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지룩을 들어봤는가? ‘grunge’는 먼지나 때라는 뜻으로, 깔끔하지 못하고 지저분한 스타일을 가리킨다. 1990년대에 유행한 그런지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미국 밴드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을 통해 확산되었고, 당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유행해 대표적인 하위문화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지룩은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발에서 출발했다. 닳고 헤져 너덜너덜하거나 바랜 모습을 연출하며 항상 새로워야 한다는 패션의 본질적인 규칙을 뒤집는 시도였다. 엘리트가 점유한 패션의 유행에 반격하고, 고정관념에 도전한 것이다. 그런지룩은 정제된 이미지를 거부하고, 자유분방함을 표출했다.
이후 그런지룩은 럭셔리 패션에서 이용되기 시작하면서 속뜻을 잃었다. 더 이상 엘리트주의나 계급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를 담지 못했고, 독특한 분위기를 꾸며내기 위한 하나의 스타일이 되었다. 하위문화는 결국 주류에 편입된다. 그런지룩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어 ‘Homeless chic"이 등장했다. 노숙자에서 영감을 받은 스타일이다. 존 갈리아노의 2000년 디올 Spring 오뜨 꾸뛰르 컬렉션에 이어, 2017년 N.hoolywood라는 브랜드가 Homeless chic의 계보를 이었다. 지저분하고 닳고 찢어지고 헤진 스타일로 노숙자 또는 난민을 연상시킨다.
여기에 우리가 생각해볼 만한 지점이 있다. 미국 패션 공과대학교(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의 교수 유니야 카와무라는 ‘Homeless chic’에서 경제적 불평등을 지적한다. 닳고 헤지거나 겹겹이 옷을 껴입는 듯한 스타일을 연출할 때,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깔끔하게 못 입는 사람들을 고려하고 존중했냐는 질문이다. 노숙자가 처한 현실은 고통이다. 가난의 낭만화, 이것은 가난이 현실이 아닐 때 가능한 일이다.
지나친 불편함이라고 느낄 수도 있고, 이러한 지적이 창의적인 행위를 저해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내면화된 권력구조를 꿰뚫어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우린 깊이 적응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 권력으로 인해 피해보는 사람이 분명히 있어왔기 때문에, 완전히 체화하지 않도록 한번쯤은 그 구조 바깥으로 나와서 조명해보자. 이런 논의가 시작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외면 받고 소외 당하는 그룹이 더는 상처 받지 않도록 살피는 것이다. 세상의 불평등한 구조를 인식하고, 조금이라도 그 영향을 걷어내고자 하는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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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노트.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빈곤조차 패션으로 만들 수 있는 공인된 패션 시스템의 권력이다. 이 패션 시스템의 손길을 거쳐야 패션이 아닌 것도 패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디자이너에게는 패셔너블하지 않은 것을 패셔너블하게 만들 수 있는 축성의 역량이 칭송된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실제로 처하지 않고 '체험'하는 위치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양쪽의 분리를 더욱 극단적으로 나타낼 뿐이다.
박완서의 <도둑 맞은 가난>에서 비슷한 상황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작품에는 부잣집 자식이 가난을 '체험'하는 모습이 묘사된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은 가난마저도 도둑 맞았다는 이야기... 계급 차이, 그리고 권력과 위계의 차이는 부당한 도용을 쉽게 만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