고 쓸 거다. 내 글을 차근히 읽어주시는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What do you think an artist is? ...he is a political being, constantly aware of the heart breaking, passionate, or delightful things that happen in the world, shaping himself completely in their image. Painting is not done to decorate apartments. It is an instrument of war.
예술가는 정치적 존재이며, 세상에서 일어나는 가슴 아프고 열정적이고 행복한 모든 일에 대해 꾸준히 귀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림은 방을 꾸미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림은 전쟁의 도구다.
- Pablo Picasso




P.S

전시에서는 피카소의 인생이 사랑으로 점철되었다며 그의 사랑과 연애를 중립적으로 전달하려 한 듯 했으나, 난 정말 동의할 수 없었다. 45살에 17살이랑 사귀고, 60이 넘은 나이에 21살을 만났다는 그의 연애(...)와 작품마다 보이는 여인의 누드. 딱히 관능적으로 보이지는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가도, 온갖 그림과 조각에 그놈의 여성의 누드 투성이니 그만 좀 보고 싶었다. 왜 여성의 몸을 대상으로 수없이 그리고 조각한 걸까 왜...? 디테일은 또 어찌나 잘 살리던지... 신나게 작품을 감상하면서도 마음 한 켠이 불편해지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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