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마음#3
나는 비시각장애인이다.
그래서 그들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어설픈 공감만으로는 이 연구를 깊게 이어갈 수 없다는 걸 점점 더 알게 되었다.
결국 답은 하나였다.
직접 함께 뛰어보는 것.
달리면서 부딪히고, 숨을 고르는 사이에 오가는 대화 속에서만 진짜 이야기가 나온다고 믿었다.
첫걸음은 무작정 현장에 가보는 것이었다.
그녀가 연결해 준 시각장애인 러닝 커뮤니티에서, 지정된 파트너와 함께 짧게나마 가이드러너 교육을 받았다.
그 몇 시간은 머리로만 알고 있던 정보가 몸으로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출 수 없었다. 더 깊이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런주호 님이 이끄는 터틀즈 러닝크루에 합류해 본격적인 가이드러닝 교육을 이어갔다.
그곳에서야 비로소 ‘함께 뛴다’는 말의 무게를 진짜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를 직접 만나 함께 달렸다.
처음엔 그저 러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운동선수 출신이었다.
다시 달리기를 시작한 시기가 내가 러닝에 빠져들던 때와 겹친다는 점이 묘하게 반가웠다.
통화로만 이야기 나누다가 실제로 보니 더 반가웠다.
무엇보다, 내 연구에 도움이 되고 싶다며 마음을 열어준 사실이 고마웠다.
시각장애인 러너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날 그녀가 자주 달린다는 반포종합운동장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사실 나는 그곳을 처음 가봤다.
러닝을 2년 넘게 해왔지만, 누군가의 세계를 통해 새로운 장소에 발을 들이는 일은 여전히 조금 낯설고, 그래서 더 설레었다.
만나자마자 내가 먼저 그녀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는데,
그 짧은 순간부터 이미 익숙하지 않은 감정이 스며들었다.
어쩌면 그 지점이, 시각장애인 러너의 세계와 비시각장애인 러너의 세계가
처음으로 맞닿은 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트레드밀보다 남산이나 반포종합운동장을 더 편하게 느낀다고 했다.
차가 적고, 갑작스러운 위험이 덜하며, 가이드 러너와 만나기에도 좋은 장소라서 그렇다고 했다.
혼자 트레드밀에서 줄을 묶고 달리는 것보다, 누군가와 나란히 뛰면 덜 지루하다는 말도 했다.
하지만 혼자 달리고 싶은 날에는 가이드러너와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 아쉽다고도 말했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비시각장애인 러너인 내가 시각장애인 러너의 세계를 아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상상 속의 장면과 실제는 확연히 달랐다.
내가 보는 환경과 그녀가 달리는 환경은 애초에 출발점부터 다르게 놓여 있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시각장애인들이 왜 굳이 트랙을 선택하는지 잘 몰랐다.
그날에서야 깨달았다.
트랙은 단순한 운동장이 아니라,
믿고 달릴 수 있는 공간이었다.
반복되는 발걸음 속에서, 그 신뢰가 왜 중요한지 조용히 느껴졌다.
아마 그 순간만큼은, 연구의 부담을 잠시 내려놓고
그녀를 있는 그대로 만나고 있었던 것 같다.
다음 글에서는,
본격적인 연구를 하며 시각장애인 러너의 세계로 더 깊이 들어가던
과정에서 어떤 마음들이 오갔는지를
하나씩 들여다보려 한다.
달리기를 통해 만난 세계, 그 안에서 내가 조금씩 배운 것들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