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팬이 되어버렸습니다

다큐멘터리 <내언니전지현과나>

by jsuika

2021년 여름에 썼던 리뷰. 엄청 재밌게 봤던 다큐멘터리라서...먼지 쌓인 리뷰지만 올려본다.


피터팬은 영원하 자라지 않고 소년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시간이 지나 웬디는 어른이 되어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만 피터팬은 여전히 소년의 모습으로 웬디를 바라본다. 자라지 않는 피터팬, 어딘가 씁쓸해 보이는 소년의 모습은 오늘날 90년대 생의 모습과 닮아 있다.


사실 요즘 ‘90년대생’들이 난리이다. 누구는 최연소 이사, 교수이며 또 누구는 최연소 청년 비서관에 뽑혀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또 작년에 흥행한 책 제목도 ‘90년대생이 온다’ 아니던가. 미디어 속 90년대생은 정말 젊음 그 자체이며 청춘이고 또 문화 그 자체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이것은 우리 스스로가 정의한 모습이 아니다. 이쯤에서 우리는 어떤 질문을 하나 던져 본다. 90년 대생들, 우리 '스스로'가 바라보는 우리의 '세대'는 어떤 모습인가? 젊음의 상징이자 당차고 되바라지며 당최 기존의 사회 이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MZ 세대, 그 자체인가?


다큐멘터리 <내언니 전지현과 나> 는 넥슨에게 버려진 불운의 게임 '일랜시아'를 다루고 있다. 몇 년째 업데이트가 되지 않고 있고 운영진조차 연락이 되지 않는 게임. 심지어 일랜시아의 용량은 고작 500메가바이트에 불과하다. 요즘 영화 한 편보다 못한 용량의 보잘것없는 게임.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 세상 속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존재한다. 물론, 대부분이 매크로지만.


남들은 아직도 하냐는 게임을 그들은 왜 버리지 못하고 있을까? 사실 일랜시아는 아이러니함 그 자체이다. 레벨도 없고 어떤 미션도 없는 아주 평화로운 세상 일랜시아. 그 세상에서 우리는 캐릭터로서 무엇이든지 될 수 있고 할 수 있다. 하루는 미용사였다가 하루는 요리사가 될 수 있으며 아이를 입양할 수도 있고 연애를 할 수도 있다. 언제나 여러 문제들로 가로막히는 현실과 다르게 일랜시아는 이상향 그 자체이다. 그러나 그 게임 속에서 오늘날의 유저들은 시간이 없으면 돈을 주고 누군가를 고용해서 대신 캐릭터를 키우기도 하고, 정해진 루트에 따라 가장 확실하게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루트'를 공략하기도 한다. 또는 사람 대신 매크로를 돌려 게임을 하기도 한다. 사실 운영자가 이 게임에 관심을 껐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들이다. 가장 평화로운 세상 속에서 벌어지는 가장 평화롭지 못한, 불공평한 게임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쯤 되면, 망한 게임을 굳이 왜 저런 노력을 하면서까지 하나 싶기도 하다. 이에 대해 한 유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정도는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라고 답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을 알게 되고, 그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가지만 게임 속에서는 적어도 내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계속 이 게임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금 일랜시아에 남아 있는 유저들에게 일랜시아는 게임이 아니라 평행 공간, 평행 세계와도 같은 것이다. 결국 녹록지 않은 현실의 삶에 지친 90년생들에게 일랜시아는 무엇이든지 될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그래서인지 아직까지 게임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소위 말해서 "뉴비"는 거의 없다. 대부분 어릴 때 했던 일랜시아를 계속하거나 중간에 다시 돌아온 유저들이다. 자신들의 원더랜드에서 잠시나마 숨을 돌리기 위해.


하루가 다르게 세상은 변한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 인간이 변화를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쫓고 있다. 여기서 경계에 선 이들이 바로 우리, 90년대 생들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모두 경험하였으며 경제 위기를 어릴 때부터 경험했고 개방적인 사회적 변화 속에서 보수적인 교육 시스템을 답습했다. 함께보다는 경쟁이 먼저였고 두 번의 기회는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살았다. 항상 뒤처지지 않기 위해 긴장해야 하는 세대, 그게 우리다. 우리는 너무 일찍 지쳐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일랜시아로 도망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일랜시아가 완벽한 이상향, 원더 랜드인 것은 아니다. 위에서도 말했듯 결국 운영진의 부재로 매크로가 성행하기 시작했고 유저들 사이에서 매크로의 유무가 가져오는 불평등이 상당했다. 또 게임 속 사기도 종종 있었으며 버그가 등장했다. 사실 예전에도 이런저런 버그가 있었지만 그것들은 어느 정도 무시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발생한 버그는 도저히 유저들이 견딜 수 없는 수준이었으며 이 때문에 오래 남아 있던 고인 물 유저들이 슬슬 게임을 그만 두기 시작했다. 영화 초부터 슬슬 워밍업 해오던 질문이 결국 이 시점에서 폭발하기 시작했다. 일랜시아에게 미래가 있을까?


버려진 게임 일랜시아. “버려진”, 어딘가 친숙한 수식어이다. 젊고 당돌한 MZ 세대인 90년대생. 그러나 정작 그들은 스스로를 사회에서 “버려진”,”소외된” 세대라고 자조한다. N포를 넘어서 우리는 인생 자체를 포기한 세대이다. 윗 세대에게 버림받았고 밑 세대에는 치이는, 이도 저도 아닌 세대. 우리는 고달픈 세상에서 벗어나 아무 걱정 없던 학창 시절로 돌아간다. 마치 피터팬처럼, 우리는 현실을 외면하고, 미화된 기억으로 점 칠 된 추억을 껴안는다. 그러나 깨달아야 할 것은 미화된 기억은 우리를 성장시키지 못한다. 마치 매크로가 아닌 직접 캐릭터를 운영하면 호구 취급받는 게임처럼. 버려졌던 일랜시아는 결국 넥슨에 의해 업데이트가 되었다. 사실 넥슨이 업데이트를 해준 것이지만, 그 업데이트를 이끈 것은 “버려진” 세상 속에서 존재하던 “잊힌” 유저들이었다. 감독은 영화 내내 게임에 대한 열정을 아주 잘 보여준다. 그리고 감독의 열정이, 유저들의 놓지 않은 희망이 결국은 넥슨이 게임을 업데이트하게끔 만든 것이다. 미화된 기억이 우리에게 평안을 가져다줄지는 몰라도 결국 움직여야 하고 변해야 하고 외쳐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버려진 세대, 하지만 어쩌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조금 슬픈 사실이지만 우리 스스로일지도 모른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오류와 버그가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뭣 같아도 살아내야 하고 살아야 하는 것은 우리니까. 딱 한 발자국만 내디뎌보자. 업데이트가 된 우리 삶이 사회가 말하는 '성공'은 아닐지라도 어쩌면 작은 변화가 생길지도 모른다.

버려진 세상에 대한 잊힌 자들의 외침, <내언니전지현과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우리 90년 대생들에게 바치는 작은 위로이자 할 수 있다는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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