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녹색광선 Jan 21. 2020

당신의 오로라, 나의 북유럽 1

아빠와 함께 한 핀란드, 노르웨이 오로라 여행 일기

밤은 까맸다.


인천에서 출발해 핀란드 헬싱키를 거쳐 북쪽 이바로Ivalo로 출발한 비행기는 시골 버스터미널 같은 소박한 공항에 사람들을 내려놓았다. 비행기 문이 열리자 긴 여행에 지친 사람들이 눈을 비비며 느릿느릿한 발걸음으로 텅 빈 활주로에 내려섰다. 하늘은 까맣고, 바삭바삭한 흰 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12월, 한겨울의 핀란드. 그곳에서도 한참은 북쪽 마을 이바로까지 지구 반 바퀴를 돌아온 먼 길의 끝. 북유럽에서의 첫 밤은 낯설고, 하얗고, 까맸다. 그리고 그땐 몰랐다. 이 낯설고, 하얗고, 까만 밤들을 오래오래 그리워하게 될 줄은.      


북쪽 나라에서 보낸 열두 번의 낮과 밤은 언제나 매섭게 차가웠고, 서너 시간밖에 해가 뜨지 않아 온종일 어두웠으며, 거리에는 눈발이 날리고 쌓인 눈이 녹아 축축했다. 그래도 이곳에서의 기억이 반짝반짝한 것은 다름 아닌 가족, 아빠와 함께 했던 기억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겨울 북유럽 여행은 따스한 봄에 시작되었다. 칠순을 맞은 아빠는 어느 날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이야기하시며 ‘내 생애에 오로라를 볼 수 있으려나’라고 하셨다. 지나가는 말이셨겠지만, 내 귀에는 한참 동안 걸려 있는 말이었다. 한 평생 살아오며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었지만 묻어두었던 일이 헤아릴 수 없이 많으셨겠지만, 북구의 밤을 하얗게 밝히는 오로라가 어떻게 아빠의 마음을 이끌었을지, 어쩌면 꿈으로 남겨두어야 할 그곳을 어떻게 마음에 품게 되셨을지 궁금했다. 아빠의 오로라는 그날부터 한 번도 북유럽을 생각해 본 적 없던 나를 강하게 사로잡았다. 혼자, 아니면 친구와 함께 이곳저곳을 나름 다녀 본 나였지만 북유럽은 그 거리만큼이나 아주 멀게 느껴졌었다. 더구나 추위라면 매섭다는 한국의 겨울의 추위로도 충분한데 더 춥다는 한겨울의 북유럽이라니! 하지만 한 해 한 해 걸음이 느려지시고, 조금만 걸어도 한참을 쉬어야 하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아빠에게도, 또 나에게도, 우리가 함께 긴 여행할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다는 것을.

그래서 불쑥 말을 꺼냈다.

“아빠, 나랑 같이 갈래요? 북유럽 오로라 보러.”     


북유럽에서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곳은 아이슬란드, 핀란드 북부, 노르웨이 북부 정도다. 오로라는 언제나 밤하늘에 드리워져 있지만, 밤이 길어지는 10월부터 서서히 우리 눈에 보이기 시작해 3월 정도까지 그 신비로운 빛을 보여 준다고 한다. 오로라를 볼 확률이 가장 높은 기간은 12월 중순부터 2월까지. 북유럽도 12월부터는 기온이 점점 떨어져 영하 20도의 날씨가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살을 에이는 한파가 오기 전, 12월로 일정을 정하고 보름달이 뜨는 날은 피해서 날짜를 잡았다. 오로라를 만나는 것은 순전히 운이라지만, 보름달이 뜨는 날에는 밤하늘이 밝아 상대적으로 오로라가 흐릿하거나 보이지 않을 수 있다고 하여 보름달 달력Lunar Calendar을 검색해 나름 최적의 날짜를 잡은 것이다. 눈보라나 구름을 피할 수는 없지만, 보름달은 피할 수 있으니까.     


바로 항공권부터 검색하기 시작했다. 항공권과 숙소만 해결되면 여행의 반 이상은 해결이다. 혼자, 또는 친구와 함께하는 여느 여행이라면 당연히 최저가부터 검색했을 테지만, 칠순을 맞은 아빠와의 여행이라 생각하니 욕심이 늘었다. 재빨리 퇴직금을 계산했다. 지금은 봄이지만, 가을쯤 지금의 직장을 잠시 쉬고 이직할 예정이니, 내 퇴직금은 오롯이 겨울 아빠와의 오로라 여행에 투자해도 되겠지. 나름 아빠의 칠순 기념 선물이라 생각하고 말이다. 다행히 인천에서 핀란드 헬싱키로 가는 핀에어 직항 편을 괜찮은 가격에 구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북유럽으로 나가고 들어오는 일정이 잡히자 마음이 한결 놓였다.     


언젠가는 북유럽에 또 갈 수도 있을 나와 달리, 북유럽까지의 긴 여행, 그것도 오로라를 위한 여행은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는 아빠를 위해 최대한 짧은 시간에 오로라를 볼 수 있는 확률을 높여야 했다. 핀란드와 노르웨이의 유명 오로라 스폿(오로라를 자주 볼 수 있는 지역)인 핀란드 북부 사리셀카Saariselkä 지역과 노르웨이 북부 트롬쇠Tromsø를 모두 일정에 넣는 모험을 감행했다. 보통은 한 군데의 스폿에서 여러 날을 머무르며 오로라를 기다리지만, 열흘이 넘는 일정 동안 한 나라에서 지루하게 오로라를 기다리는 것도 힘든 일일 것 같아, 두 나라를 방문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점점 이동이 많아지고, 내 머릿속에는 머무를 곳과 경유지를 잇는 이동 경로 화살표들이 거미줄처럼 늘어갔다.  


