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벨파스트>
흑백 영화 포스터에 홀리듯 예매해서 봤다. 영어, 심지어 북아일랜드 억양의 영어와 불어 자막이라 영화 내용을 100퍼센트 이해했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정말 오랜만에 극장에서 본 영화라 더 까먹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본다. (스포 주의)
나는 고향이나 삶의 터전, 이런 단어에 큰 감흥을 못 느낀다. 어렸을 때 외국에서 오래 산 탓일까? 아니 어린 시절을 탓하기엔 나는 내가 지금 살고 있는 프랑스에도 큰 감흥을 못 느낀다. 작년에 2년 만에 한국에 갔을 때도 또 6주 만에 프랑스로 돌아왔을 때도 나는 정말 별 생각이 없었다. 한국 오랜만에 가니까 어때? 프랑스로 다시 돌아가려니까 아쉽지 않아? 프랑스 어때, 좋아? 이런 질문들에 늘 난감했던 것은 나는 정말, 마치 구글 맵에서 로드뷰를 볼 때 노란 인간을 집어 길에 올려놓듯 그저 누가 나를 집어 그 공간에 집어넣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별생각 없고, "아 한국이구나." 혹은 "아 프랑스구나." 끝.
공간이나 지역, 고향이나 내가 사는 곳에 무덤덤한 내게 영화 <벨파스트>는 꽤나 색달랐다. 사랑하는 고향에 대한 헌정 영화 같았기 때문이다. 보통 과거를 회상하는 식의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번갈아 가며 액자식 구성으로 이뤄져 있다. 그리고 으레 그렇듯 현재는 컬러, 과거는 흑백으로 연출된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로 현재는 컬러, 영화의 주가 되는 과거는 흑백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컬러인 현재는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에만 나온다. 현재의 모습에서는 오늘날 벨파스트의 모습만 보일 뿐 주인공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이 점이 나는 꽤나 색달랐다. 우리나라도 분단, 폭력, 분쟁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많다. 그 영화들 가운데 벨파스트처럼 오프닝이나 엔딩 장면에 현재의 주인공들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당장 생각나는 것은 (영화 자체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국제시장 드라마로는 오월의 청춘. 과거와 달리 나이 든 주인공들의 모습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면서 우리나라 영화나 드라마는 보통 "그 시대를 기억하자"가 주된 메시지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현재의 모습을 매우 짧게, 그것도 인물 하나 없이 벨파스트의 오늘날 모습만 보여주며 "남은 사람들, 떠난 사람들 그리고 행방불명된 사람들을 위해."라는 짧은 문구를 하나 남기고 끝이 난다. 그 문구와 함께 버디와 그의 가족들은 벨파스트의 한 부분이 되고, 영화는 버디의 이야기가 아닌 벨파스트의 이야기를 담아내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던 곳,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난 곳,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그곳, 벨파스트가 되는 것이다.
꽤 아픈 역사를 다루는 것에 비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담백함을 잃지 않는다. 어린아이를 시점의 주인공으로 둔 만큼 어른들의 복잡함을 이해 못 하는 순수함은 관객들에게 웃음으로 다가온다. 그 시기 아이에게 이사 가는 것이 한없이 슬픈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여자애를 더 이상 못 보는 것이기 때문에.
영화 끝에서 할아버지는 결국 하늘나라로 떠나고 버디의 가족들은 벨파스트를 떠난다. 할머니만이 그곳에 남아 영국으로 떠나는 버디의 가족을 바라본다. 버디가 마지막에 그녀를 돌아보는데, 어쩌면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 버디가 할머니를 바라보는 그 시점이 이 영화의 시작이지 않을까 싶다. 가, 돌아보지 마, 사랑한다. 이 영화가 주는 담백함은 어린아이 시점에서 오는 순수함과 그 아이를 바라보는 주변 어른들의 따듯함과 유쾌함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시선. 남은 그들이 살아온 벨파스트에 대한 감독의 애정. 이 모든 것이 다 느껴지는 장면이 바로 할머니를 클로즈업으로 잡으면서 버디 가족들을 바라보는 장면이었다. 그 따듯함이 영화의 시작일 것이다.
남겨진 그들은 벨파스트에서 살아왔고, 살아남았고, 살아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나는 여전히 내가 살고 있는 지역, 나라, 공간에 큰 애정이 없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궁금해졌다. 한 사람의 역사가 그대로 담긴 공간, 한 사람의 역사가 시작된 공간, 그 사람들의 애환이 그대로 담긴 공간. 과연 그 애정을 나는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흑백의 장면들이 아름다웠고 귀여웠다.
중간중간 흐르는 노래들이 좋았다.
영화관 티켓 가격이 오른다는데, 이 영화가 만 오천 원의 가치를 할지는 모르겠으나, 두 시간 동안 즐거웠다.