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기념 오랜만에 느린 산문.
일이 내게 목줄을 채웠고, 그동안 끌려가듯 걸었다. 나를 위한 감상은 없었고, 일을 완수해내기 위한 책임감이 내 속도를 만드는 동력이었다.
퇴사 후, 백수라는 불안감이 날 찾아왔다. 뉴스에서 경기침체라며 떠드는 소리가 그 불안감을 더 묵직하게 만든다. 그래서 예전 일에 벌써부터 미련이 생긴다. 지금까지 해왔다는 이유로 다른 것보다 조금 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미련을 잠재운다. 일을 위해서 걷지 못해 뛰었던 시간, 그러느라 나 스스로의 바람과 욕망에 대해 들여다보지 못했던 시간은 이제 아쉽지 않다. 성취로 피로를 달랠 수 있었으나, 갈증은 달래기 어렵다.
이제 횡단보도에서 뛰지 않는다. 한 친구가 빨리 걸을 때면 '희량이 걸음~!'하고 외친다던데, 그만큼 빨리 걷기로 유명한 내가 이제 세월아 네월아 걷는다. 시간도 내 걸음걸이에 맞춰 흐른다는 걸 알았다.
친구가 뭐든 빠르게 잘 해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조급함을 느낀다고 했다. 지금 자신의 속도로 나아가도 괜찮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Life goes on. 인생은 계속된다. 하나의 사건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고, 꾸준한 선을 계속 긋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장의 속도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 오늘의 나를 앞지른 것이 분하다고 해도, 인생이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다. 내일의 내가 해낼지도 모르는 것이다. 내가 계속 붙잡고 있느냐 아니냐, 여기서 내 욕망이 가져올 결과가 달라질 뿐이다. 버티는 자가 승자라 하지 않는가. 요즘 유행인 데프트의 명언, '중꺾마'를 생각해보자. 마라톤이다. 질주하지 않고, 느리게 하지만 꾸준히.
누군가는 빠를 것이고 누군가는 느리겠지만 우리는 누가 먼저 성과를 움켜쥐는지 경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각자의 속도로 충분하다. 지금까지의 질주를 멈춘 내게 하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