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호>
총제작비 170억원을 들인 겨울 한국영화 대작 <대호>는 1700만명의 관객으로 한국영화 사상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명량>의 최민식이 선택한 다음 작품이라는 점과 100% 컴퓨터그래픽(CG)으로 만든 지리산 호랑이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영화 <대호>에서 눈여겨볼 포인트를 3가지로 정리했다.
1. 동화를 닮은 이야기
<대호>는 1925년 일제강점기 지리산을 배경으로 한반도의 마지막 호랑이와 이를 잡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연출은 <신세계>로 한국 갱스터 영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박훈정 감독이 맡았다. <부당거래>, <악마를 보았다> 시나리오를 쓴 충무로 대표 이야기꾼인 그는 사람들 간 권력 관계와 무자비한 암투를 주요 소재로 삼아왔다. 하지만 <대호>는 전작들과 전혀 다르다. 인간과 호랑이의 대결구도는 명확하지만 주인공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연 앞에서 겸손할 줄 아는 남자다.
박 감독은 러시아 탐험가 니콜라이 아폴로노비치 바이코프가 만주 호랑이를 묘사한 명작 [위대한 왕]을 모티프로 <대호> 시나리오를 썼다. 제국주의 야만의 시대 대자연의 경고가 테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은혜갚은 호랑이] 같은 전래동화도 떠오른다. 그만큼 영화는 동화처럼 단출하고 메시지도 뚜렷하다.
2시간 20분에 달하는 영화는 전반적으로 묵직하고 진행이 느려서 빠른 진행의 모험극을 기대한 관객은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영화는 진면목을 드러낸다. 동화처럼 순수한 이야기와 이를 표현한 영상미 덕분이다. 영험한 지리산의 눈덮인 광경은 그 자체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올해 한국영화 중 가장 아름다운 엔딩으로 꼽을 만하다. 수묵화에 흰색을 계속 덧칠하는 듯한 영상미가 황홀할 정도로 눈부시다.
2. 지리산 집어삼키는 호랑이
이미 최고의 배우인 최민식이 <대호>에서 펼친 연기는 훌륭하다. 그가 전작들에서 쌓아온 이미지는 외로운 호랑이를 닮았고 영화는 이 점을 잘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신선하지는 않다. <대호>에서 최민식의 모습은 <명량>의 이순신, <취화선>의 장승업, <올드보이>의 오대수 등을 섞어 놓은 인물처럼 보여 익숙하다. 기존의 최민식을 뛰어넘을 정도는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최민식의 상대역인 '산군(山君)'이라 불리는 거대한 호랑이가 빛난다. 길이 3.8m, 무게 400kg의 대호가 뿜어내는 존재감은 대단해서 지리산을 집어삼킬 듯 쩌렁쩌렁한 소리로 포효하면 스크린에 바짝 날이 선다.
대호는 조선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인간이 차마 범접할 수 없는 한계를 상징한다. 대호가 일본군과 대적할 땐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이나 <암살>처럼 조선의 독립군을 떠올리게 하는 통쾌함이 있고, 천만덕과 교감을 나눌 땐 <라이프 오브 파이>나 <하트 오브 더 씨>처럼 절대적인 존재로서의 영험함이 있다.
호랑이를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 시각효과 업체 포스크리에이티브파티는 <미스터 고>의 고릴라를 CG로 구현한 덱스터 못지 않은 기술력으로 털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실감나게 표현했다. 호랑이의 모션 캡처를 위해 전문 배우가 호랑이를 연기하기도 했다. 다만 아직 기술력이 완벽하지 않은 탓인지 호랑이의 움직임이 어색한 장면이 군데군데 보이는 것은 아쉽다.
3. 인간도 동물도 부성애
부인을 잃고 16살 아들과 함께 지리산에 칩거하며 살고 있는 전설적인 호랑이 사냥꾼 천만덕(최민식)은 일본군에게 대호를 잡아오라는 명령을 받지만 수차례 거절한다. 그러던 그는 아들이 일본군을 따라 사라지자 다시 지리산을 오른다.
<대호>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역사성보다는 인간과 동물의 원초적인 부성애에 더 초점을 맞춘 영화다. 천만덕이 호랑이와 교감하는 지점이 바로 부성애다.
부성애는 의외로 최근 한국영화가 소홀히 다룬 주제다. 올해 흥행 성공한 한국영화 중엔 유일하게 <사도>가 애증의 부자관계를 그렸을 뿐이다. <대호>가 표현하는 아비와 자식 관계는 전형적인 내리사랑이지만 인간과 동물이 자식에 대해 느끼는 서로의 감정을 교류한다는 점에서 울림이 크다.
천만덕의 아들 석이는 아역배우 성유빈이 연기하고 있는데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구사하는 순박한 유머가 무거운 극의 흐름에 톡톡튀는 재미를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