북유럽 오로라 여행 일정     


1일: 헬싱키를 경유해 바로 사리셀카 이바로로 이동(핀에어)

2일: 숙소에서 진행하는 오로라 투어

3일: 숙소에서 진행하는 순록 투어

4일: 헬싱키로 이동(저가항공)하여 시내 관광

5일: 헬싱키 시내 관광

6일: 헬싱키에서 노르웨이 트롬쇠로 이동(핀에어)

7일: 트롬쇠에서 오로라 투어

8일: 트롬쇠 근처 피오르드 투어

9일: 베르겐으로 이동(저가항공)

10일: 송네피오르드를 통해 오슬로로 이동(넛셀투어)

11일: 오슬로 관광

12일: 귀국     

12일간의 이동 경로


전체적인 일정과 항공권, 숙소와 일정 사이의 투어들, 소소한 준비를 마치고 먼 곳으로 출발하는 날짜는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다. 12월 한국의 새벽 공기는 차가웠다. 하지만 비행기에서 긴 시간을 보내다 처음 두 뺨에 맞는 북유럽의 공기는 한국의 겨울바람보다 신선하고 쨍했다. 빙하를 타고 내려온 겨울바람은 매서웠지만, 또 온화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소박한 이바로 공항의 풍경 때문이었을까. 한두 대의 비행기만 단출하게 서 있는 활주로를 한참 걸어 들어간 이바로 공항 로비는 오래된 시골 간이역만큼이나 작았다. 단층으로 된 공항 활주로 출구는 바로 로비로 연결되어 있었다. 짐을 찾는 컨베이어 벨트는 딱 하나. 짐을 잃어버리려야 잃어버릴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짐을 찾고, 색색의 과자와 커피머신이 놓인 카운터 뒤에서 아주머니 직원이 졸고 있는 동네 슈퍼 같은 작은 매점을 지나 우리를 데리러 올 가이드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예약해 둔 숙소에서 픽업을 나온 운전기사는 친절했고 말수가 적었다. 이름을 확인하고 가벼운 인사를 나눈 후 기사는 밤의 눈길을 아무렇지 않게 씽씽 달렸다.


긴 눈길을 지나 눈밭 한가운데의 작은 오로라 캐빈 마을이 보였다. 모닥불 앞에 놓인 따스한 안락의자에서 금방이라도 잠이 들 것 같은 피로를 꾹꾹 눌러 참으며 체크인을 하고, 폭폭 빠지는 눈길을 걸어 우리에게 배정된 오로라 캐빈에 들어섰다. 마을에 띄엄띄엄 늘어서 있는 단독 오로라 캐빈은 며칠 동안은 오롯이 우리만의 것이었다. 밤은 이미 한참이 깊었다. 오로라 캐빈의 유리 천장에는 소복이 눈이 쌓여 있었다. 직원이 전기를 작동해 천장의 눈을 녹이자 서서히 밤하늘이 우리 머리 위로 드러났다. 북유럽의 침엽수들 위로 또 사락사락 눈이 쌓이고 있었다. 밤새 내릴 싸락눈이 이 눈의 마을을 더 조용히 덮어 줄 것이다. 포근한 이불 같은 싸락눈 소리가 먼 길을 돌고 돌아온 길었던 하루의 지친 마음을 조용히 덮어 주었다.   

 




겨울 북유럽 여행자를 위한 소소한 여행 팁 1.

항공권과 숙소를 구하면 여행 준비는 거의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북유럽 오로라 여행은 11월에서 3월까지, 절정은 12월 중순부터 2월까지이다. 오로라를 볼 수 있는 확률이 제일 높은 만큼 세계에서 많은 관광객이 이 시기에 북유럽을 방문한다. 그런 만큼 저렴한 가격의 항공권과 가성비 좋은 숙소는 엄청나게 빨리 마감되므로, 일정이 어느 정도 정해졌다면 항공권과 숙소를 최대한 빨리 알아보는 것이 좋다. 인천-헬싱키 (2020년부터는 부산-헬싱키도 운항) 직항을 운항하는 핀에어(www.finnair.com)는 봄부터 프로모션이 나오므로 자주 확인하는 것이 좋다. 부모님을 모시고 가지 않는 경우라면 다른 항공사의 경유편도 다양하다.

북유럽 국가들 간의 이동은 저가항공이 다양하므로 스카이스캐너(https://www.skyscanner.co.kr) 등을 이용한다. 금액이 자주 바뀌므로 자주 검색해 보는 것이 좋다.

보통은 핀란드 로바니에미, 사리셀카, 노르웨이 트롬쇠 중 한 군데에 며칠간 머물며 오로라를 기다리는 일정이 보편적이다. 두 나라를 모두 관광할 경우, 겨울에는 교통편이 상대적으로 제한되므로 이동 경로 설정에 주의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바로에서 트롬쇠로 바로 이동하고 싶었지만 겨울이라 버스나 대중교통편이 없었고, 렌트는 폭설 때문에 위험할 수 있어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았지만, 마침 토요일마다 헬싱키에서 트롬쇠로 가는 핀에어 직항이 있어서 편하게 이동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