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웠던 친구가 잘 살길 바란다

by 희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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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에도 심각했던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있었다. 식사시간에나, 체육시간에나, 수학여행 때나 늘상 붙어다녔다. 공교롭게 이름도 초성이 비슷해서 항상 앞뒤 번호를 연달아 받았었다. 진로 이야기, 연애 이야기 등등 우리는 참 많은 대화를 나눴다.


항상 함께였던 그 애가 점점 불편해졌던 건 생각보다 이른 때였다. 1학년 후반부터 많은 부분이 불편했음에도 참았고, 한편으로는 친구를 이렇게 불편해하는 내가 문제인 것 같아 죄책감도 들었다. 어떤 계기로 다른 친구와 깊게 이야기해볼 기회가 생겼을 때, 나만 불편함을 느끼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뜻밖의 뒷담화에 죄책감보단 위안이 먼저 들었다.


그 후로도 난 꽤 잘 지냈다. 여행도 다녀오고, 꽤 오래 붙어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그 아이와 절교를 했다. 그럴 만한 계기도 있었고, 더는 그 애를 참지 못해 내린 결론이었다. 물론, 비성숙한 방법이었다. 나는 그 애에게 단점을 지적하고 싸워서 함께 극복해내는 방법 대신 회피를 선택했다. 영문도 모르는 채 갑자기 거부당한 그 애도 참 아팠을 것이다.


그 뒤로 학교에서 그 애와 난 사이가 안 좋기로 유명해졌다. 난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고, 적대감도 드러냈던 것 같다. 어떤 친구는 얄밉게도 '사람 싫어하는 거 아냐'라며 일침을 던지고 가기도 했다.


아마 난 조금씩 불편하기 시작한 때부터 그 애에게 솔직히 털어놓아야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 애를 그렇게 미워하진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난 싸우고 화해하며 관계를 이끌어가는 법을 몰랐다. 싸움만 피하고 싶을 뿐이었다. 친구와 싸울 때면 그렇게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이 떨렸다. 약하고 어렸지. 상처를 준 것에 변명은 안 되겠지만. 원래 미워하면 미안함도 따라오나보다, 단어도 비슷한 게.



2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한참이 지났다.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면 가끔씩 그 애의 이야기가 나왔다. 한때는 내가 그 애보다 잘 살아서 콧대를 눌러주고 싶었다. 그 애가 나보다 잘나면 조금 비참하고 분할 것 같았다. 그렇게 소식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나 혼자 노려보며 승패를 가늠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떤 죽음을 맞이했다. 대학교에서 만난 다른 친구였는데, 한때는 행복하게 잘 놀았다가 몇 가지 일들로 미워했었던 친구였다. 그렇게 사이가 멀어지고 연락이 끊긴 지 2년이 지났을까, 너무나 슬픈 소식이 들려왔다. 충격적이었다. 충격도 잠시, 크나큰 두려움이 몰려와 주저앉았다. 미워했던 내 감정에 엄청난 죄책감이 들었고, 그의 죽음에 얼마나 내가 관여하게 된 걸까 공포스러웠다. 내 탓이 아니라고 얘기해준 많은 분들 덕분에 죄책감과 공포심은 어느 정도 달랠 수 있었지만, 미안함은 여전하다. 좀 더 너그럽지 못했던 게 후회되었다. 한번은 그 친구가 꿈에 나와서 계속 사과하는 나를 보고 괜찮다며 웃어줬는데, 그 친구의 진심일지 내 바람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인지 알 길이 없다.


고등학교 때 한창 미워했던 그 애가 떠올랐다. 문득 그 애가 잘 살고 있다는 게 참 고마웠다. 내 적개심을 마주하고도 그로 인한 상처에 지지 않아줘서 고마웠다. 언젠가 우연이 생겨나 마주치게 된다면, 그래서 나보다 훨씬 더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참 다행인 일이었다.


어쩌면 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 난 그때 정말 그 애가 미웠고, 그 애 때문에 힘든 점도 많았고, 참 오랜 시간 불편했던 걸 보면 참 안 맞았던 인연이었을 테다. 그래서 다시 만나면 반길 수도, 웃음 짓지도 못하겠지만 미운 감정과는 별개로 그 애가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은 참 안도할 일이었다.


내 방에는 여전히 그 친구가 적어준 편지가 책장에 펼쳐져 있다. 난 그 애가 잘 먹고 잘 살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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