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이 허락되지 않는 도시에서

힐튼 서울 전시가 남긴 질문

by Run by Design



작년과 올해 중순까지를 돌아보면,

정신없이 달려온 시간이었다.
영혼까지 탈탈 털어냈다고 말해도 과장이 아닐 만큼
몇 개의 챕터를 거의 동시에 끝냈다.


한 챕터가 끝났으니,

내 마음을 돌아볼 수 있는 무언가로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올 하반기엔 특별한 목적 없이 전시를 보러 다녔다.



그중 가장 오래 남아 있는 건

피크닉에서 열렸던 <힐튼 서울> 전시다.

힐튼 호텔이라는 이름 자체에

처음부터 큰 흥미가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피크닉’이라는 공간에서 다루는 이야기라면
한 번쯤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전시는 힐튼 서울과의 작별 인사에 가까웠다.



화려했던 순간보다 그 공간이 어떻게 정리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사라지는지를
조심스럽게 기록하고 있었다.







빠르게 결과를 향해 흘러가는 사회에서
건축물이 자본의 논리로 사라지는 장면은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가진 나에게
유난히 슬프게 다가왔다.






나는 디자인이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라기보다
기억과 감정을 남기는 역할을 한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건축물이 사라진다는 건
하나의 공간을 잃는 일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자산이 정리되는 일처럼 느껴졌다.







신도시에 살다 보니
규격화된 건축물 사이에서
시간이 쌓인 흔적이나
문화의 결을 느끼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럼에도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어느 정도 애정을 갖게 된 이유는
청결하고 안전하다는 분명한 장점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늘 성장과 팽창을 요구받는 듯한
묘한 조급함이 함께 남아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정을 즐긴다는 건 개인의 태도만으로 가능한 일일까.


아니면 과정과 시간이 쌓일 수 있는 환경이
먼저 필요하지 않을까.

전시는 끝났지만,
그 질문은 한동안 마음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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