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variety
Variety를 보았다.
누군가 여성의 욕망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그린 영화가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 영화를 추천할 것 같다.
우리는 영화를 본다. 의자 혹은 소파에 앉아 화면 속 주인공들의 시선을 따라 이야기의 흐름을 읽고 상황을 파악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주인공의 시점과 시각, 상황 등을 이해하며 그들에게 몰입한다.
Laura Mulvey는 1975년 발표한 Visual Pleasure & Narrative Cinema에서 관객들은 화면 속 남자 주인공의 시선에 따라 여성 배우들을 욕망한다고 주장했다. 그녀에 따른 Male gaze의 대표 감독은 아마 히치콕이 아닐까 싶다. 히치콕은 미스터리와 스릴러라는 장르 안에서 남성 배우가 여성 배우를 항상 쫓고 그녀를 바라보게끔 만든다. 카메라는 남성 배우의 시각 대신이며 그것은 곧 관객의 시각이 된다. 그 시각 속 여성 배우들은 언젠 아름답고 유혹적인 팜므파탈이 되어버리고 만다. 다시 말해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영화에서 여자 배우들이 '욕망'의 '대상'이 되어버리면 당연하게 주체성을 잃어버린다. 그녀는 그 어떠한 캐릭터성을 갖지 못하며 그저 젊고 아름다운 여자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부르주아 여성이 되었든 아니면 노동 계층의 여성이 되었든 말이다. 영화 속에서 그녀들은 욕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하나의 오브제가 되어버린다.
크리스틴은 작가 지망생이지만 돈을 벌기 위해 성인 영화 전용 극장에서 티켓을 판다. 일을 하던 도중 크리스틴은 어느 중년의 부자 남 손님을 만나게 되는데 이 날 이후로 크리스틴은 극장에 흥미를 갖게 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는 성인 영화. 이런 그녀를 그녀의 남자 친구 마크는 이해하지 못한다. 의문의 중년 남성을 몰래 미행하며 크리스틴은 그가 은밀한 거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의 존재에 대해 점점 집착하게 된다.
Variety는 영화의 구성이 히치콕의 영화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이 영화는 사실 (내 기준)히치콕 영화의 미러링이라고 볼 수 있다. 크리스틴은 의문의 남성을 쫓는다. 영화에서는 의문의 남성이 혹은 남자 친구인 마크가 크리스틴을 바라보는 장면 따위는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영화에서는 성인 영화 티켓을 구매하는 관객들의 얼굴조차 비추지 않는다. 그저 티켓을 사는 손이나 실루엣 정도만 잡힌다. 그들의 시선이 화면에 담길 경우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그 반대 컷 (크리스틴이 화면에 잡히는 장면)을 성인 영화 관객들의 시선으로 읽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감독은 철저하게 남성들의 시선을 카메라에서 배제한다. 영화에서는 오로지 크리스틴의 시선만을 따르며 되려 남성들을 쫓고, 남성들을 시선 안에 가둔다.
그녀의 시선에서 전개되는 영화 안에서 남성은, 마치 히치콕의 영화에서 여성 배우가 자연스럽게 그런 것처럼, 욕망의 대상이 된다. 크리스틴은 남자 친구 마크에게 자신의 욕망을 나열한다. 흡사 소설을 읽는 것 같은 장면 안에서 여성의 욕망이 메인이 되며 남성은 그 욕망을 일방적으로 듣는 객체가 된다. 마크는 이런 그녀의 변화를 부담스러워한다. 또한 영화는 은밀한 거래를 하는 남성의 손 클로즈업 샷을 몽타주로 보여주는데 이것은 크리스틴의 페티시를 의미한다. 중년 남성은 이름도 정체도 알려지지 않은 채 철저하게 욕망의 대상으로만 그려지는 것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셀린 시아마의 워터 릴리스와 걸 후드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Variety는 크리스틴의 자신의 욕망을 인지한 채 의문의 남성에게 전화를 걸며 끝이 난다. 영화의 끝이 크리스틴의 욕망의 진짜 시작이 된 셈이다. 셀린 시아마의 워터 릴리스 역시 마리가 자신의 욕망을 직시한 순간, 카메라는 카메라와 눈을 마주치는 마리를 클로즈업으로 담으며 끝이 난다. 영화는 끝이 났지만 진짜 욕망은 이제 막 시작되었고 앞으로 계속되는 것이다. 또한 크리스틴의 욕망이 시각적으로 카메라에 담기는 장면들에서는 (예컨대 의문의 남성이 거래를 하는 장면) 걸 후드에서 마리엠이 자신의 남자 친구를 찾아가는 장면이 떠올랐다. 두 장면 모두 여성의 육체적인 욕망을 카메라가 여성 주인공의 시점으로 담아냈다. 그리고 그 시선 안에서 남성의 육체는 모두 대상화가 된다.
영화 안에서 아침 수산물 시장에 가는 장면에서 크리스틴의 욕망은 상대적으로 화면에 덜 담긴다. 애초에 그녀는 그 곳에서 "메인"이 될 수 없는 존재였다. 통칭적으로 "남성적"인 공간으로 불리는 곳에서 여성의, 크리스틴의 욕망은 거세되고 보이지 않는 것이다.
사실 이 영화의 이야기에 100퍼센트 모두 공감하고 이해한다고 할 수는 없다.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의문들도 분명 존재한다. 예를 들면, 결국 크리스틴의 욕망의 시발점이 여성의 육체를 착취하는 포르노라는 점이다. 결국 남성들의 판타지 (포르노)에서 시작된 욕망이라는 점에서 처음에 당혹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 남자 학생이 우리에게 여자도 야동을 보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의 물음은 돌이켜 보면 크리스틴의 남자 친구와 같은 시선이 섞여 있었다. 여성이 성적인 욕망을 드러내면 당혹스러운 것이다. 왜냐면 그에게 여성은 마치 아침 수산물 시장 속 크리스틴처럼 욕망이 거세된 존재인 것이다. 욕망이 드러나면, 결국 포르노 속 여성으로 전시되는 것이다.
의문이 모두 해소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으로 여성의 욕망에 대해 그린 영화라는 점에서 나는 꽤나 흥미로웠다. 이 영화 속 여성의 성적인 욕망은 남성의 시선에서 프레이밍 되지 않는다. 1980년대에, 아니 21세기 지금까지도 이렇게 직접적인 영화나 드라마가 또 있나? 싶다. 있으면 누가 좀 알려줬으면... 비교 좀 해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