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함께 한 핀란드, 노르웨이 오로라 여행
이곳 사람들이 여유가 있는 건 짧은 낮과 긴 긴 밤 덕분이라고 마르쿠스는 말했다. 그는 우리가 예약한, 대여섯 명이 탈 작은 배로 북극해를 두세 시간 돌아보는 투어의 가이드이자 이 배의 선장이다. 체코에서 왔다는, 수염 덥수룩하고 쾌활한 이 남자는 작은 배를 타고 북극해로 나아가는 동안 시종 미소를 잃지 않으며 한시도 쉬지 않고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스름한 햇빛이 드는 오전 열 시쯤 트롬쇠 항구를 출발한 배는 이내 북극해의 섬들을 지나 채 녹지 않은 얼음이 덮인 북극해로 향했다. 배 안은 따듯했고, 차와 간식이 정갈하게 차려져 있어 마치 친구의 응접실에 놀러 온 것처럼 아늑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바다와 얼음, 멀리 늘어선 섬들의 완만한 능선에 노곤하게 졸려올 때쯤 배 이층으로 올라가 키를 잡은 마르쿠스의 이야기에 동참했다.
배는 순록과 독수리, 아이더 오리가 사는 섬과 섬 사이를 조용히 항해해 갔다 우리는 그 속에 오랫동안 터를 잡은 사람들, 긴긴 목조 다리를 놓아 섬을 잇고 집을 지으며 어떻게든 삶을 이어갔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동유럽에서 살다 이곳에 와서 정착한 마르쿠스는 여름엔 끝없이 이어지는 낮과 겨울엔 한없이 사람을 놓아주지 않는 긴긴 밤에 시달려 불면증을 겪기도 하고 시차 아닌 시차를 겪는다고 했다. 오후 두 시면 해가 완전히 지는 12월의 이곳에선 한창 오후에 벌써 졸려지기도 하지만, 도서관과 박물관, 대학과 작은 바들이 있는 아기자기한 거리와, 마을과 마주 보고 있는 장대한 산맥에서는 할 거리가 넘친다고 했다. 이곳에서는 그저 여름엔 긴긴 낮을 즐기며 공원을 거닐거나 하이킹을 하고, 겨울 동안의 햇빛을 비축하려 수영을 하고 산책을 즐기며, 겨울에는 짧은 낮의 햇빛을 모아 긴 밤을 대비하고, 스키를 타거나 크로스컨트리로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넘어가기도 한다고 한다. 자연에 저항할 수 없음을 아는 사람들은 일찍부터 체념 아닌 달관에 들어선 걸까. 자연에 순응한다는 말은 이들에게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이곳 사람들은 자연의 흐름과 함께 살아간다. 급하지 않고, 더 바라지 않는 삶을.
자신은 이민자라서, 이곳에서의 삶도 쉽지는 않다고 했다. 15년 전 어릴 때부터 항해를 배워 지금까지도 깊고 고요한 바다라는 자신의 일터에서 북극을 찾아온 관광객을 맞이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일주일에 며칠은 피곤에 지칠 정도로 일하고, 또 며칠은 그만큼의 자유를 누린다. 그동안에는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키를 돌린다. 이민자가 아닌 노르웨이 사람들은 이렇게 오래 일하지 않는다며, 자신은 이민자라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살짝 으쓱해 보인다. 하지만 바다가 좋아서, 항해가 좋아서 이곳에 와서 일한다는 그는 해맑은 표정으로 자신은 평생 항해를 계속할 거라고 말한다. Forever, because I'm free. 항해하기에 자유롭고, 또 계속 항해할 수 있는 삶이어서 영원히 그렇게 살고 싶은 삶. 부럽고도 또 부러운 삶이다. 그의 미소가 깊고 검은 바다처럼 청명하고 아름다웠던 건 그 때문이리라.
차가운 북국의 바람 속에서도 얼음 아래의 바다는 고요했다. 검고 깊은 바다와 눈 덮인 산은 오래도록, 아마도 마르쿠스의 말처럼 평생을 바라보아도 질리지 않을 것이다. 이 바다와 산을 영원히 바라볼 수 있다면, 두세 시간 동안만 허락된 짧은 햇빛도, 잠들지 못하게 하는 스물네 시간의 낮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햇빛과 생기 가득한 남유럽의 나라에서도, 복잡하지만 활기 넘치는 대도시에서도, 나는 여행자였을 뿐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그들의 일상에 잠시 비집고 들어가고, 그들이 누리는 것을 잠시 누려보고 싶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잠시 훔쳐보고, 좋은 점만 만끽하다 일상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하지만 이 도시, 밤이 금방 찾아오는 북극의 도시 트롬쇠는 이곳에 살고 싶게 한다. 겨울의 긴긴 밤에 물들어 나 자신이 사라지도록 놓아둘 수 있다면, 한낮의 불면증에 시달리며 끝없이 글을 쓰게 하는 여름의 낮을 허락한다면, 이곳에 나를 그저 놓아두고 싶었다. 이 깊고 검은 밤이라면 끝없이 생각하고 글을 쓰며 어딘가 두고 온 나를 찾을 수도, 길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바깥에는 우뚝 솟은 하얀 눈 덮인 산이, 그 너머로는 단단한 얼음이 덮인 고요하고 깊은 바다가 일렁이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줄 것 같았다.
트롬쇠에서의 마지막 날. 짐을 정리하다 문득 내다본 호텔 창문 밖에는 항구의 노란 불빛이 환했다. 한 순간, 그 너머 희끄무레한 산 위로 연기처럼, 녹색 빛이 일렁였다. 잘못 본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초록빛은 점점 진해지며 산등성이 전체를 물들였다. 밤의 도시는 그렇게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오로라를 선물했다. 마치 다시 오라는 선물처럼. 나를 사라지게 할, 고요히 나 자신에게로 침잠할 어둠 속으로 끌어들이는 선물처럼.
밤의 도시여, 안녕. 다시 만날 때까지.
겨울 북유럽 여행자를 위한 소소한 여행 팁 8.
오로라 투어는 저녁에만 진행되므로, 낮의 북유럽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특히 낮이 짧은 겨울의 북유럽에서는 투어도 한정된다. 핀란드에서는 순록 투어나 허스키 투어, 스키 투어를, 노르웨이에서는 눈썰매를 타거나, 트레일을 하이킹하는 코스, 유람선을 타고 근처 피오르드를 둘러보는 크루즈 투어, 좀 더 멀리까지 나가는 빙하 투어, 러시아 근교까지 가서 게를 잡는 투어 등을 즐길 수 있다.
트롬쇠에서 우리는 5-10명 정도가 이용할 수 있는 크루즈 투어를 이용했는데, 실내가 완비되어 있는 작은 낚싯배를 타고 2-3시간 정도 근처 바다를 돌아보았다. 작지만 아늑한 배에 난방도 잘 되어 있고, 실내에 커피나 간식이 모두 챙겨져 있어 편리했다. 특히 중간에 낚시 스폿에서 낚시를 하고 잡은 고기로 바로 피시 수프를 끓여 먹는 체험도 할 수 있었다. 어른들도 따듯한 배 실내에서 바깥 경치를 볼 수 있어 춥거나 힘들지 않고, 가이드가 배를 몰며 노르웨이의 역사나 생활에 대해 이야기해주어 편하게 몸과 마음을 힐링할 수 있는 투어였다. Arctic cruise in norway 등 크루즈 투어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도 있고, 다른 종류의 투어들도 각 특색에 맞는 상품을 구비하고 있으니 미리 알아보고 예약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